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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5]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영어 공용화의 민낯 보기행간의 접속/인문 2015. 12. 31. 01:06
책이름: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지은이: 시정곤 외 4인
펴낸곳: 한겨레출판
펴낸때: 2003.08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책인데, 이 때에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이러한 논란들은 지식인들의 언어로 찬반이 오갔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찬성은 미국 중심의 경제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것을 내세우고, 반대는 민족의 정체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 책은 영어공용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서 우리의 언어 생활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제1장은 영어 공용화가 2023년에 실시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들은 영어 학교로 재편이 될텐데, 정부에서는 한국어 학교도 유지시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누가 한국어 학교를 선택하겠는가? 결국 한국어 학교는 돈 없는 사람들이나 선택하고, 모두 영어 학교로 몰려 계층간 이질화를 부추긴다. 아울러 재미동포들이 한국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영어공용화가 되었다고 해도 영어를 재미동포들보다 잘 할 수는 없으니까.... 아울러 원어민들이 급증하게 된다.
제2장은 영어 공용화 실시 30년 후인 2053년이다. 이 때에는 한국어를 쓰는 노년층과 영어를 쓰지만 능숙하지 못한 중년층과 영어를 능숙하게 쓰는 청년층 사이의 갈등이 사회 문제가 된다. 그리고 한국어 학교는 완전히 사라진다. 더이상 배우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은 영어 학교를 가기 위한 경쟁으로 여전히 삶은 팍팍해진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식 문화가 이식되어 할로윈데이가 공휴일로 지정되고, 애국가보다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듣고 가슴 벅차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제3장은 영어 공용화 실시 60년 후인 2083년이다. 이 때에는 대부분이 영어공용화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표준 영어와 사투리 영어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지역적인 차이가 반영된 사투리 영어가 생기고, 이는 다시 차별의 근거가 되고,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한다. 또한 한국식 영어가 정립되어 미국식 영어와는 또다른 영어의 갈래를 형성하게 되고, 상류층은 미국식 영어를, 하류층은 한국식 영어를 쓰게 되어 역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이제 영어 공용화가 되어 영어로 작품을 쓰니 번역할 필요가 없어서 노벨문학상을 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수상은 여전히 못하는데, 이유는 한국인의 눈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문맹률이 높아졌는데, 이유는 자동언어생성기가 언어 생활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함으로써 학문의 발전은 정체되고 영어 실력은 후퇴한다.
제4장은 영어 공용화 실시 100년 후인 2123년이다. 이 때에는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중국어 공용화가 대두된다. 사람들은 중국어로 몰리고, 영어는 쓸모 없는 언어가 된다. 이 무슨 코미디같은 상황인가?
제5장은 영어 공요화 실시 500년 후인 2523년이다. 이 때에는 타임캡슐에서 사라졌던 한국어에 대한 정보가 발견되어 이 언어를 살리는 일이 진행되어 한국어가 부활한다. 한국어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명함과 경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약간 허황된 것 같은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특히 압권은 제4장이었다. 미국이 지고, 중국이 뜨니 중국어로 몰리는 가벼움은 웃기지도 않는다. 영어 공용화의 논리 중심에 경제와 경쟁력이 있고 패권을 가진 언어를 졸졸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을 통쾌하게 비판한 것으로 보여진다.
학자들이 써서 문학적인 맛은 없지만 근거있는 상상이 만들어놓은 구체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한국어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기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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