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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5] 공간 인간: 건축과 인류의 진화행간의 접속/건축 2025. 5. 29. 14:54
책이름: 공간 인간
지은이: 유현준
펴낸곳: 을유문화사
펴낸때: 2025.03.
건축가 유현준이 인류의 진화를 건축의 관점으로 풀어쓴 책이다. 다른 책이나 유튜브로도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건축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일관되게 풀어나가서 전체 그림이 잘 그려졌고, 내용도 유익했다. 무엇보다 설명이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앞에서 얘기한 내용을 복습하듯이 짚고나서 그 다음 설명을 진행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중요 내용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1. 모닥불
모닥불이 무슨 건축인가 싶지만, 공간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할 것들이 있다.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게 되면서 균질했던 공간에 인공의 중심점이 생겨났다. 이로써 중심도 위계도 없이 평평하던 생활 공간에 중심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모닥불을 이용해서 새로운 중력장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공간이 동물의 공간과 다르게 진화하게 된 첫걸음이다. 추억 속 캠프파이어를 떠올려 보자. 모닥불에 너무 가깝게 가면 뜨겁고 멀리 가면 춥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닥불과 일정 거리를 두고 둥그렇게 앉는다. 이때 사람들의 무리 안쪽으로는 밝고 등 뒤로는 사람이 만드는 그림자 때문에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이 된다. 이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안과 밖'의 공간 구획이 만들어진다. 건축에서 벽을 발명하기 이전부터 이렇게 빛과 어둠을 통해서 공간의 분리가 만들어졌다.
모닥불은 중심점을 만들고, 안과 밖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닥불은 원형이기 때문에 평등의 공간이다.불은 가까이 가면 뜨겁고 멀리 가면 춥고 어둡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사람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같은 거리를 빙 둘러 앉게 된다. 권력자는 불 가까이에 앉고 권력이 없는 자라고 해서 불에서 멀리 앉지 않는다. 인원이 늘어나게 되면 모닥불에 장작을 더 던져 넣고 원의 지름을 더 크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불과 같은 거리에서 편하게 앉을 수 있다.
또한 모닥불은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소실점이다. 그런데, 이 소실점의 위치가 중요하다.태양, 달, 모닥불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소실점이다. 소실점이 먼 하늘에 있는 경우와 집단 내부에 있는 경우의 차이는 그림의 소실점이 캔버스 밖에 있는 것과 캔버스 안에 있는 것의 차이와 같다. 모닥불이라는 소실점이 무리 내부에 있게 되면서 세상을 자기 주도적으로 바라보고 활동하게 된 것이다. 모닥불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공간적으로 구심점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사회 구조를 발전시킬 공간적인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모닥불은 그냥 따뜻한 곳에 모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건축적으로, 공간적으로 생각을 하니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2. 동굴벽화
동굴 이전에 사람들은 자연에서 사방이 뚫린 바닥만 있는 공간을 사용했었다. 그러다 불을 발견하면서 동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동굴은 사람들에게 벽과 천장이라는 건축 요소를 가르쳐 주고, 실내 공간을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공간이다.기원전 17000년경 구석기 시대 때 라스코 동굴에 살던 사냥꾼은 동굴이라는 공간의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려서 동굴 공간을 상상 속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감이 형성되고, 소통이 이뤄졌을 것이다. 혹은 아무 생각 없던 사람들도 그 생각에 동화되어 공조가 일어났을 것이다. 동굴 벽화는 인간의 생각이 공간화된 첫 사례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목표 지향적 사회‘가 만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그림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상상하게 만들고, 이 상상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집단의 크기를 키우게 된다.
