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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65~67] 장길산 제2부 (3권~5권) 군도: 진정한 활빈을 위하여 다시 의기투합행간의 접속/문학 2013. 8. 8. 10:15
2부 군도는 의형제를 맺은 패거리들이 재결합하기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일을 했고, 그들은 왜 다시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1부에서 의형제를 좀 일찍 맺었다고 했는데, 그들은 의형제를 맺고 모두 같이 하나의 목적으로 함께 행동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의형제를 맺고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세상을 좀더 접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혹은 스스로의 깨달음 등으로 다시 모이게 된다. 이런 점들은 홍명희의 임꺽정과 다르다.
1. 인물 정리
2부도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줄거리는 얼추 언급하게 되므로 인물을 정리해본다.
1.1 장길산과 주변 인물들
-장길산: 금강산에서 운부대사 만나 가르침 받으려 했으나 아무 가르침 없이 농사나 지으라는 말에 고성 정학에게 간다. 꽃재말 구휼사업에 도와주고 설유징과 함께 다시 운부대사에게 와서 농사 지으며 가르침을 받는다. 금강산 운부암을 나와 운봉산과 병풍산에 있으면서 수도한다. 서산이목의 금점에서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해주고 유복령을 죽이고 맹산현감을 혼내준다. 구월산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한다.
-운부대사: 금강산 운부암 주지스님. 길산에게 가르침을 준다. 전남 강진 출신의 양반이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돌아다니며 수행하다 중이 된다. 유형원과 친분을 갖기도 했다.
-정학, 정신 형제: 고성의 길산 친구. 설유징을 도와 꽃재말 구휼 사업을 같이 한다.
-최헌경: 전기수 출신. 아는 것이 많아 지혜가 있다. 정학형제, 길산, 설유징 등과 함께 꽃재말 역병을 물리친다.
-설유징: 정선 출신, 안창고을 처가댁에 있는 선비. 벼슬에 뜻이 없고, 농서나 의서를 읽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한다. 꽃재말 역병을 치료하도록 도와준다.
-봉순이: 길산의 아내. 길산을 기다린다.
-수복이: 길산의 아들
-소장마니: 지대골 젊은 심마니. 길산을 도와 광부들이 금점을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김선일: 유복령의 말에 속아 잠채잡이로 들어온 광부. 비참한 생활을 못견디고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가 길산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철옹산 진대골 심마니들과 힘을 합쳐 광부들을 구한다. 돌팔매를 잘한다. 길산과 함께 구월산으로 입산한다.
-유복령: 철옹산 서산이목의 잠채잡이. 광부들을 가혹하게 다뤄 길산의 손에 죽는다.
1.2 묘옥과 그 주변 인물들
-묘옥: 고달근 패거리와 함께 당진에 갔다가 유필준에게 잡혔으나 이경순이 구출하여 여주에 온다. 이경순이 옥에 갇히자 경순의 아내가 떠나보내어 송파로 흘러들어온다. 생계를 위한 돈을 챙긴 보퉁이를 날치기 당해 여각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장쇠라는 깍정이의 도움으로 보퉁이 찾고 그 돈으로 거여에서 주막을 운영하여 번성한다. 그 과정에서 고달근을 다시 만난다. 후에 고달근을 통해 자신을 찾는 이경순을 만나게 되고, 마음에서 길산을 떠나보내고 이경순을 받아들인다.
-이경순: 여주 도공. 상민 출신의 부가옹. 묘옥을 보고 마음에 품게 되지만 돈으로 산다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묘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당패를 따라 당진까지 갔다가 유필준에게 사당패가 잡히자 구출하고 여주로 돌아온다. 포교에게 추적을 당해 여주 옥에 들어갔다가 이방의 도움으로 자신은 나오지만 이방의 배신으로 아내와 재산을 잃는다. 양주로 도망갔다가 파주, 문산에 정착하여 주막을 운영하지만 뒤로는 대장간에서 총포를 만들어 재산을 불린다. 총포를 만들어달라는 우대용을 만나 그 대신으로 묘옥을 찾기를 요청하고 천수-모신-달근을 통해 묘옥을 만난다.
