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법정 영화이다.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몰린 남자가 법정 투쟁을 하는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유의하기 바란다.
남자는 아침에 지하철을 탔고, 만원이어서 움직일 틈이 없었는데, 옷이 문에 끼었고, 이를 빼내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고, 이런 행동이 앞에 있던 여학생에게 성추행으로 여겨졌고, 문이 열리고 내릴 때 여학생은 남자를 치한이라고 하고, 역무실로 간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남자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피해자의 진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 재판의 과정에서 남자와 변호사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치한으로 몰려 재판을 받는 다른 사람과 함께 힘을 합치기도 하고, 목격자를 찾기도 하고, 재현실험을 하기도 하고, 상대의 전략을 분석하여 대응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구속 상태에서 불구속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법정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논리적 상황들을 모두 보여준다.
이 영화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우연적이거나 극적인 요소는 단 하나도 없다. 극적인 긴장을 만들기 위해서 괴한이 나타나서 변화사 사무실의 자료를 훼손한다거나 그런 것 없다. 그리고,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모함하고, 위해하고, 협박하고, 그런 것 없다. 주인공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악인이 아니다. 예를 들면 판사나 검사, 피해 여학생 등도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현재의 위치에서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대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두번째 힘은 현실을 그린다는 점이다. 재판의 결과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재판 결과 남자는 유죄가 된다. 관객들은 남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무죄가 될 것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희망대로, 내가 보는 시선대로 현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위 두가지 특징의 결과 이 영화는 웃음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다. 이렇제 진지한 영화 오랜만이다. 그러면서 지루하지 않은 영화는 처음이다. 감독이 만들어놓은 논리적 흐름을 차분하게 따라간다면 2시간 20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관된 논리 흐름으로관객을 진지하게 끌고 가는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