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21] 교사의 독서: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21. 4. 26. 18:35
`책이름: 교사의 독서
곁이름: 바쁨과 순응 사이, 길을 찾는 교사들에게
지은이: 정철희
펴낸곳: 휴머니스트
펴낸때: 2020.05.
지은이는 교사로서 학교 생활에서 만나는 갈등과 선택의 상황에서 드는 여러 고민들에 대한 실마리를 책 속에서 찾아 학교 생활과 삶을 돌아본다. 여러 고민들은 5개로 범주화하고, 이에 대한 실마리는 각 2권씩 총 10권의 책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사회와는 다른 학교만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교사들만 접할 수 있는 모순의 현상들을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깊숙하게 깔려 있는 본질을 꺼내와서 우리 앞에 들이밀고 있다. 이 책들을 읽는다고 교사들의 삶이, 학교 현장의 모순이 이렇게 보이는 것이 아닐텐데, 책과 삶을 연결시키는 혜안이 돋보인다.
1장 학교 가기 싫을 때
1.1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학교는 어떻게 소외의 공간이 되었나
학교에 진정한 만남이 있을까? 내 앞의 존재와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학교는 그렇지 못한 곳이 되어 버렸다. 교실 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나뉘어져 있고, 이들은 교류하지 않는다. 이 둘의 이질성 속에서 자극이 되어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교류가 없으니 자극이 없고, 자극이 없으니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교실붕괴이다.
현재의 업무 중심 시스템에서 학교의 업무는 일 잘 하는 빠릿빠릿한 몇 사람한테만 몰린다. 그런 가운데에서 교사의 본연의 업무인 수업은 뒤로 빠지고, 때로는 교환의 대상이 된다. 수업 조금 빼줄테니까 일을 더 주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방식이 자본주의 논리이다.
학교에서 수업보다 업무가 더 중시되는 것, 교사를 수업이 아닌 업무로 평가하는 것, 업무를 위해서 수업을 줄이는 것, 그래서 교사가 자신의 본업이 아닌 다른 곁가지들에 에너지를 쏟고 그 결과 평가받는 현상 모두가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불어오는 교환가치는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온 업무들이 학교에는 너무 많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들이 터지면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학교에 무슨무슨 교육과 관련된 업무가 생긴다. 이렇게 생긴 업무들은 늘면 늘어나지 절대로 줄지 않는다.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학교에 문제를 떠넘기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업무로 바쁜 교사들에게 민주적인 토론과 협의는 사치이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서는 소신과 소통은 접어두고 침묵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메신저가 들어오면서 교사를 개인의 영역에만 머물도록 만들어, 학교 전체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리고 침묵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기력함이다. 열정을 가지고 소통을 하려 해도 관리자의 한마디로 막히는 경험을 계속 하게 된다면 더이상 얘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변화를 위한 자극은 없어지고, 익숙함에 따른 순응만이 이어진다. 성과급을 통한 줄세우기도 이러한 순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사의 연대를 제안한다. 연대는 이것저것으로 이성적으로 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섞여서 감정적으로 도취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1.2 호모데우스: 자유를 상실하는 인간에 대해서
알고리즘은 '효율적 결정 체계'이고, 관료제의 본질이 알고리즘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이야기(내용)와 문서(형식)의 전도와 같은 주객의 전도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쓰게 해서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교육활동을 실적으로 평가하여 더 많은 실적와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조급한 결정과 조잡한 보고서를 쏟아낸다. 그렇게 들어온 돈이 학교를 돌다가 바닥나면 학교는 다시 초라해진다. 그 안에서 교사와 학생은 고통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알고리즘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사의 교육활동과 여러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해야 한다. 그 방법은 기록, 업로드, 공유이다. 이를 위해서 실제 교사의 삶이 기록되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식적 공간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유연한 사고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해야 하고, 학교는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장 승진에 도전할지 고민될 때
2.1 소유냐 존재냐: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방식
『소유냐 존재냐』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돈, 권력, 지위'같은 소유적 가치를 추구하지 말고 '나눔, 관계, 이해' 같은 존재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는 진정 자기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 해도 되거나 열심히 할수록 해가 되는 것을 더욱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교사의 삶은 학생에게도 피해를 주겠지만, 그 삶의 주체인 교사 본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 교사의 본업인 수업과 생활지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교사들은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그러면서 교사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승진을 들고 있는데, 승진을 선택하는 교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을 통해서만 의미를 찾게 만드는 교원 정책을 비판하고, 승진을 위해 몰두하다가 뒤로 미뤄지는 것들의 가치를 말하며, 승진에 매몰된 삶이 우리의 삶을 소유 양식으로 바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교사의 본질적인 일에서 의미를 찾기 보다는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일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데, 이렇게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반응에 의미를 찾게 되면서 교사는 자유로운 삶을 박탈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지은이는 『소유냐 존재냐』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나도 재인용해본다.
