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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0] 김태훈의 편견: 편견 속에서 진실을 찾다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1. 1. 29. 10:37

    책이름: 김태훈의 편견
    곁이름: 열 개의 오해, 열 개의 진심

    지은이: 김태훈

    펴낸곳: 예담

    펴낸때: 2014.11

     

    팝 컬럼리스트 김태훈이 문화예술계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집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워낙 유명하고 대중적인 사람들이라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인상적이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우 곽도원은 영화에서 쟁쟁한 배우들과의 연기를 이야기하면서 리액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분들과 경쟁을 한다거나 기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연기하는 거에 대해서 제가 반응하고 리액션하면 이분들이 행복해하실 거라는 걸 알아요. 저도 그걸 받는 게 행복해요. 진실하게, 강력하게 주시거든요. 그러면 강력하게 받아서 강력하게 얘기하면 돼요. 아니면 의외성으로 던지든지. 그렇게 하고 나면 둘이 행복해해요. 우리가 잘됐다고 느끼고 관객들이 행복해할 걸 아니까요. 그래서 저는 잘하는 선배님들을 만나면 행복해요. 그런데 후배님들을 만나면 가끔 자기 것만 준비해서 자기 것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연기는 단순히 대사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와 같은 호흡으로 극을 전개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때 리액션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마치 탁구를 치는 것처럼. 상대가 단순히 이기기 위해 얕은 기교로 나에게 이상하게 공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드라이브로 묵직하게 보내면, 내가 강력한 맞드라이브로 희열을 느끼고, 상대도 이에 맞서고... 길게 길게 치는 탁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치인이자 프로파일러인 표창원과는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한다.

    보수냐, 진보냐. 저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은 어쩌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사상이나 이념 등의 철학적인 노력을 통해 그리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면, 고루 잘 사는 사회거든요. 나는 남 위에 올라서 있고 남들은 다 고통받는데 나 혼자 배부르게 먹고 있는 모습을 상정하는 이상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어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방법 면에 있어서 급진적으로 모든 것을 바꿔서 현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평등이 더 우선되는 사회, 이것이 진보의 방법이죠. 보수는 보다 현실적이죠. 그동안의 인류 역사,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서 쌓아온 것이 최선은 아닐지 모르지만 차선이다,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런 접근인거죠. ...(중략).... 누리고 가진 사람들이 일부를 내어놓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평등하지는 못해도 고루 잘 사는 이상을 향한 계속적인 거북이 걸음을 해나가자는 게 보수의 모습이잖아요.

    보수에 대해서 명쾌하게 얘기했는데, 실제 우리의 보수가 이런 모습인지는 의문이다. 이상적인 보수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보수가 이런 모습, 이런 가치를 추구한다면 충분히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많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뮤지컬 음악 감독 장소영과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고3 때였지만, 그전까지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열심히 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찾았을 때 그것에 매진할 수 있는 능력은, 좋아하지 않아도 열심히 했던 세월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 열심히 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 열심히 하는 습관이 없는 상태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하는 데에 지구력이 별로 없어지게 되는 것인가? 이 경우는 아마도 열심히 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좋아지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가수 신해철과는 '산책 실렁실렁교'라는 종교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은 보너스라는 얘기를 한다.

    인생은 산채 나온 거라는 거예요. 일하러 나오거나 싸우러 나온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실렁실렁 산책을 다니고, 하루에 세 번 산책을 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신해철을 세 번 외치면 너는 행복해진다는 종교인데요. 핵심 개념은 이거예요. 소명, 내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이루게 되어 있는 나 자신 같은 건 없다. 그러면 왜 태어났느냐. 태어나는 게 목적이어서, 유전자 물질을 전달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태어남으로써 목적을 다한 거고 인생이란 보너스 게임이라는 거예요. 저희 종교의 핵심은 '우리가 사는 건 보너스 게임이다. 얼굴 붉히지 마라'예요.

    이런 신박한 생각을 하다니. 태어난 목적은 유전자 전달이라는 것은 생물학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논리는 인생을 참 여유있게 즐기는 새로운 시각이라서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신해철은 인터뷰 이후에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슬프다.

     

    소설가 천명관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미학적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90년대의 문학에서는 대부분 1인칭이었어요. 주인공이 작가 자신인 거죠. 당시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지식인이죠. 대학가 언저리나 에술계 언저리를 떠도는, 내면적 자아들이거든요. 주인공이기도 하면서 작가 자신이기도 한. 대부분 소설가들도 대학 시절의 얘기라든가, 주인공들은 항상 고뇌에 차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런 인물들이 저는 솔직히 조금 닭살스러워요. 그리고 그런 자아가 저에게는 별로 없어요.

    그래서 소설을 삼류스럽게 쓰고 싶었다고 한다. 짝퉁 이소룡처럼..... 나도 90년대 사변적 소설들의 주인공들에서 볼 수 있는 내면적 자아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소설들이 답답했다. 맨날 알 수 없는 고독에 빠져서 알 수 없는 생각들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게 뭔가.... 재미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 때에는 별로 소설을 보지 않았었다. 그런 생각을 천명관도 하고, 그래서 이에 반하는 미학으로 이야기를 중심에 둔 흡입력 강한 소설을 쓴 것 같다. 마음에 든다.

     

    마술사 이은결과의 인터뷰도 있는데, 마술사라는 직업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술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다보니까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데, 그것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놀라움까지 함께 주어야 하니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모르는게 뭘까? 대중문화와 예술과 인문학 쪽에 대해서 거의 모든 분야를 아는것 같다. 아는 것이 많은 만큼 하는 것도 많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는 것이 워낙 많다보니 인터뷰어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는 장면들이 좀 있었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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