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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7]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건축은 문제 해결의 과정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3. 12. 20. 23:23
책이름: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지은이: 서현
펴낸곳: 효형출판
펴낸때: 2016.07.
건축가가 제주도에 세모난 집을 짓는 과정이 인간극장처럼 그려진 책이다. 그러면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살짝 언급하고.... 이 책을 보면 건축의 과정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생고생해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그대로 되지 않는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긴다. 지반의 문제, 제도의 문제, 날씨의 문제, 건축주의 문제, 자재의 문제, 거기다 인간적인 실수까지 더해지면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 해결하고 나아가야 한다. 해결하지 않고 묻어두고 나가면 나중에는 반드시 탈이 난다. 정말 골치 아픈 작업이다. 그 문제들을 피할 수는 없고, 타협하고, 절충하고, 설득하고, 재설계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묘하게 해결하고 공사를 마무리하면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늙긴 하겠지만.....
건축주와 만나고 건축가는 제주도로 가서 땅을 직접 본다. 땅을 둘러 보니 바다가 보인다. 건축주도 바다가 보이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앞은 아니지만 저멀리 바다가 보인다. 멀리 있는 바다를 본다는 것은 결국 수평선과 하늘을 본다는 것. 이 점을 이 집의 테마로 잡는다.
땅의 모양이 요상한 오각형이다. 밖으로 볼록한 오각형이 아니라 안쪽으로 오목한 오각형, 마치 비대칭적인 스탤스기 모양의 땅이다. 거기다 경사도 있다. 이런 땅에 건물을 올리려면 평범한 모양은 아닐 것이다. 무수한 스케치 끝에 삼각형이 나왔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창을 삼각형의 어디에 낼 것인가? 한 변에 낼 것인가, 꼭지점에 낼 것인가? 여기에 따라 건물 배치가 달라진다. 다방면으로 검토한다. 한 변에 창을 내는 것은 가장 간단하다. 그러나 바다와 수평선에 대한 갈망이 없다. 보고 싶어서 다가가는 형상이 아니다. 그냥 텔레비전 화면 속의 바다와 다를 바 없다. 반면에 꼭지점 쪽에 창을 두면 수평선을 향한 열정과 갈망이 표현된다. 더 다가가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다.
누구나 언제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가치를 논할 필요도 없다. 모서리에 창을, 옆으로 긴 창을 내기 위해 감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구조가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나 건물은 구조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체가 건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해결해야 했다. 그 열망을 위해. 막혀 있는 느낌표를 위해.
건축가는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망을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쉬운 길로 가도 문제는 발생하니까 어차피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설계를 하고, 모형을 만들어 건축주와 만나면서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데 건축주의 기대가 크다. 그러나 견적을 내보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건축주는 3억을 얘기했지만, 설계와 모형을 보니 5억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견적을 내보니 8억이 나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은 건축가가 내는 것이 아니고 건축주가 내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건축주의 몫이다. 가능한 선택지들을 마련해서 제시해야 한다.
1. 거실은 유리, 나머지는 콘크리트 (5억)
2.바다 조망 포기, 주차장 설치 (4억)
3. 바다 조망 포기, 주차장 포기(3억)결국 건축주는 금액을 더 올려서 5억을 투입하기로 한다.