-전생이: 이경순 분원의 외눈 외팔이 하인. 경순이 옥에 갔다가 풀려나는 동안 분원일을 맡아한다. 이경순이 집을 떠날 때 함께 한다. 총포 제작 기술이 뛰어나다. 경순과 함께 파주까지 다니면서 면천하여 아우가 된다.
-유이방: 여주 감영 이방. 이경순의 친구이자 배신자. 경순이 사람을 죽이고 쫓기는 것을 알고 처음엔 도와주지만 자신의 딸이 양반 남자에게 채이고 자결하려 하자 아내의 원망을 듣고 이경순의 재산에 욕심을 부린다. 이경순을 풀어주고 형방이 그를 죽이자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경순이 이 사실을 알고 경순의 손에 죽는다.
-고달근: 안성 청룡사 사당골 사당패 모가비. 당진에 가는 길에 유필준을 욕보인 것이 화근이 되어 유필준에게 거사와 사당들을 빼앗긴다. 당진 주변 패거리들을 모아 유동지의 집을 습격하여 거사와 사당을 찾은 후 흩어지고, 재산도 털어 송파로 도망친다. 장물을 처리하고 천마산 솔부리골에 있으면서 부두령이 되어 도적질을 한다. 장물을 처리하러 서강 동막거리에 왔다가 노름판에서 속임수로 홍천수의 돈을 털었다가 우대용에게 당한다. 우대용과 홍천수, 모신을 통해 이경순이 묘옥을 찾는다는 것을 알고 둘을 연결해준다.
-황회: 양주 사당패 모가비. 고달근과 함께 유치옥 집 습격에 가담하여 함께 송파를 거쳐 천마산까지 간 후 솔부리골 부두령이 된다.
-큰쇠: 동작나루 복만이네 패거리 중에서 나온 한 대를 이끄는 모가비. 고달근 패거리와 함께 유치옥 집 습격에 가담했다가 포교들의 미끼가 잡힌다.
-복만이: 동작나루 사당패. 모가비. 천마산 솔부리골 두령
-홍련: 고달근 사당패 사당. 묘옥의 동료
-박거사: 고달근 패거리의 거사
-시동: 황회 패거리의 거사
-유치옥: 당진의 강상. 고달근 패거리에게 습격을 당한다.
-유필준: 유치옥의 아들. 한량으로 길거리에서 고달근 패거리에 당하자 당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을 붙잡아놓는다. 이에 고달근 패거리에게 습격을 당한다.
-장쇠: 송파나루 깍정이 아이. 묘옥에게 도움을 받고 보퉁이를 찾아주고 묘옥과 함께 그의 주막에서 일한다. 묘옥의 소개로 천마산 솔부리골 달근과의 연락을 담당한다.
-까마귀: 송파나루 깍정이패 꼭지. 고달근의 장물을 처리해준다.
-정원태: 노적사 장발승. 사당 출신 무당과 결혼하여 주변에 사당패, 걸립패들이 모여 패를 이룰 수 있게 한다. 솔부리골을 지배한다.
1.3 우대용과 주변 인물들
-우대용: 배행수의 소개로 강화 춘득이네 도사공으로 일한다. 강주인에게 어음 사기를 당하자 홍천수의 도움으로 받아낸다. 중간에 홍천수의 부탁으로 노름판에서 거짓 놀음을 하는 고달근을 혼내준다. 강화로 돌아와서 속여서 이득을 취한 것을 알게 된 춘득에 의해 매맞고 쫓겨난다. 모신의 제안으로 석범철, 박성대와 함께 수적이 되기로 하고, 이경순에게 총포를 부탁하고, 묘옥을 찾아준다. 경강에서 원부자 배를 습격한다. 돛점에 산채를 짓고 수적 노릇을 하고, 중국으로 가는 사행선을 습격한다.
-석범철: 우대용 밑에 있는 부도사공(대두). 도사공인 우대용을 얕보고 물건들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노름도 하면서 우대용에게 덤볐다가 우대용의 사내다움에 그를 받들어 모신다. 경강에서 홍천수의 도움으로 강주인에게 사기 당한 것을 돌려받아 이득을 취하고 부도사공을 그만두고 밤섬에 정착한다. 그러나 강주인의 복수로 쫓기면서 모신의 제안으로 우대용과 함께 수적이 된다.