3. 괴베클리 테페
괴베클리 테페는 장례를 치르는 공간이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죽음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한다.울라프 라더는 정치에서는 항상 누군가의 죽음을 차지하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슬픔이나 자책감을 느끼면 그 감정의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게 된다. 이때 시체를 차지한 사람이 그 부정적 감정의 책임은 자신의 반대 세력에게 있다고 지목한다. 대중은 분노하며 규합되고, 누군가는 정치적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사후 세계를 생각한다는 것이고, 괴베클리 테페가 그 증거이다. 이러한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집단을 키울 수 있게 된다. 동굴 벽화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원래 건축의 기본적인 기능은 비, 바람을 막는 주거 기능이었지만, 인류가 진화하면서 주거 기능 이외의 다른 건축물이 생겨났다.괴베클리 테페는 추위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축물이 아니다. 괴베클리 테페 같은 종교 건축물은 인간 사회의 규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축물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처럼 인간은 사후 세계나 신화를 믿으면서 사회의 규모를 키웠고, 그 과정에서 괴베클리 테페는 그러한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데 결정적 촉매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었다. 건축은 이로써 단순히 나약한 육체를 지키기 위한 둥지의 기능을 넘어 사회를 만드는 장치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건축물이 지어진 시기는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으로 나타난다. 이 사실에서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다.기존의 건축 발생의 가설은 농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이동을 멈추고 정주해서 사게 되면서 건축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순서가 좀 바뀌어서 건축을 하기 위해서 농업을 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학자들은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의 한 개 모듈러를 지으려면 60-70명으이 사람이 6개월에서 1년여의 시간을 들여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하지 않고 건축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냥을 나가지 않고 건축 일에만 종사해야 하니 사냥과 채집 이외에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농업이었던 것이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건축하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식량 공급하기 위해 농업이 발생했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밥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동하지 않는다고 농업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저절로 축적되는 것도 아니고, 농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정주 아니더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가 건축에서 가지는 다른 큰 의미는 벽이 있는 건축이라는 점이다. 모닥불 시절에는 둘러앉은 사람에 의해서 안과 밖을 구분하였지만 괴베클리 테페는 벽으로 안과 밖을 구분하였다. 벽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여 집단을 규정한다. 우리 집 안에 있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봉건 사회의 성 안에 있는 농노들은 영주의 보호를 받는다.괴베클리 테페를 설계한 사람은 내부 공간을 성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벽을 두세 겹으로 쳐 놓았다. 이곳에 초대된 사람은 벽으로 구획된 좁은 골목길 같은 입구를 통과한 후 여러 겹의 벽체를 관통해서 원형의 내부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표면에 그림이 조각된 거대한 돌들이 서 있는 모습에 압도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특별한 공간 체험을 하게 되고, 그런 특별한 체험은 종교 지도자에게 더 큰 권위를 주게 된다. 이 때부터 힘들게 구축된 건축 공간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장치가 되었다.
4. 도시
농업이 발달하고, 대규모 관개 시설을 위한 토목 공사를 하게 되면서 집단이 형성되고, 도시가 형성된다. 최초의 도시는 중동 지방의 우르크인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고, 건조 기후대라 전염병도 없어서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면서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도 발생하였다. 다름 아닌 익명성이다.인류사 초기에 인구 밀도가 높아진 도시 발생은 인간에게 익명성을 주었고, 이는 여러 가지 죄를 서슴지 않고 짓는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농업과 함께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수렵 채집이나 유목으로 떠돌아다녔던 시절이다. 이때는 집단의 크기가 작기에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아는 사회였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도시는 익명성 때문에 무법지대였을 것이다. 인간은 더 큰 집단의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운영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것은 좀 더 조직화된 권력 체계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줄어들더라도 안전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어하고 억압할 수 있는 체계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권력 체계는 권력의 집중을 만들었고, 그 권력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건축물은 다시 그 사회의 통치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5. 지구라트
몇 만 명의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자가 만드는 건축물은 그에 걸맞은 규모의 건축물이 필요했고, 이런 건축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건축물이 지구라트이다. 이 지구라트는 성경에서 '바벨탑'으로도 불린다. 현존하는 가장 잘 알려진 지구라트는 가로 64m, 세로 45m, 높이 30m로 만들어졌다.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고, 위로 올라갈 수로고 좁아진다.지구라트는 계단을 통해서 높이를 만들었고, 높이는 권력을 창출한다. 이 같은 건축 장치를 통해서 종교 권력이 강화되었다. <중략> 괴베클리 테페가 벽을 이용하여 평면사에 권력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 이후 지구라트는 인공적으로 높이 차를 만들어서 높은 시점의 권력자 공간을 구축해 낸 것이다. 이제 종교 지도자는 건축물의 높이를 통해서 권력을 만드는 법을 갖게 되었다.
