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본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초등학교 때 보물섬 보고, 중학교 이후로는 거의 안 봤으니까...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강풀 만화 좀 보다가 다시 안 보고... 만화는 재미있었고, 쉽게 읽혀지지만 소장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만화가 아닌 책들도 소장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때 상당히 까다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화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거기다가 2007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르면 만화가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리게 되어 국어 시간에 학생들이 만화를 배우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만화를 단순한 재미거리로 생각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최규석의 『100도씨』를 읽게 되었나? 최규석의 만화는 지면이 아닌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
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애니메이션 중에서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었다. 거기서 최규석을 만났다. 그 때는 상상력이 기발하면서도 약간 과장되었다는 느끼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과장되지 않고, 80년대 현실을 정말 사실 그대로 옮겨놓았다.
주인공은 시골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데모하지 말라고 하고, 그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운동권이 되어,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바치고, 부모도 결국 감화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함께 싸운다. 이야기는 87년 6월 항쟁과 이한열 장례식 장면까지만 나온다.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영호가 감옥에서 회의하고 있을 때 옆 방의 어느 인사와 말한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 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만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물로 나도 두려움을 느끼고 흔들릴 때가 있지.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지금 99도이다라는 생각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만화가 우리의 가슴을 다시금 끓어오르게 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인권위를 축소하려 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민주주의의 성과들을 하나둘 해체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다시 80년대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고, 다시금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이 만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