"푸른 유리는 빛이 통과할 때 파랗게 보이는데, 그것은 유리가 다른 빛깔을 모두 흡수해서 통과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유리를 '푸르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푸른색의 파장을 보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출하는 것에 의해서 명명되기 때문이다."
멋진 표현이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우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가질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양보하고 나눠주는 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더 갖는 것보다 내가 하는 일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의미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유하기보다 나누려는 태도가 삶의 품격이 된다.그리고 새로운 헌신 대상을 찾으라고 한다. 교사는 늘 헌신하고 있는데, 무슨 새로운 헌신 대상? 프롬의 헌신 대상은 자신의 삶을 통틀어서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나 경험을 말하는데, 지은이는 이를 교원 정책 상에서 교사에게 승진이 아닌 다양한 루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다양한 루트? 헌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는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까? 지은이는 일단 승진하는 길과 승진하지 않는 길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만들지 말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교장, 교감의 자격도 열고, 교육청 장학사나 연구사도 관료제를 탈피하여 파견교사들과 팀을 이루는 유연한 조직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인 것 말고 개인적인 것은 없을까?
2.2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양 극단을 선택한 삶의 영원할 수 없음
프롬의 책에서 지은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고미숙의 책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진이냐, 승진 포기냐의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사이'에 존재하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탈주의 삶을 살았던 박지원과 순응의 삶을 살았던 정약용, 두 사람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설렘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지만 시간과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그 설렘을 앗아갔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으로 경계의 삶을 살았을까? 지은이는 내부의 기준을 만들라고 말한다.
박지원이 만든 내부의 기준은 '사이'이다. 고미숙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 '사이'란 무엇인가? 대상과 주체, 적과 나, 정(고정)과 동(움직임) 그 양변을 모두 '여의는' 것이다. '여읜다 함'은 또 무엇인가? 양변을 가로질러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경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사이란 중간도 평균도 아니다. 어설픈 조화와 통일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낡은 프레임에 가차 없이 균열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지은이는 교사의 소신도 길이 될 수 있고,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길(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과거의 프레임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만의 이질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멋있기는 한데, 용기가 필요하고, 나도 깨지 못하는 프레임을 애들 보고 깨라고 하기가 약간...... 하긴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하는 것 자체가 용기가 있는 것이고, 프레임을 깨는 것이긴 하다.
정약용이 만든 내부의 기준은 '강령'이다. 강령이란 "혹시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자"는 태도이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예측하고 이를 메꾸는 규칙들을 만드는 것이다.
둘 중 누구의 기준이 우월한가가 아니라 이러한 내부의 기준이 이들의 삶을 단단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내부의 기준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것을 찾는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깊이 있는 생각을 나누는 만남과 공부를 제안한다.
3장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 때
3.1 어른 없는 사회: 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이해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의 차이라고 말한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거창하게 할 것도 없이, 길에 쓰레기를 보면 주워서 버리거나 쓰레기통이 없으면 집에 갖고 와서 버리는 사람이 어른, 그렇지 않으면 아이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면 아이, 책을 자기에게 돌리고 끝까지 해결하려 하면 어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시스템 복구는 자신의 업무 계약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런 위험이 있다고는 전임자에게 듣지 못했다.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는 말들이 있었는데, 이런 말들은 모두 아이의 특징이다. 그렇게 봤을 때 어른의 반대말은 아이가 아니라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성장하는데, 부권이 상실되고, 모권이 강해지면서 갈등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다른 얘기, 다양한 얘기를 함으로써 아이를 갈등하게 하여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교는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가르쳐,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사는 또한 아이들에게 '그들의 성취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스바움은 루소 교육 이론의 핵심이 '인간 본래의 허약성(인간은 근본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배우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자신의 근원적 강함(비허약성)으로 착각하지 않고, 공동체와 소통하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라는 것이다. 강함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커서도 오만함을 고치지 못한다.