높은 건축물인 지구라트는 또 다른 중요한 권력 창출 원리를 보여 준다. 바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치로서의 건축이다. 지구라트 꼭대기에 선 사람은 주변 낮은 곳에 있는 수천 명의 시선을 받게 된다.
시선을 받는 제사장의 정보는 수 천 명의 일반인에게 만들어져서 권력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6.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무덤이다. 이러한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건축 재료의 원산지를 보면 그것을 건축한 집단의 영토를 파악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돌을 떼어다가 하구에 있는 도시에 건축했다. 이것은 당시 이집트 파라오 정부의 통치력이 나일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미쳤고, 나일강 전체가 물류 시스템으로 작동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이집트 사회는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과 사회 통제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혹은 그 반대로 이러한 피라미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거대한 이집트 제국이 굴러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피라미드를 보면 그 당시의 기술력과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말 미스테리하다.
7. 성막
성막은 유목 사회의 상징이다. 이러한 성막 속에는 유목 시절의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전 세계 종교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농업 사회는 건축물을 통해서 사회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규모를 키워서 기존의 수렵 채집 사회와 유목 사회를 압도할 수 있었다. 반면, 건축물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농업 사회의 종교는 그 건축물에 멀어질수록 그 힘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건축물을 지을 수 없었던 유목 사회의 종교는 약속과 이야기를 적은 문서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서는 이동성이 뛰어나다. 번역이 되면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도 쉽다. 그래서 농업 국가를 기반으로 건축에 의지하는 종교는 그 국가의 국경선을 넘지 못하는 반면, 유목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문서 중심의 종교는 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계속 전파된다. 그래서 유목 사회의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 인구의 절반이 믿는 거대한 종교가 된다. 기독교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교는 쿠란을 가지고 있다.
성막이 인간의 진화와 관련된 건축물로 들어간다는 것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유목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축이었을테니, 그리고 그 유목 사회의 종교가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8. 반원형 극장
반원형 극장은 그리스에서 연극을 할 때 공연했던 장소이다. 객석은 반원형이고, 무대를 내려다 보게 되어 있다. 관객의 시선은 무대에 집중되기 때문에 무대가 권력을 가지지만, 높이로 생각하면 무대가 더 높기 때문에 관객이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무대 위의 사람과 관객은 서로 한 번씩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두 사람의 권력 위계가 동등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그 무대 위에 시민이라면 누구나 올라가 ㄹ수 있다는 점이다. 제사장만 올라갈 수 있었떤 수메르의 지구라트 신전과 달리 그리스 반원형 극장의 무대에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따라서 관객과 무대 위 사람의 입장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게 되어 더욱더 평등한 위계를 만든다. 반원형 극장은 공간적으로 권력을 시민에게 동등하게 나누어 주는 '권력 배분기'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반원형 극장은 그리스 민주주의를 완성한 건축 장치라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 의자에 대해서 말한다. 반원형 극장에는 관객석에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 의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의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다.집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권력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왕이나 귀족은 행차할 때도 가마 의자에 앉아서 이동했다. 이처럼 의자는 권력자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자가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반원형 극장에 객석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모든 시민이 언제든 앉을 수 있게끔 말이다.
이는 권력이 일반인에게 분산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주적인 사회라고 말한다. 지금은 어디에나 의자가 있고, 누구나 앉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하긴 직장에서도 회장님 의자하고, 사원들 의자하고 차이가 있긴 있으니까.... 의자가 가진 권력의 속성은 현대에도 일정 부분 유지되는 것 같기는 하다.
9. 도서관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이다. 지금이야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책을 아무나 읽을 수 없었다. 능력도 없었고, 흔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도서관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므로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도서관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 사람들의 지식을 좁은 공간에 밀도 높게 담는 공간적 장치다.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힘들게 다른 마을로 현인을 찾아가 구전으로 지식을 전수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으면 됐다. 그리고 그 책 바로 옆에 꽂힌 책을 읽으면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효과가 생겼다.
