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 딸에게 보낸 편지글을 엮은 책이다. 원래 산문이나 수필은 잘 읽지 않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되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성격, 행동 방식 등을 따지지 않고 그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이 있는 제목이라서 끌렸다. 내용은 딸에게 사랑, 우정, 직업, 삶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책의 내용들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편지 형식의 서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상적인 부분을 뽑아보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냉소적인 것, 소위 쿨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글을 쓸 때에도 어쩌면 그게 더 쉽고, 뭐랄까 문학적으로 더 멋있게 꾸미기도 좋아.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더욱 황당한 것은 상처는 후회도 해 보고 반항도 해 보고 나면 그 후에 무언가를 극복도 해 볼 수 있지만 후회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하다 못해 서늘해져 버린다는 거지."
나도 쿨한 것 좋아한다. 후회하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약간 있어보이고... 그러나 그 후에 내 안에 남는 것은 별로 없더라. 그런데, 상처받기는 정말 두렵다. 특히 사랑 앞에서는....
"무엇인가에 표상을 투사하는 너의 배후는 무엇이니?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는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남에게 사랑을 주든, 미움을 주든,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
남에게 주는 나의 모든 것,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결과는 나의 것이 된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에는 잘 생각해야겠다. 특히 그것이 나쁜 것일 때에는...
"사랑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니란다. 사랑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아. 다만 사랑 속에 끼워져 있는 사랑 아닌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지. 누군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를 아프게 한다면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란다. 사랑이 상처를 허락한다는 엄마의 말은 속수무책으로 상처 입는다는 말이 아닌 것을 너도 알 거야. 상처를 허락하기 위해서는 상처보다 네 자신이 커야 하니까. 허락은 강한 자가 보다 약한 자에게 하는 거니까 말이야."
상처 받을까 사랑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사랑 속에 끼워져 있는 사랑 아닌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집착? 소유욕? 질투? 이해를 바라는 마음? 오만함? 그런 것들 빼고 순수한 사랑을 하면 상처받지 않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고 네가 진정, 그 사람의 삶이 아픈 것이 네가 아픈 것만큼 아프다고 느껴질 때, 꼭 나와 함께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랄 때, 그때는 사랑을 해야 해.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네 힘을 다해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해. 하지만 명심해야 할 일은 우리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하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열렬히 사랑하되 서둘지 말라는 얘기다. 사랑의 열병에 싸여 있는데, 어떻게 서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상 마음이 그쪽으로 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다릴 때 기다려야 한다.
"더 많이 사랑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살아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두 존재의 성숙과 발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얘기이다. 자신을 잃고서 하는 사랑은 후회만이 남을 뿐이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정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의 성장에 진심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정말 그러고 싶다.
공지영은 사랑 이야기 외에도 다른 얘기들을 했는데, 인상적인 내용은 사랑 얘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나보다. 온통 사랑 얘기 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딸의 편지가 있다. 딸도 글을 잘 쓴다. 정말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엄마와 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