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라는 영화가 있었다. 비행 청소년들과 노숙자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거칠게 드러내서 영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불러 일으킨 영화였다. 지금은 없어진 인천방송에서 이 영화에 출연했던 청소년들 중 2명이 아시아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쁜 아이들은 정말 나쁜 아이들이었다. 한 명은 중학교 중퇴, 또 한명은 고등학교 중퇴... 당연히 가출한 상태이고, 오토바이 폭주도 하고, 유흥가에서 배회도 하고, 돈도 빼앗고, 절도도 하고, 또 당연히 소년원에서도 몇 년 있어 봤고...그런 애들이 아시아 여행을 한다. 그냥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특명을 완수하면서... 특명 완수 못하면 여행비를 주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과연 이 힘든 과정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과정에서도 힘들었지만 여행가기 전부터 힘들었다.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부모님 동의서와 학교장 동의서가 필요했다. 가출한 상태이고, 그 장기 가출로 학교도 퇴학당한 상태인데, 어떻게 부모님과 학교장의 동의서를 받을 수 있나? 거기다 한 학생은 무면허 오토바이 폭주로 벌금 40만원이 미납된 상태이고, 또 한 학생은 법무부 보호관찰 대상자이어서 출국할 수가 없다. 아무튼 방송국의 도움으로 부모님과 학교장 동의서를 받고서 벌금까지 납부하여 간신히 여권을 만들어서 출국할 수 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아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얘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하고, 안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있었을 것 같다. 방송국 관계자들만 똥줄타고.....여정은 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베트남-중국 순으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화산에서 유황 덩어리를 캐는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특명이었다. 일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깨우치는 모습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페난족이라는 원주민들과 함께 3일동안 생활하는 특명이었다. 원주민들과 수영도 하고 빨래도 하고 꼬마들과 놀기도 하면서 평화로운 3일을 보냈다. 거기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국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어린이 에이즈 환자의 모습을 보고서는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지뢰제거 학교에서 교육 받고 지뢰제거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특명을 완수한 후에는 자신들 스스로 지뢰로 다친 사람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서 봉사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태권도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질문을 받고 쩔쩔매면서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학생이었냐는 질문에 한국에서의 자기 생활들에 대해 고백을 하면서 반성과 다짐을 한다.
또 베트남에서는 빈민가 체험을 하고 빈민가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특명이었는데, 소녀의 소원은 눈을 고치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이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눈 수술비를 마련할까? 아이들은 한인학교의 도움으로 삼성전자 공장에서 TV를 기증받아서 직접 팔고, 병원도 찾고 하면서 수술을 받게 해준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많이 느꼈을 것이다.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그리고 중국을 다닐 때에는 IMF가 터져서 특별한 특명은 없고, 대신 알아서 돈을 벌어서 여행비를 마련하여 다니는 것이 특명이었다. 아이들은 노숙도 하고, 공사장 일, 시장 일 등을 하면서 돈을 마련했고, 중간중간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을 돌아다니고, 인천으로 왔다.
아이들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느낀 점들을 말한다. 지난 생활에 대한 후회,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앞으로는 변해야겠다는 다짐 등...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이다. 이들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낙인만 찍는다면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느낄 수 있게끔 유도하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근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아이들, 이제는 청년이 되었을텐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까 한아이는 잘 지낸다고 하고, 한 아이는 하늘나라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