도서관을 가장 잘 이용하는 직업이 수도사였고, 수도사들은 책을 읽고 필사하면서 수도원이 도서관 기능을 하였고, 권력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수도원은 대학이 되었고, 정보의 중심지가 되었다.
10. 아퀴덕트
아퀴덕트는 수도교이다. 물이 다니는 다리이다. 로마는 큰 강이 없어서 멀리서부터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펌프가 없었으므로 중력과 경사로 물이 내려오게 한다.그런데 물이 있는 티몰리 같은 지방과 로마와의 거리는 20~30킬로미더인데, 해발 고도 차이는 20~3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수로의 기울기는 1,00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가 쓰는 화장실 바닥에서 물이 하수도 배수 구멍으로 들어가게 기울인 바닥의 기울기가 100분의 1이다. 로마는 그보다 10배 더 완만한 기울기를 만들 수 있는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치를 사용하여 수십 미터 높이의 수도교를 건설할 수 있었고, 상부에 작은 아치를 두어 지진에도 견딜 수 있었다. 이렇게 공급된 물은 로마 시민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갔고, 이는 로마가 시민들이 권력을 가지는 사회임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11. 교회
교회는 건축 공간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기에 효과적인 장치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를 컨트롤하는데, 하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이다.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다른 어느 종교 예식보다도 시간 조절이 정확하다. 예배는 시작할 때 예배의 시작을 선포하고 마지막에는 인도자의 축도로 마친다. 이처럼 예배는 처음과 끝이 명확한다. 또한 교회의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인 예배당에 모여서 드린다.
그래서 교회에는 종탑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종을 치고, 사람들이 여기에 맞춰서 모이는 것이다.
공간적인 규제도 명확한다.기독교는 교회라는 내부와 외부가 명확히 구분된 단일 실내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모여서 집단으로 예배를 행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결속력이 향상된다. 또한 예배당 내의 모든 의자는 제단을 향해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시선이 예배 인도자에게 집중되는 공간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서 종교 지도자에게 강한 권력을 만들어 준다.
거기다가 고행성사를 행하면서 정보 권력를 만든다. 자신의 치부를 성직자에게 고백하면 성직자는 사회의 모든 치부를 알게 되고, 고해자는 교회를 옹호하게 되어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예배는 라틴어로 진행되어서 말로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 속의 이야기를 교회 공간에 있는 조각품과 그림, 스테인드글라스로 전달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넓은 실내 공간은 음악 같은 청각적인 미디어도 활성화하기 좋은 구조이다. 이러한 교회의 미디어 제공 기능이 유럽 사회를 하나로 만들고 이끌 수 있었다.
지은이는 한국 교회의 건축적 특징도 이야기한다. 한국의 교회는 상가에 많은데, 주거지에서 가깝고, 젊은이들이 이성을 만날 수 있고, 공연 문화가 없었을 때에는 찬양팀의 공연은 아이돌과 동급이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에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요인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12. 공장 기차역 학교
공장은 대규모 실내 공간이다. 공장이 가능했던 것은 철을 건축 재료로 도입해서 기둥 간격이 넓은 큰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도 자연 에너지에서 화석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그러면서 상품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단점도 발생하였다.석탄을 이용한 기계가 도입되자 많은 부분에서 인간이 필요 없어졌고, 인간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공장에서 기계를 이용해 생산하는 제품들은 기계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균일하게 표준화된 제품이 대량 생산되었다. 인간이 표준 모델에 맞춰야 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기계 생산 이전에는 개성을 가진 인간에 의해서 공방마다 다르고, 공방 내에서도 생산자의 숙련도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기계가 만들 때는 같은 기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이 균질하게 생산된다.
인간이 기계에 맞춰 살면서 또 맞춰야 하는 것이 시간이다. 농장에서의 시간은 계절만 맞추면 되지만, 공장에서의 시간은 기계의 움직임에 사람의 움직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시분까지 맞춰야 한다. 그렇게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기차로 옮기려면 기차의 시간도 맞아야 한다. 기차의 출발과 도착을 안내하기 위해서 정확한 시간이 필요했고, 기차를 타는 사람도 시간을 맞춰야 한다. 모든 사람이 시계를 갖고 있던 것이 아니므로 기차역에는 시계탑이 존재했다. 거기다가 기차역 내에서만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출발지와 도착자의 시간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도시간 시간도 맞아야 한다. 그래서 지구의 경도를 만들어서 시간대를 조정하게 되었고, 기준점이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되었다.