건축가는 줄눈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타일이든 대리석이든 자재들의 이음선이 딱딱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계 도면에서도 그 줄눈이 모두 다 맞게 그려져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이것이 건물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화장실의 타일 준눈이 위생도기, 휴지걸이, 수건걸이의 크기와 다 맞기를 요구하고 그렇게 도면을 그리면서, 알루미늄 패널이 만드는 줄눈이 외관의 창, 문, 벽체의 꺾인 선에 다 맞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근면함과 꼼꼼함.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해서 실제 공사 현장에서는 무심하게 할 수도 있지만 용납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현장에서 현장소장에게 당부하고 강조하고 해서 거의 다 줄눈이 맞았는데 현장소장이 출장 갔을 때 시공한 화장실의 휴지걸이 줄눈은 맞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소장에게 다시 해달라고 해서 다시 하기는 했지만 주차장 샤워실 화장실은 결국 못했다고 한다. 정말 사소한 것인데 어긋나면 신경쓰이는 것이다. 그러니 건축가는 그런 신경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설계가 끝나면 시공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하는 시공사를 찾아야 한다. 건축주는 건축가가 시공사를 추천해주기를 원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건축가가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은이는 시공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건축가는 현장에서 견제와 감시를 한다. 그게 감리다. 건축가는 작곡가이고, 시공자는 지휘자이다. 도면은 악보이고 이제 연주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문제를 만난다. 삼각형 꼭지점에 있는 창의 두 유리가 만나는 지점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유리는 단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단열을 위해서는 두 장을 붙여서 쓴다. 복층유리다. 그러면 2장을 포개어 붙이는 테두리에 검은 띠가 생긴다. 그러면 수평선을 보는 시선에 장애물이 생긴다. 수평선을 가르는 수직선.
중요한 것은 수평선이다. 지향점은 단절 없이 가로지르는 수평선이다. 그런데 모서리 상황은 중간에 수직선을 요구한다. 그것도 검은색이다. 결국 그 수직선을 가장 얇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부재에 가까운 존재의 탐색. 존재하나 부재하는 방식의 추구. 철학책에 나올 만한 주제가 현실에 있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데 결론은 단판유리로 하기로 한다. 단열은 무시하고, 결로는 시공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로 한다. 하지만 시공자는 안전하게 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다시 복층유리로 하기로 한다. 수직의 검은선은? 이것도 붙여본 후 해결하기로 한다. 그리고 유리를 붙여보니 유리 공장에 발주할 때 실측한 치수에 착오가 있어서 작게 나왔다. 결국 유리를 겹쳐서 틈을 막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가슴 아픈 순간이다.
이렇게 유리를 하기로 결정을 해도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그렇게 큰 유리가 있는가? 현장 소장이 전국을 돌아서 유리를 구했다. 이 유리를 강화를 할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고, 결국 강화를 하기로 했는데 강화를 하려면 가마에 넣어야 한다. 그만한 가마가 있는가? 없었다. 그래서 유리를 잘라서 가공해서 붙여야 한다. 이럴 거면 큰 유리를 왜 구한거야? 허탈하다. 거기다가 유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모양으로 자를지도 결정해야 한다. 건물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으니 삼각형으로 자르기로 한다. 그러면 입면 도면을 다시 그려야 한다.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다.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한다. 주차장이 밑에서 건물을 들어올리는 개념이라서 이 작업이 필요하다. 흙만 파면 될 줄 알았는데, 엄청난 강도의 암반이 나타났다. 이 암반을 깨서 실어 날라야 하는데, 소음이 심하다. 주변 식당, 목장, 주민들이 민원이다. 어쩔 수 없이 깨는 방식이 아닌 드릴로 깎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계획한 시일보다 지연되었다.
가끔 뜬금없는 상황도 생긴다. 건축주가 요구사항을 변경하거나 추가하는 것이다. 마당에 욕조를 넣는다거나 옥상을 올라갈 수 있게 하고 싶다거나.... 가능하면 해주겠지만 욕조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문제 때문에, 옥상은 무엇인가를 올리지 않기로 하고 구조 설계를 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건축주에게 설명했고, 건축주는 받아들인다. 이런 변수들... 정말 예상하기 힘들다. 일하기도 힘들고...
주차장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시공 이야기도 재미있다. 계단이 일자가 아니라 V자다. 대칭인 V자가 아니라 한 쪽은 짧고, 다른 쪽은 긴 V자인데, 이게 짧은 쪽과 긴 쪽의 길이가 점점 같아졌다가 바뀌는 계단이다. 평면의 도면으로 표현된 계단이 입체의 현실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계단 시공과는 다른 방식을 써야 하니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현장 소장은 꼬박 사흘을 시공 방법을 놓고 고민했고, 작업팀의 야간작업은 일상이다.
