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에서 나온 인문학 인생 역전 프로젝트 제6탄으로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이라고 한다면 감성적인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냉철하게 사랑하라는 이야기이다.
제1부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수들의 작업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 순정파들의 로맨틱한 망상을 사랑이라 하는 것, 사랑은 영원하다는 생각, 사랑에 대해서 순정 아니면 냉소의 태도만 갖는 것, 실연 후 쿨하게 물러나거나 집착하거는 것, 추억을 만들기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것, 유치할수록 진실하다는 생각, 연애는 혁명의 걸림돌이라는 생각 등...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사랑에 대한 생각들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랑의 영원성이란 보통 초기의 격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멜로물의 구조는 대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기까지의 스릴과 서스펜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다음엔? 드라마가 끝난다. 말하자면, 서로를 열렬하게 갈망하는 순간만을 포착한 것이다. 그것만이 사랑이라는, 사랑의 진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허나, 이거야말로 편견이자 오만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시작될 땐 이런 상황을 절대 예측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는 남들은 다 그럴지라도 우리만은 이 격정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격정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이 심한 케이스일수록 열정이 가라앉는 시간적 리듬 앞에서 당황한다. 그런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와 기술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뿐 아니라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편견도 지적한다.
남녀간의 사랑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요즘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심각한 수준이다. 아들을 스토킹하는 엄마, 하루종일 딸의 동선만 챙기는 엄마 등등. 어떤 점에선 이성애보다 더 심각한 블랙홀이 됙도 한다. 이성애는 헤어질 수나 있지 부모자식 간은 평생 이별도 불가능한 관계 아닌가.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사랑이 아니라 지배욕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의 이런 과잉서비스도 일종의 변태다.
제2부에서는 국가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에 휩싸여 프로그램된 연애의 공식에 따라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상품을 소비할 뿐이고 그 안에 진정한 사랑은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한다.
연애를 한다는 건 카페, 레스토랑, 비디오방 아니면 모텔, 아니면 이 모든 것을 갖춘 맞춤형 모텔을 전전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없다! 다시 그 코스를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좀더 화려하고 넓은 유원지를 돌아다니거나. 말하자면, 자본이 파 놓은 '홈 파인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 말고 달리 대안이 없다.
누군가가 연애를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만나면 뭐해?" 그럼 딱히 대답할 것이 없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어디 가고.... 그러는 과정이 결국은 자본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소비하는 과정이다. 돈 없이 연애 불가능하다.
제3부에서는 이러한 환경에 저항하는 진정한 연애의 방식을 제안한다. 몸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표현하라는 것, 유연한 연애를 하라는 것, 화폐권력에 맞서는 연애를 하라는 것, 공부하면서 연애하라는 얘기를 한다.
니체는 말했다.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나를 멸망시킨다는 건 바로 지금까지의 나, 자아 혹은 자의식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 순간, '신체의 역동적인 복합성이 만개하게 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사랑에 빠지면 우리의 신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과 평화를 경험한다. 혹은 들개처럼 날뛰기도 하고, 혹은 뱀처럼 똬리를 튼 채 독을 내뿜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 자신과의 전면전이 벌어진다. 이런 식의 폭풍을 체험할 수 있다면, 가히 운명적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터. 사랑을 통한 존재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존재를 다 걸고 사랑을 하여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것. 한마디로 나를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것과도 통하는 것 같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하려 하면 되지 않는 것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통해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둘이 눈이 맞아 사랑을 확인하게 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 탐색하는 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에 어떤 상품도 책보다 더 싼 건 없고, 어떤 보배도 책보다 더 귀한 건 없다. 따라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화폐권력에 저항하는 최고의 전술이다. 아울러 서로의 진면목을 탐색하는 데도 책보다 더 좋은 매개항은 없다. 사랑은 서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 그래야 나란히 걸어갈 수 있으니까. 함께 가노라면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호흡과 리듬, 습관과 동선, 마음의 행로 등등. 그런데 어디론가 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의 크기가 열정의 강도를 결정한다. 그럼 질문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오직 책!만이 그런 강도 높은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책을 읽는 연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도서관에서 함께 책 읽는 것. 벤취에서 같은 책을 읽는 것, 따로 책 읽고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 뭐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 잘 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4부에서는 창조적인 사랑을 얘기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원히 너만을 사랑할게." "이 순간을 영원히!" 우리는 늘 이런 식의 구호에 포위되어 있다. 물론 말짱 거짓말이다. 사랑은 당연히 변한다. 사랑을 하는 마음과 몸이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태어난 것은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는다.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나고 자라고 쇠하고 소멸된다. 한마디로 생로병사를 한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사랑의 형태, 혹은 방식이 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랑을 하는 그릇(몸)이 변하기 때문에 거기에 담긴 사랑도 그 그릇(몸)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불같은 마음이 점점 식어서 조금씩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변화에 맞는 사랑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슬기롭게 찾아서 맞추는 것이 사랑을 하는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 같다.
정말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 책은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이건 이 사람만의 사랑 방식이 아닐까? 나에게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맞는 것일까? 증명하려면 일단 실행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흘려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