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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3] 절기서당: 우주의 기운과 함께 하는 시간들행간의 접속/인문 2015. 12. 27. 09:49
책이름: 절기서당
지은이: 김동철, 송혜경
펴낸곳: 북드라망
펴낸때: 2013.10.
24절기는 농경문화에 적합하다고 지금까지 생각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24절기는 1년에 걸친 기후의 변화이기 때문에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름 붙이기를 농경과 관련지었지만 그렇다고 기후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이 책은 24절기에 현대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라는 관점으로 쓰여졌고, 나는 그게 궁금했다.
농촌에서 씨 뿌린다고, 우리도 텃밭을 갈고 씨를 뿌릴 이유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씨 뿌리는 행위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있었다. 하필이면 왜 이 절기에 씨를 뿌리는가? 씨앗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현재 우리의 일상에 적용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야 우리도 일 년 농사를 농부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 봄의 절기들
입춘의 입(立)은 '세운다'는 뜻이다. '들어가다'는 뜻이 아니다. 상식적으로는 '들어가다'는 뜻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왜 '세운다'고 했을까? 그것은 세팅된 봄에 몸만 쏙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봄을 만들어간다는 주체의 동참이 있다. 즉, 계절의 변화를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때에는 봄의 기운을 만들어갈 준비를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발심이라고 했다.
우수는 얼음이 녹는 날이다. 그래서 이 날에는 우리 일상의 얼어붙었던 것들을 풀어내는 시기이다. 얼어붙은 몸, 얼어붙은 마음, 얼어붙은 관계, 혹은 응어리진 모든 것들을 풀어내는 날이다. 그래야 시작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경칩은 땅 속의 벌레들이 놀라서 나오는 날이다. 이제 슬슬 움직이는 시기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일터로 뛰어드는 시기는 아니지만 봄의 목기가 가장 강한 이 때에 한 점을 향해 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양이므로 서서히 일에 불을 붙이면 된다.
춘분은 낮과 밤이 같아지면서 음기보다 양기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변화의 시기이다. 이 때에는 청소를 하자. 갑자기 웬 청소?
청소는 매우 동적인 행위입니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버리고 부산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지요. 양의 기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청소를 마치고 나면 기분이 편안해지고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이것은 음의 기운입니다. 청소를 통해 음과 양이 서로 만납니다. 그로 인해 말끔해진 집안과 책상에서 공부든 일이든 뭔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보면 청소는 음과 양이 마주치는 일종의 '축제'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춘분에 청소를 하는 것은 음양의 이치에 따르는 행위이고, 본격적인 봄으로 가는 첫발인 것이다.
청명은 그야말로 봄다운 절기이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을 맞으면서 꽃들이 활짝 피어 있는 어딘가로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우리가 꿈꾸던 그 봄의 기후가 바로 청명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마음을 밖으로 많이 표출시켜야 한다. 특히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베푸는 마음이 필요하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듯 우리는 마음을 쏟고 뿌려야 한다. 그래야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곡우는 곡식을 윤택하게 하는 비가 오는 시기이다. 그러나 실제 이 시기에 비는 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왜 이런 절기 이름이 붙었을까? 그것은 간절함의 표현이다. 곡식을 윤택하게 하려면 이 시기에 비가 와야 하는데, 오지 않기 때문에 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또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잘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들어가 있다.
곡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껏 해왔던 것을 하나로 응축하는 일이다. 입춘에 뜻을 세우고, 우수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경칩에 과감해지고, 춘분에 갱신하고, 청명에 충분히 마음을 쏟았다면, 곡우에는 그 모든 것을 한 점에 모으자. 바로 '삶의 현장'에.
삶의 현장은 내가 투입한 집중력과 꾸준함에 비례한다고 한다. 간절함과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2. 여름의 절기들
입하는 여름의 기운을 세우는 시기이다. 화(火)의 기운이 영향을 미쳐 열이 나는 시기이다. 농작물은 잘 자라지만 잡초도 잘 자란다. 농부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거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농부처럼 우리도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을 늘어놓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거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을에 과연 나는 어디에 가 있을지 생각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소만은 만물이 조금씩 채워나가는 시기이다. 여름은 무엇이든 잘 자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냥 잘 자라지 않는다. 수많은 단련을 감내해야 한다. 봄의 절기들이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는 시기라면 여름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타인과 함께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소만은 이질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낯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시기이다.
망종은 곡식을 파종하라는 시기. 쌀농사를 시작하라는 시기이다. 여름의 뜨거움과 열정으로 농사일에 정점을 찍으라는 얘기이다. 덥지만 그것들을 피하지 않고, 고생하면 그 고생만큼의 가치가 있고, 정신의 차원에서 자존감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긴 시기이다. 따라서 양기가 극에 달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이러한 양기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있는데, 이를 잡는 방법은 일찍 잠드는 것이다. 밤은 음기를 기를 수 있는 시간이고, 담담한 생활태도를 가져다 준다. 하지에는 잠을 자자.