여전히 야간작업 사진이 블로그에 올라왔다. 작업팀이 힘들어하기보다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한다는 소식이었다.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었다. 이 건물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모양이라고도 했다. 시공하다 뭔가 안 맞으면 현장 소장이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 뜯고 재시공을 한다고 했다. 다들 미쳐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사 현장의 분위기가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들 돈 주니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작품으로 생각하고 재미를 느끼고, 자기가 만족하지 않으면 다시 하고.... 이런 것은 정말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팀과 작업을 하면 닥쳐오는 문제들도 어떻게든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거실에 유리를 끼는 트러스도 큰 문제 중의 하나다.
나는 트러스는 공장에서 제작해서 트레일러로 실어 올 것으로 짐작했다. 현장 소장도 처음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제주도였다. 가격은 시공사가 감당하기 어렵고 품질은 공장에서 책임지기 어렵고 운송은 트레일러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결국 현장에서 용접 조립해야 했다.
제주도라는 여건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자재와 운송의 측면에서.... 아무튼 부산에서 용접 전문가들이 건너왔고, 용접팀은 그 좁은 공간에 용접 천막을 치고 용접을 한다. 그런데 작업의 풍경은 시공팀 엠티인가 싶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만큼 즐기고 있다는 것인가?
유리를 강화하고, 두 장을 붙이는 것까지 결정했고, 거기에 패턴을 입히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것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 차원이었는데 확신은 없지만 그림자가 졌을 때 거실 바닥에 무늬가 나오는 것을 기대하면서 제아한 것이다. 시공 일정도 빠듯해서 빨리 유리 패턴을 결정해달라고 하고, 유리 가공 공장도 정신이 없고, 건축가는 주차장도 아닌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절박하게 샘플을 받아본다. 그리고 한 마디한다.
최소한 평범하지는 않다.
모든 일을 확신을 갖고, 근거를 갖고 설득해 가며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때로는 그냥 하는 경우들, 그냥 하늘에 맡기는 경우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마지막에 바닥 작업을 한다. 밟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조대리석을 쓰려고 했으나 너무 비싸서 할 수가 없었다. 대안으로 흰색의 내구성 있는 타일을 제안한다. 품질은 합격이다. 문제는 건물이 삼각형이라서 거실 바닥의 타일도 삼각형으로 해야 하는데, 삼각형 타일은 없다. 사각형 타일을 삼각형으로 일일이 잘라야 한다. 그리고 삼각형 타일이 없기 때문에 삼각형 타일을 시공해본 사람도 없다는 것. 세 팀이 왔었지만 삼각형 도면을 보고 다 철수했다. 결국 현장 소장의 직영 조직이 이 작업을 한다. 그 다음 문제는 사각형을 삼각형으로 자르니 손실이 생기고 물량을 갖다 대도 결국 재고가 소진되었다. 제주도에는 타일이 없다. 육지에서 실어와야 하는데, 마침 폭설이 내려 공항이 폐쇄된다. 모든 운송이 멈췄다. 타일도 오지 않는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이사 예정일 사흘 전에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건 뭐.... 일부러 누가 방해하려고 해도 이렇게 방해할 수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 밖에 레미콘 공장 멈춰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다가 현장 소장이 레미콘 공장 가서 레미콘 차들을 끌고 온 이야기, 트러스를 올리는 크레인이 전력선과 닿을 것 같아서 전시주를 이설하는 이야기 등 사소한 문제들도 많이 있다. 책에 쓰지 않은 더 사소한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책을 보면 곳곳에 작업을 했던 도면과 스케치, 랜더링과 사진 등이 있어서 건축의 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도면을 보면 여러 가지 기호, 숫자들이 있어서 그것을 추측하면서 읽고,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완공된 집의 모습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건축가가 설명해준다. 밖에서 본 모습들, 안에서 본 모습들, 조명까지 들어가고,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 된 모습들, 거기다 야간에 찍은 사진들도 있다. 작업자들이 신기해 하면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예술 작품 같은 집이었다.
건축의 과정, 건축가의 고민이 정말 세세하게 그려져서 내가 건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일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었고,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이 건축학과는 제일 먼저 거를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니면 더 도전한다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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