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았다. 한석규와 김지수가 나오는 영화인데, 주변의 현실 때문에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한석규는 정신 장애 형을 부양해야 하는 노총각이고, 김지수는 아버지가 남긴 억대 빚을 떠안고 사는 노처녀이다.
이 둘은 힘든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지만 마음 터놓은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이다. 영화의 곳곳에는그들의구질구질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들이 나온다. 그렇다고해서 사랑의 감정이 없겠는가? 그들도 사랑의 감정이 있지만 그들에게 사랑은 사치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럼 이 사랑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김지수가 말한다.
"여기까지만 하죠, 우리"
한석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든가, 그래도 잘 해보자라든가, 사랑으로 극복해보자라든가, 서로 도와가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든가, 우리 둘이 도망가자라든가 하는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너무 입에 발려서 무책임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도 말없이 받아들인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거기서 끝인가? 아니다. 그 다음이 있다. 그 다음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조금씩 간직하는 마음이 있다.김지수는 한석규와 함께 가지 못했던 초등학교에서의 즐거운 나의 집 종소리를 핸드폰으로 한석규에게 전송하며 한석규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한석규는 형과 함께 산행을 한 사진을 김지수에게 보내면서 김지수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들이 다시 사랑을 하게 될지 우정을 나누는 관계가 될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어떤 관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만남은 그들이 만나기 전보다는약간은 더 여유있고,약간은 더 웃을 수 있고, 약간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이 의미 있는 것은 그런 것인 것 같다. 사랑을 이루어졌네, 안 이루어졌네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