이렇게 시간을 맞추도록 했지만 여전히 공장 노동자들은 지각과 조퇴가 빈번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시간에 익숙했던 몸이 하루 아침에 기계의 시간에 익숙하게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들은 '시간에 맞추어 사는 인간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대적 의미의 학교를 만들었다. 영국과 플아스에서 칠판과 학생들의 책상과 의자가 있는 교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 프로이센(독일)에서 의무 교육이 시작되었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집단 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에 맞추어 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장, 기차역, 학교 등의 건축물은 인간이 기계와 어울려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을 담당했다.
13. 하수도
지금이야 도시마다 하수 처리 시설이 있지만 도시화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파리에 하수도 시설이 들어섰고, 하수도는 도시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파리는 하수도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위생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고, 유럽 내에 전염병이 돌때도 파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했다. 그래서 돈많은 부자들은 파리로 이사했고, 이 부자들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서 화가들이 파리로 이사했다. 파리는 자연스럽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브랜드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파리의 하수도 시스템은 건조 기후대가 아닌 북반구 중위도 지대에 전염병에 강한 새로운 고밀도의 도시를 구축할 수 있게 해 주었다.이제 인류는 강수량과 상관없이 전염병이 돌지 않는 도시를 만들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파리는 혁명이 일어난 도시이다. 혁명으로 집권한 권력은 자신도 또다시 혁명으로 물러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시의 구조를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폴레옹 3세 때인 1853년~1870년 파리의 오스만 시장은 중세 시대 때 만들어진 저층형의 건물을 부수고, 6층 정도의 건물을 지으면서 도로망을 넓은 직선 도로망으로 새롭게 개편했다. 그러면서 도심의 중앙부에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모여드는 방사형의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12개의 간선도로에 사람이 모여들 경우, 개선문에 대포만 설치하면 간단하게 최소한의 병력으로 시민 봉기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방사상 공간 구조를 만듦으로써 도시 공간에 권력의 위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교차점 공간을 장악하는 권력자는 도시 공간 구조를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게 된다.
파리가 예전부터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인 줄 알았는데, 혁명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
14. 수정궁
지은이는 수정궁을 설명하기 전에 건축 양식의 진화에서 보이는 두 가지 경향을 설명한다. 첫째는 한 사람을 위한 건축에서 대중을 위한 건축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를 민주화,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실내화이다. 노천에서 건축물을 이용하는 경향에서 실내에서 건축물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 혁명으로 많은 제품이 생산되자 이를 소개하기 위한 만국박람회가 영국에서 개최되었고, 수정궁은 이 때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지은 건물이다. 철과 유리로 만든 거대한 실내 공간을 만든 것은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도 얼마 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의 건축물이 에펠탑이다.
그러나 수정궁의 진짜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철도의 발달과 저렴한 입장료로 수정궁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당시 영국은 산업화로 인한 계층 간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만국박람회장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계층 간 폭력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수정궁’의 공간과 수많은 제품에 압도됐다. 이들의 시선은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적인 미래로 열린 것이다. 설혜심 교수는 이 현상을 “계급을 뛰어넘어 하나로 통합된 ‘소비자’라는 새로운 계층이 탄생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수정궁’이라는 건축 공간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을 소비자라는 하나의 계층으로 통합시킨 장치다.
건축이 사회 계층의 통합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도 놀랍고, 이를 발견한 학자의 식견도 놀랍다. 이런 게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15. 엘리베이터, 자동차
에펠탑은 철이라는 재료로 높이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그렇게 극복한 높이를 걸어서 올라가라고 하면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발명되면서 권력자만이 올라갈 수 있었고, 권력자의 시선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꼭대기에 시민 누구나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에펠탑은 철과 엘리베이터 기술을 이용해 일반 시민에게 권력을 주는 장치가 된 것이다.
