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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7] 건투를 빈다: 행복하자고 이 지랄들 아닌가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09. 2. 14. 12:29
    건투를 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08년)
    상세보기

    딴지일보 종신 총수인 김어준이 인생 상담하는 책을 냈다. 상담하니까 고상한 것 같은데, 그냥 상담이 아니라 정면돌파란다. 그냥 저냥 좋게 좋게 그 순간을 모면하게 해주는 그런 상담 아니라 정말로 아프지만 결국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상담이다. 상담 주제들도 장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말 누구나가 갈등하는 바로 일상의 고민들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그의 상담 중에 기가 막힌 상담들을 뽑아보았다.

    1. 결혼하고 다른 남자와 감정이 생겨서 고민하는 주부에게 말한다.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다.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이다. 당신은 그 관계로써 이젠 정숙한 아내, 윤리적 엄마가 아니다, 란 사실 감당하기 싫다. 그로 인한 죄의식, 불안 비용도 싫다. 반대 선택도 마찬가지다. 서레는 가슴, 정서적 충만, 격정적 사랑 잃고 건조한 결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 둘 다 갖고 싶다. 선택하기 싫은 거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내 결론은 그렇다. 자기 선택과 그 결과로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비용 감당하겠다면 그렇다면, 그 지점부터, 세상 누구 말 들을 필요 없다. 다 조까라 그래. 타인 규범이 당신 삶에 우선할 수 없다. 당신, 생겨먹은 대로 사시라. 그래도 된다.
    2. 어려운 형편에 대학 졸업하고 결혼 앞둔 형이 결혼을 미루고 명문대 다니는 동생의 유학비용을 대줘야 하는지에 대한 상담을 한다.
    존재를 질식케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3.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공주같은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을 상담하면서 윤리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얘기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뭘까?
    가족 간 문제의 대부분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존재에 대한 예의란 게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불친절해도 각자에겐 고유한 삶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있으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 경로를 최종 선택하는 것이란 걸 온전히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 어떤 자격도 그 선을 넘을 권리는 없다. 가족 사이엔 아예 그런 선이 없다는 착각은 그래서 그 자체로 폭력이다.

    4. 안정된 직장에 다니지만 적성에 맞지 않고, 우연히 해본 가이드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지만 회사 그만 두고 나가면 가이드로서 자리 잡는데 시간도 걸릴테고 그래서 고민이라는 젊은이가 있다.
    당연히 해야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당신은 알잖아. 해보고 싶은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왜 사나. 행복하려고 사는 거잖아. 불행하면 관두는 거야. 대신 가이드가 당신한테 무한한 행복만 가져다 줄 거라곤 기대하지 마. 그런 건 없으니까. 세상에 좋기만 한 건 없잖아. 그건 당신도 알지? 가이드가 재미없으면 또 다른 거 하는 거지 뭐. 직업 하나만 가지고 평생 사는 거 그거 요즘 자랑 아냐. 겁내지 마. 질러.
    5. 자매에 끼인 남자가 있다. 동생에게 고백하려고 하는데, 언니가 이 남자에게 고백해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동생에게 고백한다. 이기적이지 않고서 한 사람을 독점적으로 사랑할 순 없는 법이다. 그게 배타적인 사랑의 본질적 속성이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럼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거다. 언니에게도 착하고 동생에게도 착한 사람이 되고자 자신에게 닥친 사랑을 포기한다면 애초 그런 사랑은 할 자격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고백한다고 된단 보장은 없다. 동생에겐 동생 나름의 고민이 있으니까. 하지만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좋은 게 공짜일 리 없지 않은가. 도전해야지.
    6. 남자는 애정 표현으로 여러 가지 얘기해주는데, 여자는 구속이라 여긴다.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연인, 남이다. 연인이 남이라는 걸, 이 기본적인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참 많다. 그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울부짖는다. 이런 자들과 놀면 안 된다.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이런 자들은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줄 모른다. 사랑이란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어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건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하는 거다.
    7. 남친이 유학간 사이에 새로운 남자가 접근해서 결혼하자고 하는데 결정을 못하는 여자가 있다.
    당신이 왜 선택을 못 하는지 아나. 진짜 사랑을 몰라서가 아냐. 잘못 선택하면 손해날까 두려운데, 대체 잘, 선택하는 게 뭔지 자기도 몰라 황망해 그러는 거야. 선택은 상대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달린 거라고. 당신은 당신이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알고 있나. 결혼에서 가장 먼저 할 질문은 '누구랑'이 아냐. '나는 언제 행복한가'라고. 사랑이냐 조건이냐, 따지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떤 놈년인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것만 따지고 자빠진 거, 그게 멍청한 거라고.
    상담 외에도 그 상담에서는 다 하지 못한 얘기들을 살짝 풀어놓은 글들도 있다. 그 중에 공감가는 것들을 뽑아보았다.

    1. 명품족에 대해서 얘기한다. 명품족을 우리는 과소비하고 사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명품을 통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품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물적 구현물이 어디 있는가? 우리 사회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명품을 사는 것을 비판하려면 상품(명품) 외에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제공하고나서 비판해야 한다. 단, 자신의 스타일이 뭔지도 모르고, 뭐가 어울리는지도 모르고 남들 하니까 따라 하는 놈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2. 이기심에 대해서 얘기한다.
    자신이 이기적이란 사실 자체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기심은 존재의 기본 권리다. 문제는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어디서 그 한계를 긋느냐 하는 거다. 그 한계선을 이어 붙이면 그게 곧 자신이다.

    이 사람의 상담의 특징을 몇 가지 발견했다. 첫째, 문제 설정을 분명하게 한다. 고민의 핵심을 정확하게 뽑는다. 엉뚱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고민 이상의 것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네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얘기한다. 둘째, 선택을 스스로 하게 한다. 이걸 선택하면 이렇게 되고, 저걸 선택하면 저렇게 된다. 선택 후에 벌어질 일들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 그게 어른이다. 셋째, 선택을 하려면 자신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해서 자기를 중심으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환경을 중심으로 선택하면 문제는 꼬인다. 넷째, 이 모든 것들의 최정점에는 행복이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다 행복하자고 이 지랄들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읽고나서 참 시원했다. 직설적인 말투로 거침없이 얘기했으니까. 욕도 많이 하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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