-박성대: 수로 및 선박 전문가. 석범철의 동료. 석범철, 홍천수와 함께 일을 도모하면서 이득을 취했다가 강주인의 복수로 쫓기면서 모신의 제안으로 우대용, 석범철과 함께 수적이 된다.
-홍천수: 동막거리 중도아. 협기 있고 왈짜있어 일을 잘 해결한다. 대용의 물건도 곱절로 찾아준다. 그러나 강주인의 복수로 쫓기다가 포도청에 잡히고 서북쪽 관노가 되어 이동하는데, 모신의 도움으로 도망쳐서 우대용과 함께 수적이 된다.
-모신: 서강 장물아치. 겉으로는 여각을 운영하면서 장물을 처분한다. 우대용에게 수적이 되도록 권한다.
-물치: 우대용 수적패의 정탐꾼
-유춘득: 대용을 고용한 선주. 대용이 거짓으로 이득을 취한 것을 알고 그를 쫓아낸다.
-윤원주: 경강의 강주인. 우대용의 배에 물건을 싣고 와서 빼돌리고 돈은 안 주다 우대용의 부탁을 받은 홍천수에게 물건값의 곱절을 빼앗긴다. 이에 홍천수에게 복수하여 홍천수는 잡히고, 석범철과 박성대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강경 원부자: 호조판서의 아우의 돈으로 부를 이루고 대상이 된다. 경강에서 우대용에게 습격당한다.
1.4 강선흥과 주변 인물들
-강선흥: 장연에서 형 대신 부역 나갔다가 궁중 물건을 관리하는 전화의 노비를 가장한 한양 대신들의 사노를 패주어 고초를 당한다. 이에 분개하여 장연을 떠나 백운산에 입산하여 화적이 된다. 첫봉이 형제와 달마산 수돌이와 불타산 심백을 습격하고 자신은 달마산에 머물며 지배한다. 우대용의 조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령 동춘만을 습격한다. 달마산을 습격하는 토포군에게 총을 맞고 부상당하고, 달마산을 버리고, 구월산으로 들어간다.
-첫봉이, 둘봉이: 강선흥의 친구 형제. 밀무역하다 불타산 심백이 패가 방해하자 그 부하를 잡고 있는다. 심백이 패가 그 집을 습격하여 어머니와 셋봉이를 잃는다. 이를 복수하고자 강선홍과 함께 백운산에 입산하여 심백이를 습격하였으나 놓치고 불타산만 접수하여 첫봉이가 불타산을 지배한다. 고만이의 배신으로 토포군이 습격해 와 첫봉이는 죽고 둘봉이는 넷봉이가 있는 금사사로 피신한다.
-변가: 백운산 화적 두목. 학령에서 묘옥을 겁탈하려다 강선흥에게 당하고 이후 강선흥이 입산을 위해 일당을 꾸리기 위해 찾아갔을 때 강선흥을 두목으로 모신다. 이후 그의 곁에서 함께 한다. 첫봉이 형제들과 함께 불타산을 습격한다.
-고만이: 백운산 화적 변가 패거리의 여자. 장연 저자에서 남자를 많이 접했었다. 수돌이를 습격할 때의 인연으로 첫봉이와 결혼하여 지내다가 산채 생활의 답답함과 첫봉이와의 불화로 배신하여 토포에게 정보를 주고 불타산이 습격받도록 도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용두원 주지와 통정하여 용두원의 안마님이 되려 한다.
-칠성이: 백운산 변가의 졸개. 고만이 오빠.
-수돌이: 달마산 화적 두목. 강선흥 패거리에게 당하여 죽는다.
-심백이: 사노의 소생. 여환, 묘정 등과 함께 보경 스님 밑에서 수행했으나 파계하고 법호와 함께 불타산 중심으로 주변 절을 협박하여 사찰 장토를 관할한다. 첫봉이네의 습격으로 부상당했을 때 법호와 함께 양주로 피신한다.
-법호: 관북 세습 무녀의 작식. 심백의 동료 스님. 보경선사 밑에서 행자 노릇을 하다 그만 두고, 떠난다. 불타산에서 심백과 함께 화적질을 한다. 첫봉이의 습격으로 부상당한 심백과 함께 양주로 피신한다.
-강인흥: 강선흥의 형. 선흥이 억울하게 맞고, 화적이 되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보내준다.
