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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0] 판사유감: 판사도 인간이었더라구.
    행간의 접속/사회 2016. 4. 13. 09:17
    책이름: 판사유감
    지은이: 문유석
    펴낸곳: 21세기북스
    펴낸때: 2014.04

    판사라고 하면 근엄하고 딱딱하고 바른 소리만 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엄격하고, 교사보다도 더 답답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도 사람이고, 사법부가 시대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조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 그런 판사들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먼 법에 대한 풍경을 판사들의 일상을 통해 새롭게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몇 개 뽑아보았다.

    판사들도 세미나 하고, 논문 쓰고, 논문 발표한다. 처음 알았다. 재판하기도 바쁜 사람들이 재판 이외의 것들을 할 여유가 있다는 말인가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그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재판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의사들도 그런 것 같고.... 교사들은? 교사들도 그러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판사들의 판결문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판결문을 내가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지은이가 소개해준 판결문은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약자에 대해, 정의에 대해, 법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왜 이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얘기하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판결문을 소개한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나 형식이 천편일률적인 딱딱한 기존 판결문 형식을 탈피하여 재판부의 깊은 성찰과 문제의식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호 같은 법률용어와 형식적 문구의 방패 뒤에 숨어 정말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 주지 않는 안전한 판결문보다 비록 비판을 받을지라도 재판부의 고민과 결론을 솔직히 드러내는 판결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판결문 중 "누군가 강력한 폭행, 협박을 행사하지만 않으면 여성의 명백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완력으로 여성의 옷을 벗기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법원은 그러한 생각은 틀렸다고 분명하게 말해 주고 싶다"부분은 영화 「연애의 목적」에 나오는 이유림(박해일)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유림의 행위는 명백한 강간 및 직장 내 성폭력이니까요.

    법원에도 판사들의 인사를 위해서는 평가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은 점이 있나보다.

    문제는 재판이라는 사법 서비스의 수요자는 재판 당사자, 즉 국민인데 얼마나 열심히 좋은 재판을 해서 당사자가 만족했는지는 쉽게 비교 가능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건 처리 수 통계, 판결문의 길이와 형식 등 법원 내부에서 평가받기 쉬운 양적인 측면에만 경쟁이 집중되기 쉽다는 것이죠.

    학교에 있는 교사들과 똑같다. 교육 서비스의 수요자는 학생들인데 학생들이 그 교육의 결과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눈에 보이는 양으로 측정하여 숫자로 나타낼 수 없으니 교사와 학교에 대한 평가가 학교폭력 처리 건수, 동아리 수, 방과후 개설 강좌 수 등 엉뚱한 것으로 집중되는 것과 똑같다.

    인상적인 것들도 몇 개 뽑아보았다.


    꼬박 꼬박 잘 갚고 있고, 앞으로도 갚을 수 있는 빚을 어느 날 갑자기 법원에서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갚지 못해 왔고, 앞으로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숫자에 불과한 채무의 노예로 묶어놓고, 취업도 못하게 하고, 빚 독촉 전화에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어 채권자들이, 이 사회가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법원의 파산부에서 일했던 시절에 쓴 글이라고 한다. 파산부는 파산을 선고하여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그러면 누가 빚을 갚느냐는 생각,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 파산을 선고받는 경우는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 정말로 갚을 수 없는 딱한 사정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갚을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빌려준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로서 재판했던 경험은 아니지만 학창시절 지은이가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언어와 지식에 대한 무게감에 대한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이 소크라테스의 회상술을 비판해 보라는 리포트 과제를 내 주면서 리포트를 작성할 때 자신이 '그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언어'만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100퍼센트 자신 있게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언어만을 사용하라는 말씀이었죠.

    이 말을 곱씹을수록 '언어'와 '지식'의 무게라는 것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 좀 읽었다고 소싯적부터 꽤나 유식한 척하는 글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던 저였기에, 제가 쓰거나 누구에게 말했던 지식 중 그 밑바닥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있기는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언어가 나에게 있을까? 그런 언어로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자신의 글에 대해, 그 글이 담고 있는 지식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일텐데, 그렇지도 못하면서 글을 쓰고,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인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 로스쿨 연수 중에 들었던 로푸키 교수의 수업 얘기를 하는데, 정말 멋있는 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푸키 교수는 자기가 쓴 교과서를 교재로 하는데 문장 자체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써서 읽기 쉽고, 수업은 교재를 다 읽어 왔다는 전제로 가상의 사례인 연습 문제를 풀며 이론과 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훈련을 합니다.

    모든 수업은 교수가 준비한 파워포인트로 진행되는데 핵심만 명쾌하게 잘 정리한데다가 학생들의 사고의 흐름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어, 한 가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대답이 나오면 씩 웃으며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면 파워포인트에 학생의 대답을 정확히 예견한 다음 질문이 연쇄적으로 뜹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간명하게 정리해 주고, 다음에는 실제 사례에 적용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문을 제기합니다. 한 가지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도록 하고 말이죠.


    정말 멋있는 수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꿈꾸는 수업이 아닐까? 그런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하나하나 배워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흐뭇할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법조계를 진로로 삼고 있는 학생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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