소서는 하지에 정점을 찍었던 양의 기운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서서히 음의 기운이 늘어가는 것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은 벌여 놓은 일들을 정리하는 화에서 금으로의 이동을 하는 것이다. 화기가 넘치는 늦여름이라 정신이 혼미하지만 차고 맑은 음의 기운을 끌어와 다시 생각한다. 가을에 내가 수확할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을 위해 지금을 견디는 것이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음의 기운으로....
대서는 큰 더위, 즉 무더위가 있는 시기인데, 이 때 특징은 습이다. 습은 긍정과 부정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 끈끈함이나 집착은 부정이지만,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습지는 긍정이다. 우리는 내가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온전히 볼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덥고 눅눅하다고 에어컨 앞에 있으면서 생명의 작용을 막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결국 이 더위를 우리는 인정하고, 피하려 하지 말고, 생명의 작용을 막지 않으면서 가을을 생각하며 보내야 한다.
3. 가을의 절기들
입추는 가을의 기운을 세우는 시기이다. 금 기운에 따라 성숙해지는 시기이다. 그러나 여전히 더위는 남아 있고, 그 더위를 견뎌야 하고, 성장통으로 신음하고, 버티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고, 꺾인 기운을 받아들이는 성숙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마지막 더위를 이겨내면서 성숙으로 간다.
처서는 더위를 그치는 시기이다. 가을인데도 여름처럼 살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시기는 나무들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 이파리들을 버리고, 뿌리에 집중하는 시기이다. 낭만이니 슬픔이니 하는 감성들은 걷어내고, 현식을 직시하는 시기이다.
백로는 이슬이 맺히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음의 기운이 확장되는 이 시기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세계를 지켜보는 고요한 시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시선은 밖의 기운을 정리하고 안으로 집중한다. 봄과 여름 동안 자신이 넓혀 온 반경만큼 자기 삶을 살찌우는 것. 이것이 백로에 우리가 할 일이다.
추분은 밤과 낮의 시간이 같은 시기이고, 음기와 양기가 같은 시기이면서 음기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즉, 변화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나'라는 개체에 갇히지 않고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생명의 차원에서 고정된 것은 죽음이고, 살아있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나의 존재성도 하나로 고정된다는 것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기에 변화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로는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건조한 기운이 영향을 미친다. 과일들을 알맞게 건조시켜 당도를 유지한다. 그 결과 수확이 알차게 된다. 수확과 동시에 해야 할 것이 있다. 내년의 씨앗을 준비하는 것. 씨앗 갈무리다. 수확을 한 후에 이 수확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상강은 수확의 기쁨 이후에 서리가 내리는 시기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슬픔과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껏 슬퍼하되, 냉철하게 슬퍼해야 한다. 그 슬픔은 겨울의 씨앗을 만든느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으니까말이다.
4. 겨울의 절기들
입동은 겨울의 기운을 세우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음의 기운이 대세이지만, 그 음기 속에는 양기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은근하고도 은밀한 뜨거움. 이것이 겨울을 여는 우리의 행동강령이다. 이때는 사생결단을 내어 양기를 길이 보존해야 한다. 양기는 난로에서 일방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잠깐은 뜨거울지 몰라도 난로 곁을 떠나면 열은 금방 식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 나 자신으로부터 양기를 구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 안에서 은근하고도 은밀하게 그리고 뜨거운 양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계는 나와 타자가 다른 두 기운을 교류하는 행위다. 이는 마치 우리 몸에서 수승화강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수화의 기가 서로의 자리를 바꿔 가며, 수는 화가 되고 화는 수가 된다. 다른 두 기운의 마주침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생명에너지를 만들게 된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소설은 첫눈이 오는 시기이다. 그리고 음기가 가득찬 시기이다. 봄이 올 때까지 지혜를 갖고 겨울을 보내야 한다. 지혜를 가지려면 잘 들어야 한다. 남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의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소설에는 지혜를 벼려야 한다.
대설은 큰눈이 오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양기가 저 밑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포근한 느낌으로 뭐든지 꽁꽁 숨기고, 만물을 길러 내고, 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도와주는 것이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시기이다. 동시에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한 후에 서서히 감소하고, 양의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예전에는 동지에 달력을 주고 받았다. 동지책력. 그래서 달력을 보고, 1년 동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어나갔다. 더 쉽게 말하면 실천 로드맵이라고나 할까?
소한은 작은 추위의 시기이다. 이 때에도 동지와 마찬가지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단 그냥 생일, 기념일, 공휴일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절기의 리듬을 타서 정하는 것이다.
대한은 큰 추위의 시기이다. 겨울의 마지막 절기로서 빚을 갚는 시기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낡은 것들, 쌓아둔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5. 읽고나서
전체적인 리듬이 체계적인 듯, 아닌 듯 하지만 어떻든 나름의 리듬은 존재한다. 너무 치밀하게 맞추려고 하면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데, 약간 허술하면서도 공감이 가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절기에 따른 리듬은 '현재'를 살게 하고, 우주와 만물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주 속의 나를 생각하면서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낯설지만 이게 좀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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