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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0]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경제학은 원시적인 과학이다.
    행간의 접속/사회 2009. 2. 22. 22:04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유시민 (돌베개, 2002년)
    상세보기

    이 책의 서문 격인 "경제학 카페를 열면서"를 보면 경제학 관련 책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담아놓았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손님들에게 제공하려는 것은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다. 모든 경제학적 개념과 이론에는 나름의 철학적, 사회적 배경이 있다. 어떤 이론이 교과서와 미디어에 등장할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것은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회적 배경과 용도를 알고 공부하면 무작정 공부하는 경우보다 훨씬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 내가 알고 싶은 것이 그거였다.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그 이론이나 개념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경제를 보는 나름의 관점이 생기는 데에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인상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체계를 세운다기보다는 경제학적 해석이나 관점으로 세상 보기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각 장의 내용들이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니까 말이다. 경제와 관련된 개별 주제들을 작가가 조금 긴 칼럼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편했다.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국가는 마약, 매매춘 등의 개인 선택에 대해서 개입한다. 무슨 근거로 개입하는 것일까? 사실 마약이나 매매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합리적인 개인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재화를 교환한 것인데 말이다. 마약이나 매매춘을 하면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황폐해지니까? 그 사람이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건 그 사람의 개인의 문제 아닌가? 그렇게 따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비만이 되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것도 국가가 개입해야 하지 않는가? 반비만법 같은 것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개인이 경제학의 전제인 '합리적 개인'일 때의 이야기이다. 현실의 개인은 '합리적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범답안은 없다. 국가가 개입하는 정도의 차이가 문제가 될 뿐이다. 국가가 개입하는 정도도 국가나 사회마다 다르다. 어떤 나라는 마약을 어느 정도 허용하기도 하고, 매매춘도 허용하기도 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생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재능의 불평등, 둘째는 기회의 불균등, 셋째는 상속의 차이, 넷째는 차별, 다섯째는 우연이다. 시장은 이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기여도에 다라 보상한다. 이것을 정당화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모든 사람이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 둘째, 모든 사람이 규칙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능력이 없다.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지만 조금 완화될 뿐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회의를 들게 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씁씁하다.

    이자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정말 궁금한 문제였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데... 어떤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유심히 읽었는데, 이자가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이론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단다. 허무했다. 이론적 근거가 없지만, 그 현상만은 있다. 나는 돈을 빌려주면 그 돈을 내가 쓰지 못한 기회비용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나도 잘 모르겠다.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완전 경쟁 시장은 합리적 개인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건강에 관한 한 개인은 일관성이 없는 불합리한 존재이다. 병에 걸렸을 때에는 의료 서비스를 우습게 알지만, 병에 걸리면 특히 위중한 병에 걸리면 의사를 신으로 본다. 자신의 전재산을 다 주어도 병만 고쳐주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인데, 자유 거래로 맡겨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국가가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것이다. 둘째, 완전 경쟁 시장은 '소비자 주권'을 전제로 한다. 병원에서 소비자는 환자이다. 소비자는 자기에게 무슨 서비스가 필요한 지 알아야 하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비교하면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이게 가능한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온 사람이 이런 판단할 수 있나? 모든 것은 의사에게 달려 있다. 소비자(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사의 말을 따르고, 청구서 나오면 돈 내는 일이 전부이다. 이런 것을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원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셋째, 시장원리에 따른다는 것은 의료보험도 시장원리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돈 많은 사람들은 시장에 따라 책정된 의료비를 지불할 수 있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국가가 의료보험을 운영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강제로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의 경제학에 대한 발언을 인용한다.
    경제학이 원시과학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의학과 비슷하다. 당시 의학교수들은 인간의 신체기관과 작용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축적했고, 이를 토대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데 매우 쓸모 있는 충고를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병에 걸린 환자는 제대로 치료할 줄 몰랐다. 경제학이 이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크게 다르지도 않다. 경제학자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단히 많이 알고 있지만.... 치료할 수 없는 게 많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 경제성장의 마법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을 회복하는 법도 모른다.
    이 말을 인용하고 유시민은 의미심장한 말을 시원하게 던진다.
    크루그먼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 중에 국가의 경제정책적 권능과 관련하여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빈부격차와 불황을 비롯한 온갖 경제적인 악을 제거할 것처럼 큰소리치는 정치가를 믿지 말라. 무식한 돌팔이가 아니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틀림없으니까.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쓰러지기 직전인 상황에서 이명박은 경제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세우겠다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된 지 오늘로 1년이 되었다. 이명박은 알고 있었을까? 국가의 경제정책으로 나라의 경제를 생각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불쌍한 것 같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꼴이 되었으니... 그런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받을 비난을 생각했을까? 인간적으로 그 사람은 어떻게든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경제를 얻고자 했으나 경제를 얻지 못해 허덕일 우리들은 더 불쌍하다. 인간적으로...

    경제학의 원시성에 대한 얘기는 1997년의 IMF 경제 위기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나온다.
    나중 직무유기 혐의로 법정에 섰던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이 무죄선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엉터리 예보를 남발한 경제연구소 책임자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것 역시 당연하다. 그들의 잘못은 위기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다. 경제학 자체가 그런 신통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원시적인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잘못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위기가 찾아들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하면서 언제 어떻게 그런 사태가 올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 데 있다.
    경제학은 과학이라고 생각했고, 경제학자들은 경제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문가니까. 전문가로서 대우받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전문가로서 노력은 하고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경제학도 그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경제가 원래 그런 것이니 경제학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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