어느 시대나 공간을 압축하는 자가 승리한다. 공간을 압축한다는 것은 먼 거리를 빨리 가거나, 가지 못하던 곳을 가는 것을 말한다. 즉, 교통의 발달을 이끄는 존재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다. 말을 잘 타던 몽골 민족, 범선을 만들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영국 등이 당시를 지배했다.
거기다가 좁은 면적의 공간을 밀도 있게 쓰는 것도 공간의 압축이다. 빌딩이나 아파트가 높아지는 것이 그 예이다. 교통과 면적 외에 통신의 발달도 공간을 압축한다.전화기는 내가 이동하지 않고서도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언어 소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내 몸은 순간 이동이 안 되지만, 전화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과 언어로 연결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준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몇 초 후에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과 연결될 수도 있다. 이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식의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자 공간 압축 기술이다. 냉장고 역시 새로운 기술이다. 한 번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음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자 장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고, 줄어든 시간만큼 다른 곳에 더 갈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집 냉장고를 열면 전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온갖 식재료와 과일이 있다. 내 냉장고 안에 미국에서 수입한 체리가 있다는 것은 미국의 농장과 서울 사이의 공간을 압축하는 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압축에서 교통과 통신의 발달까지는 나도 생각할 수 있었는데, 냉장고를 생각해낸 것은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신선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인류 도시 발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인류 도시 발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이 살게 하되, 부정적인 저항은 줄이고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만 높일 수 있는 공간 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의 방향이 왜 그런 방향이냐 하면, 그렇게 진화한 도시만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도시들을 이기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도시와 건축이 진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16.인터넷
도시의 집적이 최대치로 이루어진 현대에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인터넷을 어떻게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간은 3차원의 입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갈 수 있어야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넷은 그러한 속성을 갖고 있지 못하니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공간은 절대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인간의 뇌에서 만들어 낸 인식의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투시도법을 이야기한다. 투시도법이 적용된 그림은 2차원이지만 우리의 뇌는 그 그림을 3차원으로 인식하면서 공간을 본다. 실제로 3차원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뇌가 3차원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럼 인터넷은 뇌가 3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다고 한다.현실 공간은 우리의 망막을 통해서 수집한 2차원 평면 사진을 뇌가 초당 200장 이상 연산해서 만들어 낸 의식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초당 24장 정도의 사진을 연산해서 공간을 만든다. 만화 영화를 볼 때는 초당 12장이면 충분하다. 만화책은 몇 초에 한 컷이면 된다. 그런 만화책 안에서 우리는 공간을 보고 스토리를 이해한다. 인터넷은 아주 느린 만화책이다. 비록 텍스트뿐이어도 우리는 그 페이지를 보고 공간을 상상하고 구축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가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 곧 세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보를 우리 뇌에 넣어도 뇌는 시공간을 구축한다. 비록 그것이 텍스트 정보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같은 시간에 내가 눈으로 볼 수도 있었던 현실 속 세상 장면을 대신해서 들어간 또 다른 정보다. 그러니 인터넷상의 정보가 텍스트뿐이어도 내 머릿속 세상이라는 공간을 구축하는 정보 자료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일상적으로 쓰는 PC의 컴퓨터 화면도 책상 위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는 책상 옆에 있는 휴지통도 작은 아이콘으로 만들어 넣어서 삭제할 서류를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게 하였다. 매킨토시는 아이콘, 메뉴, 마우스 등의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갖춘 최초의 컴퓨터로, 우리의 일상과 컴퓨터 세상 속 공간을 연동시키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이렇게 컴퓨터 기능 안에 ‘공간’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은 가히 혁명적이다. 우리는 세상을 ‘공간’이라는 프레임으로 읽어 내려간다. 컴퓨터 안 정보의 세상은 잡스 이전에는 그저 텍스트 정보뿐이었다면 매킨토시의 ‘데스크톱’ 기능은 컴퓨터 속 가상의 공간이 일상의 공간으로 진화하는 첫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바탕화면 기능은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은 것 같은 공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이 이 시대의 모닥불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닥불이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면 현대에는 파편화되어 개개인의 스마트폰만 쳐다 보면서 가상 공간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모이는 인지적 편향이 생기게 되고, 나중에 가서는 인공지능 챗봇인 Chat GPT가 유일한 구심점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언급한다. 그리고 그 Chat GPT를 인터넷 공간이라는 신대륙에서 만난 새로운 종이라고 말한다.
