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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7] 말하다: 작가를 조금 더 이해하다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8. 7. 2. 15:03
책이름: 말하다
지은이: 김영하
펴낸곳: 문학동네
펴낸때: 2016.3
김영하의 산문집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말하다'라고 제목이 되어 있어서 말하기에 관한 얘기를 한 것인 줄 알았는데, 지은이가 했던 여러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했던 말을 녹취하여 엮은 책이다. 그러니 사실 앞서 보았다. '읽다', '보다'와 겹치는 내용들이 일부 있었다.
삶의 방식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는데, 비관적 현실주의를 얘기한다. 비관적 현실주의는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조건으로 개인주의를 얘기한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아진 현대 사회에서 자기 생각은 필수이지만 너무 많은 생각할 거리에 치여서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산다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것을 경계한다. 특히 소비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한다. 나는 개성있게 자기를 표현한다고 하는데, 그게 결국은 남들도 다같은 생각으로 개성이 아닌 개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범위 안에서의 자기 표현인 것이다.
그 다음에 그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으로써 글쓰기를 얘기한다. 글은 한 글자씩 차례대로 쓰기 때문에 그동안에 마음 속에서는 변화가 생기고 축적되어 마음 속의 어두움을 내정하게 보게 되는 눈이 생긴다고 한다.
언어는 논리의 산문일어서 제아무리 복잡한 심경도 언어 고유의 논리에 따라, 즉 말이 되도록 적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가진 자기해방의 힘입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 나약함과 비겁과 맞서는 힘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자기해방의 글쓰기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결국 글쓰기를 통해 자기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축적함으로써 자기만의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완성한 미래의 모습도 상상하는데,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된 개인이 아니라 다중의 정체성을 가진 개인을 상상한다. 택시기사이면서 연극배우,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 이런 식으로말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 중의 하나가 예술가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에술은 목적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므로.... 유용하지 않은 것, 돈이 되지 않는 것, 도움이 되지 않지만 즐거운 것. 그것을 하자고 말한다.
인터뷰 중에서 의외라고 생각되는 내용이 나왔다. 작가와 독자의 소통에 대한 질문에 지은이는 소통은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소통한다고 했는데, 이거 약간 어리둥절하다.
독자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오직 제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제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사건들을 함께 겪어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저는 나오는 거죠. 이제 그 공간에는 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소설과 독자 간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거기 제 자리는 없습니다.
아울러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다는 말도 맞지 않다고 한다. 소설쓰기는 가장 적극적인 '듣기'라는 말을 먼저 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자신에서 벗어나 해체되고, 낯선 세계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하다보면 작가는 자신의 의도대로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이 내적인 자율성을 갖고서 쓰여지고, 그리고 인물들이 말하고, 작가는 듣는다.
따라서 '듣기'는 윤리이기 이전에 작가가 직면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신념, 지식, 습관, 정치적 성향, 취향)을 서서히 해체하면서 엄청난 노동을 투입하여 한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국 '받아적기' 혹은 '듣기'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받는 질문입니다만) 이 작품을 통해 뭘 말하려고 했으냐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말하려고 한 무언가가 아마 있었겠지만 쓰는 동안 잊어버렸다,가 정답일 겁니다.
여태까지 학교에서 작가의 의도를 묻는 시험 문제들을 많이 보았는데, 의도가 없다니..... 약간 허무하지만 작가가 얘기하는 창작의 현실이 그렇다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읽으면서 우리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 작가에 대한 관념이 상당부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고, 이런 것이 작가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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