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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4] 현의 노래: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다루는 방법행간의 접속/문학 2013. 7. 8. 21:50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게 된 배경을 소설화한 것이다.
1. 줄거리
가야의 우륵은 왕의 연회나 장례 등 국가 의식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이었는데, 기울어가는 가야의 여러 고을들의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악기를 만들라는 왕명을 받들어 12줄의 새로운 악기인 가야금을 만든다. 그리고 가야는 신라에 의해서 멸망하고, 우륵은 신라로 귀순하고 신라의 진흥왕 앞에서 노래와 춤을 한 후에 신라의 소리를 만들라는 명을 받는다. 나이가 들어 직접 신라의 소리를 만들지는 못하고 신라의 젊은이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신라의 소리를 만들게 한다.
2. 인물들
우륵은 가야의 악사이지만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소리를 생각하는 장인이다. 가야의 소리를 만들라는 가야 왕의 명령과 신라의 소리를 만들라는 신라 왕의 명령에 대해서 거역하지는 않지만 소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흔들릴 때에만 존재할 뿐이지 누구의 소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소리 자체에 심혈을 기울인다.
야로는 가야의 대장장이로서 쇠를 다루어 병장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가야를 위해서도 병장기를 만들고, 신라를 위해서도 병장기를 만든다. 그는 쇠는 어느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양측을 다 지원한 것이었고, 양측에 병장기를 새롭게 개발하여 전쟁을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 가야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신라에 투항하지만 양측을 다 지원을 한 것을 안 신라 장군 이사부는 받아주는 척 하다가 그를 믿을 수 없다며 처형한다.
우륵과 야로는 비슷한 행보를 한다. 둘 다 처음에는 가야를 위해서 공헌하지만 신라를 위해서도 공헌하고, 신라에 귀순하는 것도 똑같다. 또한 그 둘이 다루는 소리와 쇠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흐르는 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 둘의 최후는 다르다. 우륵은 살고, 야로는 죽는다. 소리는 살고, 쇠는 죽는다. 음악은 살고, 무기는 죽는다. 이는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이 전쟁을 추구하는 무기보다 더 우월함을 드러낸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3. 소리와 춤에 대하여
우륵이 소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읽어보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묘사해서 그런지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이런 것이다.
-소리는 몸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올 수가 없다.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빌려서 쓰고 곧 돌려주는 것이다. 소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자리는 바로 적막이다. 그 짧은 동안 흔들리고 구르고 굽이치는 것이다. 소리는 거스를 수 없다.
알 듯 말 듯한 말로 소리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멋있기는 한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소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리에 대한 생각은 추상적인 말로 표현이라도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소리를 소설에서는 문자로 나타내야 한다. 추상을 뛰어넘는 시적인 상상력잉 요구된다. 소설가는 이 때 시인이 된다. 길더라도 인용해본다.
우륵이 오른손으로 맨 윗줄을 튕겼다. 소리는 아득히 깊었고, 더 깊고 더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우륵의 왼손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어올렸다. 소리는 흔들리면서 돌아섰고, 돌아서면서 휘어졌다. 우륵의 오른손이 다음 줄을 튕겼다. 소리는 넓고 둥글었다. 우륵의 왼손이 둥근 파문으로 벌어져가는 소리를 눌렀다. 소리는 잔무늬로 번지면서 내려앉았고, 내려앉는 소리의 끝이 감겼다. 다시 우륵이 세 번째 줄을 튕겼다. 소리는 방울지면서 솟았다. 솟는 소리를 우륵의 왼손이 다시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더운 눌렀다. 소리의 방울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잔 방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다시 우륵의 오른손이 맨 윗줄을 튕겼다. 깊고 아득한 소리가 솟았다. 솟아서 내려앉는 소리를 우륵의 왼손이 지웠다. 지우면서 다시 우륵의 오른손이 세번째 줄을 당겼다. 당기면서, 다시 우륵의 왼손이 소리를 들어올렸다. 올려진 소리는 넘실대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소리를, 다시, 우륵의 왼손이 눌렀다. 우륵의 몸이 소리 속으로 퍼져나갔고 소리가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몸은 소리에 실려, 없었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나갔고, 흘러나간 몸이 다시 돌아와 줄을 당겼다. 열두 줄은 우륵의 손바닥에 가득 찼다. 손바닥 안에서 열두 줄은 넉넉했다. 우륵의 손가락은 열두 줄을 바쁘게 넘나들었다. 손가락들은 바빴으나, 가벼워서 한가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문자로 나타내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구나. 정말 소설가는 단순히 이야기만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4.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분 부분을 보면 우륵과 야로의 대비, 우륵이 추구하는 소리의 세계 등이 주제와 연관이 되는 듯 싶은데, 딱히 손에 잡히는 명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국가를 뛰어넘는 예술혼 정도로 얘기하면 너무 단순한 느낌이 들고, 소리를 얘기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요것은 숙제로 남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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