-넷봉이: 첫봉이의 막내동생. 심백이 화적들이 첫봉이네 집을 습격할 때 다리에 총을 맞고 형들과 다닐 수 없어, 금사사 원주스님께 맡겨진다.
-동춘만: 재령 왕가의 농토인 궁방전을 관리하는 집강.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취재하여 달마산 강선흥 패거리에게 습격당한다.
1.5 김기, 갑송이, 박대근과 그 주변 인물들
-갑송이: 달마산에 간 사이에 도화가 어머니를 죽이고 안서방과 통정한 것을 알고 도화를 죽인 후 탑고개를 떠나 월정사로 가서 여환 스님과 밤새 술 마시고, 중이 된다. 법명은 법주스님.
-도화: 갑송이의 아내. 사당 출신. 갑송이 몰래 은율 안서방과 통정하다 시어머니와 다투고 우발적으로 죽인다. 갑송이가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손에 죽는다.
-김기: 길산과 함께 자신의 딸을 빼앗아간 여첨지에게 복수하려다 그 집 며느리가 된 딸을 보고 갈등하다, 그 갈등이 산속에 있으면서 반상을 구별하는 세속의 마음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고 딸을 그대로 보낸다. 이후 반상의 구별을 버린다. 길산과 함께 구월산의 운영을 위한 여러 안을 구상한다.
-박대근: 행수에서 사대전 임방의 좌장이 된다. 인삼재배 기술을 가진 모녀를 만나 그들을 지원한다.
-언실: 전남 화순 출신. 인삼 재배 기술을 연구한 아버지가 살 길을 찾기 위해 송도로 가자 그 아버지를 찾기 위해 어머니, 동생과 함께 송도로 왔지만 못 찾는다. 인삼 재배 기술을 갖고 박대근의 지원을 받아 송악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인삼을 재배한다.
-탄실: 언실의 동생.
-최윤덕: 만수산 물머리의 나뭇꾼. 양인 출신. 박대근의 눈에 띄어 언실과 결혼한다.
-강말득: 구월산에서 빠른 발로 전령 노릇을 한다.
-강끝춘: 구월산 밑 주막 운영한다. 김기가 딸을 만날 때 도움을 준다.
-천동이, 만동이 형제: 봉산에 머물면서 서북지방의 은점에서 잠채잡이를 하면서 구월산의 자립을 돕는다.
2. 인상적인 장면들
양주 사당패 모가비인 황회가 유치옥의 집을 습격할 때 한 말이 있다. 먼저 유치옥이 평생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노력해서 얻은 재물이라고 말하니까 황회가 감동적인 대사를 날린다.
이거 봐, 그 재물이 어디서 생겼어. 먹지 않고 쓰지 않아 생긴 재물이란 제 몸이나 족히 가리면 되는 게야. 경강에 여각이 여러 채, 배가 수십 척, 객주가 여럿, 새벌에 전장이 수십 결인데 재물 많은 놈은 원래가 죄인인 법이야. 어째 그런고 하니 재물이란 제 집에서 앞마당을 벗어나게 되면 죄를 짓기 시작하거든. 남의 땅을 밟고 남의 지붕 밑을 엿보고, 남의 허리춤을 노리는 게야. 젠장할 새벌 논을 몽땅 먹어들어갈 제 그 땅을 잃구 소작질하게 된 농투성이들은 그럼 게을러서 그리되었나? 우리네두 걸뱅이루 떠돌아다니는 놈들이지만 세상 물정은 뜨르르하게 꿰이는 사람들이여.
황회는 배우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사당패에서 굴러먹는 사람이지만 부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순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투박하고 거친 언어이지만 본질을 분명하게 짚고 있는 이 대사는 감동적이다. 단, 황회가 이렇게 명민한 사람이 아닌데,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약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빼고는....
길산이 금강산에서 운부대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요청하는데, 운부는 그저 농사나 지으라고 한다. 이에 길산은 그게 무슨 가르침이냐고 생각하면서 정학을 찾아 산을 내려온다. 그러나 산을 내려와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운부의 가르침을 깨닫는다.
