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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72] 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정말 새로운 시선행간의 접속/역사 2012. 11. 21. 12:18
우리 역사에서 고대왕국이라고 하면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 나라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은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시선인가 봤더니 탈민족주의, 동아시아 세계, 엄밀한 사료비판에 입각한 것을 말하고 있다.
탈민족주의는 말 그대로 민족주의적인 것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근대적 역사 연구에서 식민지, 분단 등의 상황은 민족주의 역사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게 했지만,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지금, 그것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동아시아 세계는 고립된 존재가 아닌 주변으로 시야를 넓혀야만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일본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엄밀한 사료비판이란 사료에 적혀 있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의심하고 의심하여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삼국시대를 보니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삼국은 언어가 통했는가에 대한 애기가 먼저 나온다. 우리는 같은 한반도에 있으면서 말이 안 통했을리 없고, 실제로 서로 교류한 기록이 있으니 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춘추가 고구려 가서 구원 요청할 때, 지도층이니까 서로의 언어를 배워서 한 것일 수도 있고, 승려 같은 지식인들끼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지 언어 자체가 같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우리 안에서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백제의 북방계 언어군과 진한, 변한, 가야, 신라의 남방계 언어군이 있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신라가 백제를 공격한 이유는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백제의 공격으로 죽어서 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백제가 일본을 끌어들이고,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이면서 싸움이 커졌고, 거기서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것이다. 그 다음에 신라는 고구려를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당나라가 "너네들 맨날 싸움하고 도움 요청하고 그러는 것이 귀찮아서 고구려를 평정해야겠다."면서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를 중국과 같은 대국으로 보고 공격할 생각이 없어서 처음에는 눈치보면서 소극적으로 참전하다가 고구려가 밀리니까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다. 그 전에 고구려의 땅은 당나라가, 백제의 영토는 신라가 갖는 뭐 그런 약조를 한 것도 있다. 그러니 고구려가 망한 후 신라는 고구려의 대부분 땅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삼국이 같은 기원을 가진 나라라는 인식도 없었을 거라는 얘기도 한다. 특히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동족으로 보지 않고 있다가 당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결속하기 위해 삼국을 하나로 인식한 것일 수도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하나로 보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잣대일지도 모른다.
고대사에서 삼국 이외에 다른 나라들에 대한 얘기도 한다. 삼국 중심의 인식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의 인식일 뿐이고, 실제로 온전히 삼국만이 존재햇던 시기는 100년 정도이고, 나머지 시기에는 여러 작은 나라들도 있었다는 얘기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탐라이다. 제주도에 있는 나라인데, 일본, 백제와 외교 활동을 할 정도로 백제에 속하지 않으면서 존재했었다. 또한 백제가 한강과 충청도 쪽을 차지하면서 전라도 쪽까지 세력을 넒히지 못했을 때에 영산강 유역에 마한의 잔여세력, 혹은 신미국으로 불리는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한강 상류와 동해안을 중심으로 말갈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 세력들이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적으로는 삼국과는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기록이 없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그나마 가야가 기록을 남겨서 그 존재가 다른 세력보다는 인정받고 있지만 사실 가야도 가라, 대가라, 안라, 다라와 같은 국호를 사용하며 신라와 대등하게 세력을 키웠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은 단일과 통합이라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관에 의존한 것이고, 이런 역사관의 단점은 다양성과 고유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열과 다툼이라고 볼 수도 있는 실제의 현실을 인정하면 오히려 풍성한 고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신라'라는 국명의 기원도 얘기한다. 신라는 계림, 시림 등으로 불렸는데, 이것들은 사실 신라어로 '새벌'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다. 새벌은 새로운 벌판, 경주의 땅을 애기한다. 이를 한자를 빌려서 표기한 것이다. 먼저 신라를 보면 '새 신', '벌릴 라'에서 뜻을 빌린 것이다. 계림은 '닭 계', '수풀 림'인데, 닭은 새의 일종이니까 '새'가 나온다. '림'은 '벌릴 라'와 비슷한 음이라서 가져온 것으로 본다. '시림'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음을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한자음에 대한 지금의 생각과 다른 점이 나오는데, 지금은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음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음이 통일되었지만 당시에는 하나의 한자가 여러 개의 음으로 읽히면서 음을 다양하게 이용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소리(혹은 신라어의 소리)를 한자가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다양하게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었겠다.
그밖에 백제에 대해서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렇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고, 아무튼 이전까지 알고 있던 역사와 역사관들에 대해서 정말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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