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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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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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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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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장준혁), 이선균(최도영), 차인표(노민국), 송선미(이윤진), 김보경(강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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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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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메디컬 드라마 『하얀거탑』이 어제 방영한 20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보았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남녀 간의 소모적인 감정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 좋네, 싫으네 매달리고, 울고, 소리 치고, 의심하고, 싸우고 하는 모습들이 없었다. 우리 삶의 모습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런 모습은 큰 부분을 차지 않는다. 그런 부분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식상하다.
두번째 마음에 드는 것은 권력을 향한 암투와 술수들이 적나라하게 잘 표현되어 인간의 권력욕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이용하고, 때로는 손을 잡았다가도 배신하고, 또 자신도 배신 당하고, 줄을 대고, 협박하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장준혁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의깊게 보면서머리를 쓰게 된다. 드라마를 생각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놓고, 상대와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게임이라서 긴장감을 유발시켰고, 결국 우리는 장준혁팀과 한 판 승부를 벌인 느낌이었다. 아울러 인물의 성격이 전형적이면서도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한 인물 안에서도 선하고 악한 양면적인 모습이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장준혁이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이나, 부원장의 이주완 과장에 대한 태도, 이주완 과장의 장준혁에 대한 마지막 태도 변화 등은 비록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되었지만 그러한 자연스러운 유도가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세번째 마음에 드는 것은 결말이었다. 일부 시청자들이 장준혁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또 일부에서는 세인의 관심에 힘입어 연장 방영도 생각했었을텐데, 제작진은 원작대로 장준혁을 죽음으로 처리했고, 약속된 20부작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였다. 원칙대로 한 것이다. 자질구레하고 장준혁을 기적적으로 살리고, 연장 방영했으면 무리한 스토리 전개로 그동안 쌓은 탑을 무너뜨린 격이 되었을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내심 장례식 장면이 나와서 그동안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죽음을 애도하고, 화해를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의학자답게 시신 기증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 장면으로 했다. 또 재판도 포기하지 않고, 상고 이유서를 작성한 것도 어설픈 화해는 없으며, 장준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너무 신선했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장준혁이 인간적으로 권력욕이 작용하여 의사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리기도 했으나 그는 충분히 훌륭한 의사였음을, 그의 죽음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네번째 마음에 드는 것은조연들의 개성적인 연기를 들 수 있다. 김창완과 외과 참모들, 장인과 각 과 과장들, 그밖에 가족들의 배치가 조화를 이루어서 극이 정말 무리 없이 흘러갔다. 전체 안에서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위치에 맞게 연기하는 모습이 훌륭했다.
다섯번째 마음에 드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 같고 인물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도영인데, 전반부에 최도영의 비중은 별로 없어서 꼭 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소아암 환자를 돌보는 에피소드는 장준혁의 과장 선거 에피소드에 비해서 너무 힘없이 느껴져서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중반부의 법정 진술 부분도 분위기를 바꾸기는 했지만 전세를 역전시킬 힘으로 작용하지도 못했다. 어쩐지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최도영의 힘은 마지막 장준혁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에게 죽음을 알리고, 죽음을 준비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만약 최도영과 같은 인물이 없었으면 장준혁의 죽음은 훨씬 부자연스럽고, 훨씬 껄끄럽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런 최도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반부와 중반부에 최도영의 성격을 드러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장준혁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에피소드들을 배치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여섯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은 음악이었다. 빠른 템포의 현악기로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음악과 허밍으로 처리된 감상적인 음악들은 극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면서 때로는 오싹오싹하게 만들기도 하였다.한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최도영이 나올 때 흐르는 독일 민요 "소나무야~"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좀 다른 곡으로 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도 정말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나와서 우리를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주말에는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