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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8] 당선, 합격, 계급: 기자 출신 소설가의 예리함행간의 접속/사회 2023. 8. 13. 10:29
책이름: 당선, 합격, 계급
곁이름: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
지은이: 장강명
펴낸곳: 민음사
펴낸때: 2018.05.
기자 출신 소설가인 장강명의 문학상 제도에 대한 르포이다. 문학상 제도나 등단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만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공채나 입학 시험 등의 제도와 견주어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폭넓게 진단하고 있다.
먼저 장편소설 공모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장편소설 공모전은 대략 199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는 주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거나 선배 작가가 문예지에 추천해서 등단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작가가 되는 수도 적고, 폐쇄적이라서 문학계의 신진작가들을 배출하기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신문사나 문예지에서 장편소설 공모전을 실시했고, 수상자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등단하게 되었다.
미등단 작가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미등단 작가라니? 문학상이나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고, 그냥 책을 출간한 경우를 말한다. 그럼 이들은 어떤 차별을 받는데? 작가는 다 똑같은 작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출판계나 문학계의 상황은 다르다. 원고 청탁 안 하기, 평론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창작기금의 신청 자격에 제한, 작가들의 모임에서 배제, 호칭 문제(소설가가 아닌 그냥 작가로 표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출판사나 평론가나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들이 서로 짜고 등단하지 않은 작가는 상대하지 않기로 한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간지는 보통 금요일자나 토요일자에 두 면짜리 서평 섹션을 둔다. 그 지면만 담당하는 팔자 좋은 기자는 없다. 출판, 문학 기자들이 평소에 자기가 맡은 업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취재하면서-새로 창간하는 잡지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 가거나, 지자체들의 국립한국문학과 유치전 진행 상황을 알아보거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면서-그와 별도로 주말에 실을 서평 기사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당신이 그런 기자고, 내일이 마감인데, 며칠 동안 붙잡고 있던 400쪽짜리 소설을 거의 다 읽어 갈 때쯤 그게 신문에 소개할 수준이 안 되는 졸작임을 깨달았다 치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 소설을 읽어도 될 만한 책인 것처럼 포장하는 기사를 쓸 것인가? 아니면 밤을 새워 다른 작품을 새로 읽을 것인가?
문화 기자 처지에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바로 그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가 바로 한국 작가의 신간 소설이다. 소설이 아닌 책들은 서문과 목차를 보면 대강 윤곽이 잡히고, 해외 소설의 경우에는 번역 출간되는 과정에서 한번 걸러지는 데다 해외 언론의 서평도 참고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은 안전한 선택을 내리게 된다. 대형 출판사의 감식안을 믿는 것이다. 작은 신생 출판사에서 발간한 무명 신인의 소설에 시간을 할애하는 모험을 벌일 기자는 거의 없다.지은이는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첫째, 미등단 작가는 불이익을 당한다. 둘째, 그런 불이익은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 없이도 발생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을 입학시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명문대의 간판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명문대는 우대하고, 비명문대는 차별하자고 모여서 작당하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벌을 보고서 비명문대생은 미묘한 핸디캡을 갖게 된다. 명문대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러한 배제와 불이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 등단이라는 간판, 명문대라는 간판을 중요시하게 되고, 매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즉 '깜깜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고 만든 사람과 그 책을 읽을 사람, 구직자와 채용 기업 사시에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 정보가 적은 쪽은 손실을 피하는 안전한 선택을 하려 한다. 여기서 간판은 그 상품이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려 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그 간판으로 인해 신분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부조리한데, 그 보지를 더 키우는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어지간해서는 그 간판을 떼거나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판의 영향력이 아주 오래간다. 이로 인해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마무리를 하면서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간판의 중요성이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낮아진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글 잘 쓰는 미등단 작가, 연봉도 높고 복지 혜택도 다양한 중소기업, 일 잘하는 비명문대 졸업생이 분명히 있지만, 찾기가 너무 어렵다.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 때 져야 할 부담도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억지로 모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서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정보를 알리자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면서 모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여건도 마련하자고 말한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이다. 그래서 간판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부담을 줄이자는 얘기이다. 그런데 제안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문학계나 출판계에서 정보 확대, 보상, 실패 대비책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래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 가지 구체적인 얘기는 하나 있다. 정보 확대의 하나로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예로 든다. 독자들이 서로 책을 추천하고 알리는 작업인데, 성북구의 '책 읽는 성북'이라는 독서운동이 그 예이다. 성북구 주민들이 매년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뽑는다. 그리고 그 책을 중심으로 작가 강연, 독서 토론, 책 축제 등을 연다. 그럼 그 책을 어떻게 뽑나? 먼저 주민들과 독서 동아리로부터 책을 추천받는다. 그러면 대략 천 명이 넘는 사람이 150권 정도를 추천한다. 그럼 도서관 사서들이 4권으로 압축한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100인 추천단이 그 책들을 읽고 토론을 한 후 결정한다.
그 외에 작가 지망생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있다. 지은이가 문학상 심사위원으로서 심사를 했던 상황들, 심사위원들의 생각들, 발언들도 얘기하고 있다. 일부 지망생들 사이에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도 하는데, 지은이는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말 중요한 이야기로 스타일을 바꾸지 말고, 장점으로 승부하자고도 한다.
장점이 극대화된 글이 당선 가능성도 높을 거라 본다. 만약 본심 심사위원들이 지지하는 원고를 1, 2, 3순위로 투표해서 제일 점수가 높은 원고가 당선된다면 여러 사람이 두루 2, 3순위라고 여기는 무난한 작품이 유리할 테다. 그러나 본심 심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토론 시간이 상당히 길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2순위라고 평가한 작품을 애써 옹호하는 심사위원은 없다. 다들 자신의 1순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많은 사람의 2순위'보다는 '확고한 지지자가 있는 작품'이 당선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 몇몇 심사위원이 1순위로 뽑는 작품과 다른 심사위원이 1순위로 여기는 작품이 결독해서 둘 중 하나가 다언된다. (또는 공동 수상을 하거나 '당선작 없음'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2순위인 작품은 타협책이 되기는커녕 언급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1위와 1위의 싸움이고, 다수결 투표가 아닌 결국은 상대를 설득시키는 만장일치로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심사평을 인용한다. 본심에 올라간 작품은 장점이 빛나서이지 단점이 덜 치명적이어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탈락한 작품도 단점이 치명적이어서가 아니라, 장점이 다른 작품을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점을 아무리 고치고 보완해서 다시 완벽하게 해도 탈락하는 것은 장점이 막강해지지는 않는다. 결국 장점의 싸움이다. 음.... 문학상 수상작은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문학계나 출판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고, 역시 기자 출신이라서 현상을 보는 눈이 예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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