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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8] 후불제 민주주의: 헌법대로만 합시다
    행간의 접속/사회 2016. 5. 24. 13:50

    책이름: 후불제 민주주의

    곁이름: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지은이: 유시민

    펴낸곳: 돌베개

    펴낸때: 2009.03


    유시민이 이명박 정부가 헌법의 정신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고,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쓴 에세이이다.


    제목인 '후불제 민주주의'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 이루어낸 민주주의를 우리가 댓가 없이 누리면서 그 댓가를 후불로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이 쓰여진 이명박 정부나 지금의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역주행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더 늘어나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졌어도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우리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인류 역사에서 실제 나타난 적이 있거나 이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국가 형태 중에서 뒤늦게 나타나 지구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 민주공화국이다. 고도의 지성적 사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 행성에서 일어난 생물 진화의 최고봉이라면, 민주공화국은 호모사피엔스의 문명사에서 일어난 제도 진화의 최고봉이다. 민주공화국은 두 개의 토대 위에 선 문명의 건축물이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토대로 한 법률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적 가치의 평등을 지향하는 복지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둘 모두를 명문화했다.


    민주공화국이 법률 시스템과 복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법률 시스템은 법치주의를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권력기구들은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국민들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본질은 그게 아니란다.


    그들은 국민이 법을 지키게 만드는 것을 법치주의 확립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대통령부터 시장바닥의 장삼이사까지 국민은 누구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법을 어기면 누구나 법에 따른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법치주의는 아니다. 법치주의의 본질은 국가와 권력자들이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반대말은 국민들의 법 무시가 아니라 권력자와 국가의 자의적인 통치 또는 인치라고 하는 게 옳다.


    법치주의는 법을 잘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해진 것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을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니 마음대로 막 다스리면 안되고, 법대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처음 알았다. 정말 중요한 사실인데 이걸 이제야 알다니.... 법을 자기 마음대로 끌어다가 자기 편한대로 쓰는 통치자들에게 법치주의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어도 모른 척 하겠지만.... 비슷한 것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도 있다.


    정치적 중립은 국가가 공무원에게 보장해주어야 하는 가치이다. 공무원이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선거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당연히 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공무원 스스로는 원하지 않는데 누군가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도록,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강요하는 경우에 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헌법 제7조는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는 조항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공무원에게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으로 보는 게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국가는 말하지만, 이 조항의 본질은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가 공무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키는 주체는 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듣는 소리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한마디로 외부적인 압력으로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못지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헌법에 대해서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고, 이 책도 그 이상 깊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추상적인 문구를 훨씬 쉽게 풀어놓은 것은 의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행복 추구권에 대한 설명이다.


    행복추구권에 대해서 헌법 제10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와 같은 헌법 조항을 지은이는 이렇게 풀어놓았다.


    당신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당신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이 재벌 회장의 운 좋은 상속자로 태어났든, 아니면 일하고 또 일해도 끝없이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딸 아들로 세상에 나왔든, 국가는 행복을 추구할 당신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당신이 빼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든, 아니면 남만큼의 평범한 재능만 가진 사람이든 상관없이, 국가는 당신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합니다.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당신이 키가 크든 키가 작든, 당신이 힘이 세든 힘이 약하든, 국가는 당신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존중합니다. 당신은 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합니다.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냥 읽어만 봐도 감동적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 '당신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부분이 그러하다. 헌법이 정말 이런 글투로 쓰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헌법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고, 언제 한 번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통치자들이 헌법을 지키면서 헌법의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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