자꾸 붙드는 총각을 뿌리치고 걷는 길산은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귀밑이 뜨뜻하였다. 급한 마음으로 운부가 글이나 무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성을 냈던 자기가 참으로 운부의 말대로 버러지보다도 못한 놈인 듯이 여겨졌다. 길산은 굶주림을 알지언정 곡식을 얻기 위하여 땀을 흘리는 일의 고된 것은 채 느끼지 못하였고, 수업에는 몸 공부와 마음 공부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고, 따라서 운부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광대란 흘러다니는 자이니 몸도 마음에도 뿌리가 없으며, 살기 괴로우면 훌쩍 떠날 따름이었고, 따라서 울음보다는 냉소가 어울리는 셈이었다. 광대란 유동하는 자이니 굳건한 땅과 이웃이 있는 마을을 알 리가 없었다. 그가 밥 먹고 잠자는 방안 또한 저자바닥과 무엇이 다르랴. 우선 농군이 되는 수업을 하여야만 마을의 사정을 알고, 마을의 사정을 알아야만 백성의 참사정을 겪어서 아는 것이 아닌가. 광대에게도 고통은 있으되 자기를 파는 자로서의 씁쓸한 자조가 있을 뿐이다.
운부는 길산에게 광대의 눈이 아닌 농부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여 농부들의 아픔을 알게 하여 세상을 구원하게 하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농사를 권했던 것이다. 그리고 길산은 농민들의 실상을 보면서 서서히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 운부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
이런 길상의 깨달음을 운부는 이후에 길산이 정말로 금강산을 떠나게 될 때 당신의 입으로 얘기해준다.
지나간 몇해의 수도 생활이 네게 많은 힘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지금 암자에는 보살 중생의 도를 구하는 이들이 많이 모여 있으나, 길산이 너와는 다르다. 너는 네 말처럼 천한 백성이요, 나라를 등진 도적놈이니라. 실상 네가 천민으로 살면서도 그 안에서 개우치지 못하고 무엇인가 배우겠다며 나를 찾은 것을 혹자는 평하여, 스스로 성품을 잃고 배운 놈들에게 투신하였다고 탓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탓하는 이들이야말로 책상물림의 그럴 듯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의지는 있건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에 얼마나 안타깝더냐. 사람이란 모두 계기가 있어야 하나니, 저 숱한 백성들이 원통하고 억울하게 살면서도 언제나 막연할 뿐 종잡히는 생각이 없을 제 또한 어찌하더냐. 길산이 네게는 스스로를 먼 데서 바라보는 지난 며해였구나. 네 모습이 어떻더냐? 너는 바로 우리가 도모해야 하는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너는 팔도 천민들의 중심이요, 그들을 위해서 배운 것이다. 늘 너와 같은 백성들과 함께 있고, 언제라도 교만하고 잘난 자들과 같은 느낌이 들 적엔 차라리 자진하든지 너와 같은 자들의 토멸을 받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네 이루어짐과 더불어 죽을 것이다. 우리는 거름이요, 너희는 씨앗이며 뿌리와 같으니라.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잊지 말아라. 너는 천대받는 백성들의 울분이 화한 마음이요, 그 손발이고, 그 머리며, 그 무기가 되어라.
길산이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 발걸음에서 길산에게 해준 운부의 가르침은 그가 곧 변화된 세상을 이끌 중심이라는 것을 일깨워서 굳건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혁명은 지식인 계층보다는 압박받는 계층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하고도 통하는 것 같다.
길산은 철옹산 서산이목에서 금점의 참상을 보고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출한다. 그리고 잠채잡이와 함께 그들을 착취한 현감을 찾아가 꾸짖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말 속에는 나라를 속여서 금점을 알리지 않고 이득을 취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라를 속인다고 했을 때, 그 나라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닐진대, 그런 나라를 속였다는 것으로 꾸짖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 부분을 보면 길산은 왕이 중심이 되는 봉건적인 사고를 벗어나 백성이 중심이 되는 근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내용들을 보면 길산은 예의는 갖추되, 그것은 봉건적인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예임을 알 수 있다.