챗GPT는 ‘정보의 비행기’인 셈이다. 이제는 챗GPT 하나와 이야기하면 수천 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지성과 연결되는 효과가 생겨났다. 인류 역사는 다른 사람과 연결의 밀도를 높여 온 역사다. 과거에 도서관이 책을 통해서 다른 지성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공간적 장치였다면, 챗GPT는 가상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다른 지성과 연결해 주는 장치다. 챗GPT는 지성 간의 병렬연결을 혁명적으로 폭증시킨 새로운 방식이다. 그뿐 아니라 챗GPT는 번역을 통해서 다른 언어의 문화권과도 연결해 준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똑똑한 인류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또 다른 형식의 공간 혁명이다.
과거의 도서관의 역할을 Chat GPT가 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정보를 가진 수도사가 권력을 잡았다면, 이제는 Chat GPT를 제대로 활용하는 존재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17. 스마트 시티
스마트 시티는 인간이 만든 도시 진화의 마지막 단계이다. 도시를 의식을 가진 생명체로 만드는 것이다. 생명체에는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호르몬이 필요한데, 수 많은 센서와 정보로 이를 이루려고 한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기계와 건축의 융합을 먼저 이야기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이동하는 공간에서 머무는 공간이 된다. 자동차를 집에 플러그인하면 방이 하나 더 늘어나고, 회사 건물에 플러그인하면 사무실이 된다. 건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물이 공급되고, 배수되기는 불편하니 물을 쓰는 부엌이나 화장실은 공용 공간으로서 건축물에 남아 있고, 자동차들이 여기에 도킹하는 새로운 건축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사무실 외에도 학교, 병원도 이런 유기적인 도시 건축에서 기능할 수 있다. 문제는 움직이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하느냐가 관건이다.우리는 이제 우리가 만드는 기계만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지경에 이르렀다. 이 도시는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 생태계가 자연과도 공존해야 지속 가능할 것이다. 이미 근대 도시부터 자연 생태계와 공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향후 모든 사물에 인공지능이 들어간 생태계가 지속 가능할지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문제다. 혹은 인간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유기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연 생태계는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은 완전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은 자연 생태계가 필요 없는데, 인공지능 로봇이, 혹은 자동차가, 혹은 건축물이 굳이 지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무한한 태양광이나 우주의 다른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떠날테니 인간과 인공지능이 싸울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인간적이고, 속 좁은 생각이라는 말도 한다. 미래는 예측할 수가 없다.
닫는 글
인류 역사 발전은 두 가지 큰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공간 확장의 역사다. 인류는 수평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전 지구로 퍼져 나갔고, 수직적으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여 고층으로 확장하였다. 또 하나는 집단의 규모를 키우는 역사다. 공통의 이야기와 건축, 교통, 통신으로 도시를 키웠고, 계속 키우고 있다.
이러한 인류 역사 발전의 흐름은 결국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현실은 민족주의와 종교로 인해서 세계가 하나가 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신 구글, 애플, 스타벅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다국적 기업이 동일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도하여 인류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결국 권력은 정보가 모이는 다국적 기업에게 흘러 가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유하는 공간을 두고 보면 빠른 교통 수단으로 공간을 팽창시켰고, 건축 기술을 발전시켜서 한 곳에 집중시켰다.둘은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움직임으로 보이지만, 이 두 큰 흐름을 ‘체험의 밀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경향으로 이해된다. 인류 역사는 한마디로 ‘단위 시간당 체험의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비행기 덕분에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홍콩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수십 층짜리 건물이 들어선 고밀화된 도시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을 쉽게 마주치고 만난다. 스마트폰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양한 지역의 삶을 직접 가지 않고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단위 시간당 더 다양하고 더 많이 체험할 수 있게 발전해 왔고, 그 진화의 단계에서 건축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나는 지은이의 이야기 중에서 건축을 중심으로 정리했지만, 건축이 아닌 문명과 문화, 국제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교양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 건축이 인류에게 주는 의미를 기능 뿐만 아니라 문명과 진화까지 연관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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