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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9, 60] 집을 순례하다 / 다시, 집을 순례하다: 평면도를 보는 재미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3. 12. 28. 14:15
책이름: 집을 순례하다 / 다시, 집을 순례하다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옮긴이: 황용운, 김종하 / 정영희
펴낸곳: 사이
펴낸때: 2011.03. / 2012.1.
일본의 건축가가 해외 유명 건축가들의 주택을 탐방하고, 취재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름을 들어본 건축가도 있고, 모르는 건축가도 있는데 특색 있는 주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친절하고 편하고, 그리고 쉽게 풀어서 썼다. 거기다가 그 건축물이 있는 풍경에 대한 스케치와 평면도, 사진 등을 삽입하여 건축물에 대한 이해를 가깝게 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직접 그린 평면도라서 더 친숙하고 더 정감이 있다. 실제 건축 도면 같은 평면도였으면 딱딱하고 재미 없었을텐데 말이다. 본문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르 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지은 '어머니의 집'에 대한 설명 중 동선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얼마 안 되는 60제곱미터(18평) 정도의 이 작은 집에서 협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사실 이러한 <동선 계획>에 있었습니다. 막다름이 없는 집, <무한한 확장을 가진 집>. 지금에서야 건축가들이 <회유성이 있는 공간 계획>이라든가 <연속적인 공간 계획>에 관심을 갖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70년이나 이전에 이미 이 작은 집에서 이러한 것들이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통찰하고 실현시킨 것입니다.
실제로 이 집의 내부를 이리저리 걸어 돌아다녀 보면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장면들의 다양함뿐만 아니라 그 속에 극적인 효과가 담겨 있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그저 단순히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느껴집니다.이 집의 구조는 입구로 들어가서 왼쪽 거실로 가서 침실로 가서 주방으로 가서 세탁실로 가서 다시 입구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적은 좁지만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확장되어 넓게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 재미있다.
그 다음에 인상적인 집은 게리트 토머스 리트벨트의 '슈뢰더 하우스'이다. 몬드리안의 작품 같은 선과 색깔로 이루어진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데, 마음에 든다. 거기다가 2층의 구조가 아주 신선한데 벽을 치면 3개의 침실과 거실을 이루고 있지만 벽을 거두면 이 모두가 원룸이 되는 개방형이라는 것이다.
이 집은 「적색과 청색의 의자」와 「베를린 의자」를 주택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리트벨트는 해설 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시점에서 리트벨트는 건축을 설계하고 있다는 의식은 그다지 없었고, 이 집을 자유자래로 변환 가능한 <커다란 가구>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 나아가 리트벨트는 이동이라는 움직임을 따라가 3차원으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선과 면의 입체 구성의 묘미를 잠재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가설도 머릿속에서 떠올랐습니다. 떠돌아다니는 커다란 색면이 사방으로부터 직각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하기도 하고 안으로 삽입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입체 구성을 보여주는 것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그리고 찰스 무어와 동료들(MLTW)의 시 랜치라는 집합 주택도 인상적이다. 헛간 구조의 나무 유닛 10개가 3개의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이다. 하나의 유닛은 16평의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각각의 유닛마다 특색 있는 부분을 강조하여 모두 다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은 망루가 있고, 어떤 것은 유리로 된 선룸이 있고, 어떤 것은 테라스가 있고, 어떤 것은 베이 윈도우가 있고, 어떤 것은 정원이 있고...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휴양림도 이런 목구조의 숙소를 운영해서 유사한 것들이 있지만, 여기는 그것보다도 더 특색이 있는 것 같다.
진짜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건축가와 작품은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와 그 주변의 건축물이다. 이 사람은 워낙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건축이 취미이다. 처음에는 철학 전공했다가 건축 평론 하다가 흥미를 느껴서 나이 들어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가가 되었는데 건축주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이다.
1940년대 중반, 존슨은 커다란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작은 냇물이 흐르는 뉴캐넌의 풍토와 땅의 분위기에 이끌려 5에이커의 땅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글라스 하우스와 브릭 하우스를 세우게 되면서 존슨의 <건축놀이 일기>가 시작됩니다. 5에이커를 평으로 환산하면 약 6천 평이니 충분한 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영국풍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에 동경을 품고 있던 존슨에게 그 땅은 너무 좁았습니다.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싶어질 때마다 주변 땅을 계속 사들여 부지를 확대시켜 나갔고, 최종적으로는 제일 처음에 산 땅의 약 9배에 달하는 47에이커(54,540평)의 땅을 손에 넣게 되지요. 그리고 그곳에 여러 채의 작은 건축물들을 곟속해서 지었구요.
그렇게 지은 건축물들이 글라스 하우스(1949), 브릭 하우스(1949), 파빌리온(1962), 그림 갤러리(1965), 조각 갤러리(1970), 서재(1980), 고스트하우스(1984), 링컨 커스틴 타워(1985), 다 몬스타(1995) 이다. 글라스 하우스는 유리로 된 집이다. 원룸이고, 화장실과 난로는 가운데의 밀폐된 원통 안에 있고, 침실도 다 비춘다. 어차피 자신만의 별장이라서 다 보여도 상관 없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브릭 하우스는 놀러 온 손님들과 즐기기 위한 집이다. 은밀한 침실이 특징이다. 침실 안에 돔이 있어서 마치 신전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림 갤러리와 조각 갤러리는 자신이 모은 미술 작품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것들도 평범하지 않다. 그림 갤러리는 엽서 판매대처럼 작품을 넘기면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두었고, 조각 갤러리는 5각형의 층고를 조금씩 낮춰서 입체적으로 전시할 수 있게 하였다. 서재는 원뿔 위에 있는 천창에서 들어온 빛이 책상 위를 비추게 만들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개인 서재이고, 다 몬스타는 안내 센터를 해체주의 기법으로 수평, 수직 이런 것 신경 안 쓰고 무정형으로 만들었다. 80이 넘어서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는 감각이 대단하다.
건축가의 작업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전문성이 있는데, 필립 존슨의 작업은 건축가들도 넘보지 못하는 스케일과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을 아주 잘 이용한 경우 같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고 매체에 연재를 해야 하는데 글을 언제 쓰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다. 나는 여행 갔다 와서 바로 쓰는 줄 알았는데, 다녀와서는 밀린 일들 처리하고 좀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있을 때 쓴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기억에 남을 것들만 남아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자료 도면이나 사진, 스케치 등을 다시 보고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고 한다. 나도 여행 갔다 와서 시간 지나서 글을 쓰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너무 나중에 쓰게 되면 쓰기 싫어서 요새는 바로 바로 쓰는 식인데 기억 재생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책 뒤에 보면 방문을 위한 방법들도 있는데, 건축학도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라서 그런지 내가 직접 갈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마음에 드는 건축물을 보면 스케치하고 싶을 것 같고, 평면도도 그리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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