박대근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장면도 나온다. 인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갖고 있는 모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하여 함께 인삼 무역을 하겠다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저는 어쨌든 장사아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문이 되는 일이라면 염라대왕의 수염이라도 베어야겠지요. 허나 저는 이날까지 이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귀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이문이 쌓여서 재물이 되는데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위하여 쓰여져야 하리라고 믿지요. 우리 송상은 비록 사대부의 반열에도 들지 못하고 벼슬길에 나아가 귀한 지체도 누리지 못하지만 모두들 도주공 범여 같은 경륜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늘을 등지고 사민을 짓밟는 짓으로는 결코 큰 재물을 바랄 수가 없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장사하는 사람의 입에서 이문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현실을 보여준다. 하늘을 등지고 사민을 짓밟았던 것이다. 이문이 쌓인 재물은 사람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말. 현재에도 유효하다. 당연히....
갑송이는 도화가 다른 남자와 통정한 것을 알고 죽인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배신감에 죽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갑송이의 복잡한 마음이 들어가 있다.
도화는 남편을 등뒤에 두고 무덤 앞에서 삼배를 올렸다. 그녀가 절을 마치고 일어나느데 갑송이가 뒤에서 가슴을 껴안으면서 오른손으로 비수를 들어 옆구리에 깊숙이 박았다. 도화가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마른 풀 위에 넘어졌다. 도화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입을 가까스로 다물고 젖은 눈을 들어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흰 소복 위에 피가 검게 배어나왔다. 갑송이는 아내를 껴안은 채 다시 비수를 쳐들어 한번 더 찔렀다. 도화의 몸이 움칫했다가 아아, 하면서 짧은 비명을 지르고 축 늘어졌다. 갑송이는 아내의 시신을 안고 허공을 향하여 누워 있었다. 초승달이 검은 구름의 자취를 헤치며 하늘 위로 달려갔다. 그의 옷자락으로 스며들던 도화의 뜨뜻한 피가 바람결에 축축해져갔다. 갑송이는 이를 물고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씹어 삼켰다. 그는 아내의 몸에서 칼을 뽑아내어 머리 위로 던지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뜬 채로 멎어 있는 눈시울을 내리쓸었다. 갑송이는 아내의 다리를 가지런히 놓고 두 손을 모아 배 위에 얹어준 다음에 산을 뛰어 내려갔다.
갑송이는 도화를 끝까지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냥 살려두고 같이 살면 그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면 사랑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하려면 여기서 죽이는 것이 맞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갑송이의 마음. 그녀의 가슴을 뒤에서 안는 행동, 아내를 껴안는 행동, 시신을 안고 있는 행동, 결정적으로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삼키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을 진하게 엿볼 수 있었다. 한편 도화도 갑송이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갑송이가 그녀를 안고 비수를 찌를 때 그는 저항하지 않았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오히려 가까스로 입을 다물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런 행동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그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이 그리 불행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내가 본 소설이나 영화 속 살인 장면 중에서 가장 슬픈 살인 장면이었다.
3. 알게 된 것들
사당패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떠돌아다니면서 재주 넘고, 노래하고, 공연 하는 예인들의 집단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몸도 함께 판다는 것도 알았다. 사당은 여자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공연하고, 공연 끝나면 예약된 손님들에게 몸을 판다. 그리고 그런 사당에게 1:1로 거사라는 기둥서방이 있어서 그 거래를 관리한다. 그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문화 예술인들인데, 정말 예술에 대한 인식이 정말 비참할 정도였던 것 같다. 기생들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패거리들이 여염의 마을에서 수모를 당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도 있었고, 동시에 이들이 계집이나 여종들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부잣집을 털기도 하면서 범죄집단으로 변화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가까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측면들도 있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거친 사람들이다.
4. 생각한 것들
묘옥의 이야기에서 배경이 되는 공간이 송파나루, 삼전나루, 거여 주막, 숯내 등이 나오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서 더 관심을 갖고 읽었다. 내가 늘 지나다니면서 보는 곳이 실제는 아니더라도 조선시대에 나름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거여동 어딘가를 가면 묘옥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대하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비련의 여주인공이라서 마음도 약하고, 그런 이유로 주변 남자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묘옥은 그런 약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지키려는 당당함이 있어서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단적으로 남자들의 치근덕거림에 강한 눈빛 레이저로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는 내공을 가졌다.
우대용의 이야기에서 경강상인과 그 주변의 중도아들의 거래 모습을 보면 정말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흔히 하는 말로 시정 잡배라고 하는 말이 딱 그대로이고, 당시에 왜 상업을 천시했는지를 그대로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속고, 속이는 모습은 상업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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