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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4] 건축, 근대소설을 거닐다: 30년대 경성의 인물들 다 모여라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3. 4. 29. 22:18
책이름: 건축, 근대소설을 거닐다
지은이: 김소연
펴낸곳: 루아크
펴낸때: 2020.11. (전자책)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인물과 그 인물들이 지나간 건축 공간을 묶어서 하나의 새로운 작품에 넣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품이다. 각 작품에 흩어져 있던 인물들을 모아서 총체적으로 보니 30년대 경성의 풍경과 인물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각 작품들의 인물들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원작 소설에 없는 내용이나 소설가가 간단하게 넘어간 부분을 상상하면서 세세하게 서술하는 장면들은 흥미로웠다. 읽다보면 정말로 이 인물이 이랬는지 원작소설을 찾아서 비교해 가면서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태준의 「복덕방」의 인물인 서참의 이야기에서는 구한말 신식 군대가 해체되고 복덕방 일을 하게 되면서 서참의가 갈등하는 장면이 원작에는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좀더 자세히 들어가 있다. 그리고 안초시가 사기 당하고 절망에 빠져서 지내는 모습을 보고 서참의가 청요리를 사주는 장면이 원작에는 한 줄로 지나가지만 여기에서는 인물간의 대화와 서술, 그리고 복숭아 가지를 사주면서 위로를 해주는 일화까지 새롭게 집어넣기도 했다.
채만식의 「태평천하」 원작에서는 경손과 춘심이 극장에 가서 데이트하려고 작당하는 장면까지만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즐기는 장면까지 나온다. 그리고 대복이 경성방송국에 찾아가서 항의하려다가 방문객에 휩싸여서 구경하는 장면도 나오면서 대복이가 나중에 엔지니어가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원작의 결말은 P가 아들 창선을 인쇄소에 맡기고 나오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여기에서는 인쇄소 사장이 창선이 총명함을 발견하고 공부를 시키라고 하고, P도 아들과 함께 종로를 거닐며 풍경과 건물을 보며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창선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는 장면을 그리기도 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김첨지가 행랑채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원작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있다. 김첨지는 소작농이었는데 땅을 얻지 못해서 경성에 오게 되었고, 행랑채를 간신히 구하는 이야기도 있다. 첫 번째 집에서 아이를 잃고 개만도 못한 삶에 낫으로 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아내가 말리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김첨지가 아내를 잃은 사실을 복덕방의 등장인물 박희완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박태원의 「성탄제」에 나오는 영이가 여급으로서 나갔던 카페는 「천변풍경」의 하나꼬가 나가던 카페인 ‘평화’라서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기도 한다. 「천변풍경」의 하나꼬와 기미꼬와 금순이가 살던 하숙집 옆 방에서는 강경애의 「인간문제」에 나오는 여공 간난이가 살고 있어서 여기서도 인물들이 서로 만난다.
거의 마지막에 인물들이 종로 화신 근처에서 모이는데, 「천변풍경」의 하나꼬와 기미꼬와 금순은 하나꼬의 결혼 준비로 나왔고, 거기서 금순의 동생인 순동을 만난다. 민주사와 안성댁은 인력거를 타고 조지아 백화점을 다녀오는 길이고, 그 인력거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끌고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P는 박준구라는 이름을 달았고, 아들 창선과 공장 쉬는 날에 서울 구경을 나왔다. 「태평천하」의 대복은 YMCA에 라디오 강습회에 나왔다.
각자의 이야기들을 각기 다른 작품 속에서 갖고 있는 인물들이라서 서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접점이 있을 수 있는 부분들을 좀더 짜임새 있게, 유기적으로 연결했으면 조금 더 완성도가 있었을 것 같다.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아닌, 인물이 접한 건축에 대한 설명 부분은 갑자기 설명문 모드로 변해서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라서 이야기와 설명이 겉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건축물에 대한 사진이 뒤로 빠져 있는데 설명 부분에 같이 있었으면 이해하기 좋았을 뻔 했다.'행간의 접속 > 문화/예술/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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