그런데 교사가 이런 가르침을 실행하려면 나름의 소신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또 어렵다. 교사가 소신을 갖기 어려운 이유로 매뉴얼을 숭상하는 사회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 매뉴얼은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위기 상황에서 소통을 하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매뉴얼대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치다 타츠루는 상대방의 지성에 대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자가 어른이라고 하면서 이런 능력을 모두가 깨우쳐야 하고, 아이들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3.2 어머니: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우치다 타츠루의 얘기에 동의하지만 매뉴얼에 도전하는 삶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소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기가 필요하다. 교사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말하는 책이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이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는 자유를 향한 아들의 투쟁을 반대하다가 함께 투쟁하는 사상의 전환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 광장으로 나아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하게 되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친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의 고통과 상처에 공명하고, 그 짐을 함께 지고 나갈 수 있는 희생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품격을 배울 수 있는 광장이 학교이다. 그래서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품격이 자유로운 사람을 만든다.
4장 자존감이 바닥일 때
4.1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가르침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
교사는 수업을 준비할 때, 그리고 결과를 분석할 때 학생과 지식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교사의 내면을 더 고려한다. 이렇게 봤을 때 수업은 궁극적으로 교사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교사의 자아를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교사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공존하고 있어서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이를 줄이기 위해 도피한다. 학생들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고 수업만 하는 것, 새로운 지식을 거부하면서 유행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소유의 삶을 선택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도 다 도피이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자발적 선택....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이상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벽을 치는 것.... 그게 편하니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파머는 교실에 존재하는 역설을 분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실에서 역설의 공존을 조직하는 6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공간은 제한적이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 (학습내용에 대한 역설)
-공간은 다정하면서도 긴장되어야 한다. (수업의 분위기)
-공간은 개인과 집단의 목소리를 동시에 수용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허용을 말함)
-공간은 학생의 '작은' 얘기와 강제와 전통이라는 '큰' 얘기를 동시에 존중해야 한다.(학생들의 경험과 추상적 개념을 동시에 다룸)
-공간은 고독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일체감을 부여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과 타인과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의 조화)
-공간은 침묵과 언어를 동시에 환영해야 한다.(침묵도 언어만큼 중요함)어쩌라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분법적으로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조화시키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데 지은이는 이런 처방이 대학에는 적용될 수 있지만 초중고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했고, 또 수업에만 한정한 것도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서근원의 책에서 얘기한 교사의 딜레마에 대해서 소개한다.
기능적 딜레마: 업무를 중시할지, 수업을 중시할지.
구조적 딜레마: 진도를 우선할지, 학생들의 이해도를 우선할지.
인식론적 딜레마: 교과서에 나오는 객관적 지식을 그대로 가르칠지, 교사의 해석을 포함하여 가르칠지.
존재론적 딜레마: 교과지식 해석의 부족함에 대해서 좌절하여 가르침을 망설일지, 아니면 도전하며 가르침을 긍정할지
기능적 딜레마와 구조적 딜레마는 교사의 선택으로 극복 가능. 인식론적 딜레마와 존재론적 딜레마는 극복 불가능을 인정하고 평생 안고 가야 함그러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소신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아.... 잘 나가다가 너무 좋은 얘기로 빠지니까 살짝 아쉽다. 여태까지 사이와 분열, 역설과 긴장 얘기해놓고서 포기하지 말라는 뻔한 얘기를 들이대면 좀.......
4.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우리의 삶에서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것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상실'과 '과잉'을 언급하고 있다. '상실'에 대한 치료법으로는 자신만의 골방을 얘기한다. 이 공간은 일상과 분리되어 국면의 전환을 할 수 있는데,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있고, 내면의 공간(마음의 도피처)이어도 된다. 이런 내면의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스위치이다. 오로지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스위치. 영화나 책이 그런 것일 수 있다. 삶의 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골방은 영원한 도피가 아니라 일상으로 건강하게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지은이는 '과잉'을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잡다한 것을 자기에게 욱여넣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연수에 집착하는 모습을 예를 들고 있다. 연수를 들으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눈만 높아져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하고 부족한 자신만 발견하는 문제를 말한다. 이에 대한 치료법은 '구토'와 '지속가능한 충격'이다. 구토는 타인의 흉내가 아닌 주체적인 자신을 찾는 과정이고, 지속가능한 충격은 여러 정보들이 이 지속가능성과 신선한 충격을 갖추었는지를 따져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수에서 공부로 전환하여 수업에 대하여 좀더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5장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매너리즘은 반복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결척으로 차이 있는 반복을 얘기한다. 그리고 차이를 생성하는 방법으로 '불편함에 대한 긍정'과 '열정을 품은 광기'를 얘기한다.
