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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58] 뮤지엄 건축 기행: 건축가의 박학다식
    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3. 12. 24. 23:13

    책이름: 뮤지엄 건축 기행

    지은이: 최우용

    펴낸곳: 미메시스

    펴낸때: 2022.07.

     

    건축가가 뮤지엄,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인데, 분량을 보면 건축보다는 그 뮤지엄의 컨텐츠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많고, 깊이도 있다. 읽다보면 이게 건축 이야기가 맞는지 싶었다. 뮤지엄의 컨텐츠들에 대해서 이정도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라면 자료 준비를 아주 열심히 했거나 원래부터 박학다식하거나..... 둘 다이거나.....

     

    그리고 뮤지엄들의 컨텐츠들과 연계해서 건축이 이를 얼마나 잘 반영해서 구현했는지도 평가하는 부분도 있는데,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평가들도 있었다.

     

    설계자가 계획안을 설명하는 글들을 살펴보면, <상징 축>, <문화 축>, <미래 축>과 같은 식상하고 경직된 <축>이 계획안의 큰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건축가는 <과거>, <위령>, <추념>, <미래>, <평화>, <상생> 등의 용어를 <개념화>하여 살을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공원 안으 두 개의 관(기념관과 체험관)과 탑, 비, 상 등이 축과 개념에 복무하기 위해 공원 내부에 혼재된 채 부조화의 난장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관, 탑, 비, 상 등은 제주 근원 설화의 형상화나 오름의 형상화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모든 <형상화>는 건축 형태를 만들어 내는 손쉽고도 작위적이며 자의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오름의 형상화가 형상화한 설계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4.3 사건을 추모하는 장소와 난데없이 <형상화>로 호출된 오름은 서로 어떠한 호응을 이루는가? 높고 뾰족한 탐과 비 등은 여전히 기념비적 구태에 갇힌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제주 4.3 평화공원과 기념관의 존재는 지극히 반가우나 그 존재 형태는 아쉬움이 가득하고 또 가득하다. 관, 탑, 비, 상으로 난장을 이룬 기념관을 나선다.

     

    건축 설계안을 보면 그런 건축물이 나오게 된 과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주변 환경과 역사, 컨텐츠 등으로부터 추출한 컨셉을 바탕으로 그 컨셉을 형상화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굉장히 화려하고 관념적이면서 철학적인 언어로 설명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싶다. 이런 정도까지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도 굉장히 많은 에너지와 시간들이 들어갈 것 같은데 좀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좀 간략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좀 작위적인 것도 좀 빼고, 받아들여질 만하게 평범하게....

     

    이런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부지는 산자락에 있는데 건축가는 언덕을 잘라 내고 문학관을 앉혔다. 그러면서 산자락을 잘라 낸 것을 분단의 아픔과 연결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분단의 아픔이 산의 등줄기를 잘라 내는 아픔으로 치환되고 그것이 다시 잘라 낸 땅에 건축물을 앉혀 그 아픔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연결되는데, 나는 여기서 건축가의 자의적 의미 부여가 관람객들에게 온당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마치 유리가 투명하기 때문에 관공서를 유리로 만들어 행정의 투명함을 보여 주고자 한다는 식의 건축 설계의 변 같은 느낌이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절토된 산자락은 분단의 아픔을 환기시키는가? 분단과 저로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건축가의 의미 부여는 언어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온전히 작동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건축을 설명하는 언어는 부수적이어야 하는데, 그 언어가 없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면 그 의미는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미당 시 문학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미당 시 문학관은 폐교된 분교를 리모델링을 했는데, 거기에는 질마재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탑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다시 리모델링을 했을 때에는 이 전망탑이 개악되었다고 비판한다.

     

    2001년 개관한 문학관은 2014년 리모델링을 큰 폭으로 했는데, 이 작업은 원 설계자가 수행하지 않았다. 리모델링 정네는 전망 탑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있었는데 리모델링 후에는 폐쇄되었고 내부 문 위치에 전시 벽이 설치되어 안에서는 문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전망 탑 내부도 많이 변경되었는데, 전시를 위해 덧붙인 것이 많다. 이 과잉은 전망 탑의 원 설계 의도를 현저히 저해하고 있는데, 2014년 당시 리모델링은 개선이라기보다 개악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할 부분은 인정한다. 바로 미당의 친일 행적이다. 문학관이기 때문에 미당의 작품으로만 문학관을 조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일 문학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언어로 친일을 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시인은 변명했지만, 문학관은 변명하지 않고 용기있게 해야 할 것을 한다.

     

    리립 박물관이 있단다. 나라에서 만든 것은 국립, 도에서 만들었으면 도립, 시에서 만들었으면 시립, 구에서 만들었으면 구립, 그러면 리에서 만들었으면 리립이다. 그 리립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는 리에서 설립한 리립 조랑말 박물관이 있다.

     

    리립이란 명칭은 아름답다. 인구 천몇백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생겨난 리립 박물관은 풀뿌리 자치의 꽃처럼 보인다. 마을이 갖고 있는 공동 재산으로 만든,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문화 공간은 문화의 힘으로 자치의 터전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정말 낯선 말인데, 아름답답. '리립'.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건축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떨어져 있어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졌다. 건축에 대한 설명 부분에 바로 사진이 함께 있었으면 이 설명이 이런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표지인데, 본문에 있는 건축물의 단면이나 입면을 모눈 종이 위에 올려 놓고, 수록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서 담았는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 읽고 나니까 알게 되었다. 건축물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 모양을 되짚는 것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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