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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 6] 나의 삼촌 부르스 리 1, 2: 복수와 신파행간의 접속/문학 2021. 1. 24. 21:52
책이름: 나의 삼촌 부르스 리 1, 2
지은이: 천명관
펴낸곳: 예담
펴낸때: 2012.02.
이소룡을 너무 좋아해서 이소룡이 되고자 했던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삼촌은 서자 출신으로 성격이 내향적이라 말도 더듬는데, 이소룡을 너무 좋아해서 이소룡처럼 운동을 해서 스스로 무도인이라 칭한다. 우연히 동네에 삼류 영화 촬영을 하는 곳에 심부름을 갔다가 대역으로 액션 연기를 하였고, 사고를 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후에 우연히 충무로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하다 홍콩에서 이소룡 유작 영화의 대역배우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홍콩으로 밀항하지만 태풍으로 홍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돌아와서 군대를 다녀온 후 고향에서 지내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고생하다 풀려났지만 고향에 있지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 액션연기팀에 합류하여 무명의 액션 대역 배우로 생활한다.
영화 촬영 중 다시 만난 최원정을 흠모하여 그와 가까워졌지만 최원정이 자살하자 그를 자살로 내몬 유사장과 김실장에게 복수를 하던 중 유의원이 죽게 되자 살인자로 누명을 쓰고 도망다니다 자수하여 복역하게 된다. 삼촌의 소식을 듣게 된 최원정이 면회를 와서 재회를 하고, 유사장이 범인임이 밝혀져서 삼촌은 석방되고, 모두의 환영을 받으며 출소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거진 30년에 걸친 인물의 다이나믹한 인생 역정을 스피디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렸다. 삼청교육대나 국회의원 선거 같은 시대적인 상황들도 살짝 나오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이외에도 주변인물들의 역정도 함께 그려서 재미있었다. 특히 종태와 삼촌의 운명 같은 대결 장면은 압권이었고, 주변인물이었지만 종태의 비극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고 어떤 운명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들은 대체로 길었는데, 재미를 위해서 유사 문구를 반복한다든지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가난으로 인해 서울을 벗어나 변두리로 이사하는 가족의 상황, 특히 아버지의 마음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속이 메슥거리는 매연 냄새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자기 집에 들어가도 남의 집에 온 듯 낯설어 몇 해도 가기 전에 오매불망, 꿈에 본 내 고향을 그리워하겠지만 한 번 등진 고향 땅을 다시 밟기는 어려운 법, 아직 동도 트기 전 까마귀 시체가 널린 듯 연탄재로 온통 시커매진 골목길을 밟으며 고단한 일터로 나갈 때마다 자꾸만 발이 허방을 짚는 듯 불안하고 허전해 어쩌다 운 좋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 걸치면 사는 게 도대체 이게 뭔가, 싶으 ㄴ기분에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래도 믿을 거라곤 그저 늙어가는 모뚱이 하나뿐, 낡은 자전거 페달 돌리듯 체인이 끊어질 때까지 찌든 육신을 돌리고 또 돌려야 할 터였다.
읽으면서 스케일이 방대해서 혹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찾아봤더니 아닌게 아니라 정말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했었다. 크게 흥행하지는 않아서 내 기억에는 없었는데, 영화로 만들고 싶은 소설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껴지는 것은 약간 신파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수를 한다거나 한 여자만을 기다린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약간은 그랬다. 한때 한국 영화에 조폭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 때의 분위기가 약간 풍겼다
2권 합치면 대략 790쪽 되는 분량인데, 이틀만에 다 읽었고,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빼고는 계속 붙잡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었다. 무협지를 읽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이야기에 빠지는 깊이를 보면 단편보다 장편이, 장편보다 대하소설이 훨씬 더 빠지기 쉽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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