5.1 김수영 전집: 불편함에 대한 긍정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이런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안정감이다. 안정감은 "불편하게 그러지 말고, 적당히 순응하면서 하라'고 말하는데, 이 때 그 불편함을 외면하면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이와는 반대로 불편함을 긍정해야 안주하지 않고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그 불편함을 긍정하는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지은이는 김수영을 언급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나왔다고 말하면서 이 둘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는 교사에게 자신의 철학을 소신껏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교사가 교실에서 실존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교사는 스스로 열정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공간은 광장이고, 학교 밖 광장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열정과 냉정을 돌아볼 수 있고 그 경험을 교실에서 펼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 교사의 주체성을 얘기한다. 주체성을 지속하는 힘은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데, 이는 '차이를 생성할 수 없는 것'부터 몰아내는 것이다. 단편적 즐거움, 일시적 만족감,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하던 일들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체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태도로 나만의 절벽 끝에 서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소신을 절벽 끝까지 밀어붙이는 삶을 말한다.
5.2 광기의 역사: 열정을 품은 광기
우리 사회가, 학교가, 우리 자신이 의도적으로 몰아내고 소외시킨 가치들을 보면 그 반대편에는 교사가 순응하도록 만드는 가치들이 있다. 학교와 사회는 '열정'을 '비이성'으로 간주하고 억압해왔고, 이성과 열정의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억압된 광기(열정)을 풀어주자고 말한다. 이런 것들을 이제 풀어주어, 우리를 불편하게 하여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자는 얘기 같다. 먼저 교사들이 배제하고 있던 가치가 있지만 그것들을 외면하는 상황을 살펴본다.
교사들이 배제하는 가치들도 교사들이 잘 아는 것들이다. 그 가치들을 선택하려면 안락함을 벗어나서 타인의 삶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아니면 시간을 많이 들여서 새로운 기획안을 다시 구상해야 한다.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생각과 결핍을 묻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떤 고단함이 펼쳐질지 교사들은 누구보다 훤히 알고 있다. 그러니 교사들은 이런 열정보다 안정이라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열정이 사라진 안정의 세계는 교사를 자유롭게 하지도 못하고, 교사를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균형을 잃어버리면 교사의 삶은 배제로만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저항과 포용을 말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저항에서부터 자유와 열정이 시작되며, 그래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대신 그 저항은 이성적인 저항이어야 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반항이어야 한다. 저항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부터 저항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교사가 저항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성을 품은 광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저항'을 가르친다? 맞다. '저항'은 그동안 교육에서 가르침의 대상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르치지 않는데도 사춘기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그 저항으로 골치아픈 교사들이 그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그 저항을 좀 더 교육적으로 다듬어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삼으려면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저항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교사는 저항하는 삶을 살고 실천하는 것이 될 것 같다.
그 다음 포용은 '광기의 독백'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성적으로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광기의 독백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교사에게 필요한 것으로 절벽 끝에 서는 용기를 말하고 있다.
교사는 결국 절벽 끝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절벽은 안정과 불안의 경계라는 점에서, 교사가 머무를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반복이 주는 고통이 괴로운 교사라면 절벽으로 한 걸음 더 걸어가 보기를 추천한다. 그러한 용기 있는 교사 곁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6. 읽고나서
읽은 후에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지은이의 생각이 정말 깊이가 있다고 느끼면서 나도 이 정도의 깊이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은이가 수많은 연수를 다니면서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한 것처럼 나도 내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작업을 꿈꾸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은이가 결국 토해내는 과정을 거쳐서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작업을 한 것처럼 나도 꾸역꾸역 욱여 넣은 것들을 다시 토해내고 나의 것들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힘들면 나만의 골방에서 잠깐 쉬기도 하면서......
'행간의 접속 > 교육/청소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35] 대한민국 1호 미래학교: 학교의 본질을 따라서 (0) 2021.06.28 [책 30] 우리들의 문학 시간: 일상을 함께 하는 수업 (0) 2021.06.11 [책 15] 공부머리 독서법: 애들이 한다면 하고 싶다 (0) 2019.08.11 [책 6]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거뜬하게 이겨냈으면 정말 좋겠다 (0) 2019.06.30 [책 39] 숙제의 힘: 핸드폰은 선물이 아니라 책임 (0) 201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