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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61]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현미경으로 가난을 들여다보면행간의 접속/사회 2023. 12. 30. 21:31
책이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곁이름: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지은이: 강지나
펴낸곳: 돌베개
펴낸때: 2023.11.
고등학교 교사가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이 공부를 바탕으로 8명의 아이들을 심층 면접하여 연구한 질적 연구 보고서이다. 부모가 가난하고,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아이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비행을 저지르거나 알바만 전전하는 등 다시 가난해지는 되물림을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서 이런 전형적인 되물림 속에서 겪는 다양한 경우들을 보여주고,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본다.
1. 소희
소희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아 소희를 돌볼 수가 없다. 소희는 중학교 중퇴하고, 가출, 동거, 비행을 거듭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 다시 잡고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이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와 대입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대학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대학도 갔으니 얘가 그래도 목표를 갖고 잘 살겠지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소희가 대인관계에서 불안을 느끼는 또 하나의 원인에는 끝없는 죄책감과 자신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이 있었다. 가출과 동거를 반복하던 시절, 비행을 저지르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모습과 지금 대학생으로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서 간극을 경험했고, 그 괴리가마 속에서 자신이 가식적이라는 생각, 본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등을 느끼고 있었다. 소희는 사회적 규범을 넘나들었던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희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직장의 일반 사무직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소희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한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다고 한다.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한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행동을 보인다.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다.
가난의 문제를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기회의 측면도 봐야 할 것 같다.
2. 지현
지현은 장애와 문제행동이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었고, 참다못해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에너지가 있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서 학교, 지역아동센터, 지자체, 사회단체, 종교단체 등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지현은 이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서 이런 도움을 받았으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도움을 받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뭐든지 열심히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난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가난을 핑계로 대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지현이 긍정적으로 살아오며 빈곤을 극복한 진짜 힘이 여기 있다고 보았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가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현은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가난에 대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시선에 맞서 싸우는 일이 버거웠을 뿐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지현의 전략이 영리하고 훌륭했던 것은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해나갔다는 점이다.
뭐든지 열심히 해서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타기 위해 1,2등을 놓치지 않고 졸업을 해서 교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 같아 다시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따고 복지관에서 일한다. 그 후 결혼도 해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지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지현이 이런 어려운 상황을 버티고 헤쳐나갈 수 있었던 힘은 긍정적인 힘과 성찰하는 힘을 언급했다.
성찰하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시각과 신념을 구축했다. 이 빈곤 청소년들은 학업성취가 낮고 당장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핵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왔을 것이다.
3. 연우
연우의 가정도 가난하다. 그래서 부모의 다툼이 잦았고, 연우에게는 무관심했다. 연우는 그런 부모를 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부정적으로 보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연우는 생각이 많았고, 깊었다. 고등학교를 인문계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나 담임은 반대했고, 친구 따라 특성화고의 인테리어학과로 갔다. 우연히 선택한 학과에서 적성을 발견하였고, 열심히 했고, 학교와 주변의 인정을 받았고, 자격증을 따고 현장 실습도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섭외해서 최대한 배울 수 있게 하였다. 연우가 자신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을 사색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연우가 다른 청소년들과 달랐던 점은 누구보다도 사색하는 시간을 잘 영위했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가족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조용히 생각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부분이 인생에서 후회되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연우가 디자인 평면도를 그리는 일을 해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런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발견하자 주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자기 구상을 실행으로 옮겼는데, 나는 연우가 보여준 이러한 주도성과 자율성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 자아정첵암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4. 수정
수정의 어머니는 공황장애를 앓는 장애인이었고, 의료비가 많이 나갔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아서 지원받을 수 없었다. 성실한 학교 생활로 대학에 진학했고,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언니와 함께 돈을 벌면서 임대 주택 대출을 갚으면서 살았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이렇게만 살면 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둘이 벌이가 있으면서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없어졌고, 어머니의 간병에 돈이 많이 들었고, 수정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인에게 통장 명의를 빌려주었다가 사기를 당했고, 수정의 명의까지 빌려줘서 또 사기를 당했다. 거기다가 노름까지 해서 생활비로 갖다 드린 돈을 다 탕진하기도 했다. 언니는 결혼해서 독립했고, 온전히 어머니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벼랑 끝에 있는 심정으로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독립을 했다. 독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수정은 가족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함께 있는 것만큼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니 어머니도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고 변화하였고, 이제는 딸들과 가끔씩 연락하면서 적절하게 생활하고 있다.
5. 현석
현석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았고, 아버지는 건설 현장 노동일을 하느라 현석을 잘 돌보지 못했다. 학교를 빠지고, 혼나고, 혼나는 게 싫어서 또 빠지고.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담배 피고, 비행을 저질렀고, 교정시설에도 자주 갔다 왔다. 그러면서도 지역아동센터는 늘 다녔다. 학교를 빠졌을 때도 다녔고, 자퇴해서도 다녔고, 교정시설에 간다고 말하기 위해서도 갔다.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해도....
스무 살이 되어서 출소하고부터는 달라졌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신중했다. 비행을 같이 저지르던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었다.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건실한 청년이 되었다. 배달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검정고시를 보기도 했다. 현석은 어떻게 이렇게 변화할 수 있던 것일까?
제가 바르게 살려고 하는 이유는 이런 거예요. 우선 첫 번째는 아빠한테 미안해서죠. 예전에 아빠가 저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요. 미안한데도 저도 모르게 또 사고 치게 됐고. 두 번째는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는 것. 세 번째는 나이가 든 것도 있고요. 네 번째는 나쁜 일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죠. 나이를 하나하나 먹다 보니 생각이 자동으로 바뀌던데요?
나이가 들어서 바뀌는 것에 대해 지은이는 사회적 무게감과 책임간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석은 그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채워나가고 자신을 지켜가는 것에는 본인의 의지와 바람이 많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6. 마무리
마지막 부분에서 빈곤의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곤은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삶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데, 욕구의 실현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면 사회적 관계도 훼손된다.
에너지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생명체는 내면이 안정되고 불안감이 없어야 에너지를 밖으로 써서 외부 정보를 수집하고 미래를 예측해서 발전을 도모한다. 하지만 기본적 역량이 박탈된 사람은 내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내면의 안정과 생존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밖으로 에너지를 돌리지 못한다. 이것은 빈곤층이 왜 중요한 순간에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절제와 성실을 실천하지 못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즉, 빈곤은 인간이라는 자존을 훼손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기능을 망가뜨린다.
그리고 교육 제도, 진로 탐색, 청년 자립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마무리하는데, 문제제기와 현상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이라서 대안도 구체적일 줄 알았는데, 학교와 지자체, 관련 기관들이 더 신경써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되어서 아쉬웠다. 대안이라고 하는 것이 꼭 새로운 필요는 없지만 다른 시도가 돌파구를 만들 것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사실 이 책은 서문만 읽어도 찡했다. 열예닐곱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비슷한 환경의 다른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는 얘기,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되지는 않을까, 오류는 없을까,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가난을 팔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으로 어려운 길을 갔던 지은이의 이야기가 책을 읽기도 전에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응시가 이 책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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