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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5] 인턴일기: 의과대학 희망하는 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6. 8. 29. 10:00
책이름: 인턴일기
곁이름: 초보의사의 서울대병원 생존기
지은이: 홍순범
펴낸곳: 글항아리
펴낸때: 2008.12
인턴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전공을 정하지 않고, 1년 동안 다양한 과를 경험하면서 배우는 수습의사이다. 인턴을 마치면 레지던트 시험을 통해 과를 정하고, 다시 4년 동안의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된다. 이 책은 지은이가 인턴 시절에 짬짬이 수첩에 기록했던 메모를 바탕으로 쓴 일기이다. 인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인턴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를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었다.
먼저 인턴을 지원한 병원에서 선발되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보통 한 달 단위로 소속된 과를 바꿔 다니며 일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과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누구는 쉬운데로, 누구는 어려운데로 갈 수 있는데, 복불복이란다. 그래서 인턴 전원이 제비를 뽑아서 거기에 기재된 순서대로 과를 다니게 된다. 지은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레지던트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힘들다는 신경외가가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라매 병원 파견인데, 가장 어려운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턴들은 수습이기 때문에 진료를 보지는 않고, 대부분 보조적인 처치를 주로 한다. 코에 삽관하기, 정맥주사를 놓기, 차트 준비하기, 필름 준비하기, 다른 과의 협조 구하기, 타 병원 환자 이송하기, 당직 서기, 식사나 야식 공급하기 등이 있는데, 병원에서 제일 말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들은 대부분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주로 근무하는 곳은 병동과 수술장, 당직실 등이 된다고 한다. 일하는 얘기를 보면 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무리 수련 과정이라지만 이렇게 혹사해도 되나 싶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혹사당한 인턴이 처치를 하면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지. 의사가 혹사당하는데, 환자가 차도가 있을까? 편하게 해주면 기강이 해이해져서 오히려 더 많이 사고가 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껏 해야 되지 않나 싶다. 인턴의 인권은 없나?
읽으면서 의과대학의 공부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다.
의과대학 공부는 학생들의 감각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일단 암기부터 해야 한다. 환자의 문제를 직접 다루는 일도 제한된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점진적으로 숙련되는 공부 방법은 용납되지 않는다. 시행착오의 대상이 환자이니 당연한 일이다. <중략>
그러니까 의과대학 공부는 학생들의 건강에 대한 감각에 기초하지 않는다. 의학적 사실들과 학생들의 감각 사이에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기존의 감각을 오히려 깨뜨리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지식을 한꺼번에 습득하는 과정이 의과대학 공부이다. 그런 연후에 환자를 진료할 자격이 주어진다.
결과적으로 수학은 하루 공부하지 않는다고 실력이 도망가지 않는다. 하지만 의과대학 공부는 하루 놀면 그만큼 까먹는다. 그럼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나면 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나? 아니, 이후로도 물론 잊어버린다. 다만 잊어버렸음을 아는 능력, 그래서 필요할 때 다시 찾아보는 능력이 생긴다.
의과대학의 공부는 기존의 감각은 다 지우고 새롭게 외우는 것이란다. 결국 암기력이 중요하다는 얘기. 그리고 원서를 많이 볼테니 영어는 필수이겠지. 주변에 아는 의사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의사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 다음에 인상적인 장면은 소아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때의 이야기들을 뽑을 수 없다. 그 병동의 풍경을 요약하면 아픈 아이들의 눈, 말못하는 입, 살기 위해서 헐떡이는 가슴, 핏줄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부어오른 팔다리,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밖에서 울고 있는 젊은 부부.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장면들이 참 많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들이 아픔을 겪는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잘 못 보겠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훨씬 읽기 쉽게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어서 이해하기 좋았다. 의과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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