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팀을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봤다.
1. 스포츠 영화의 한계
스포츠 영화를 잘 만들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스포츠가 감동적인 것은 매 순간, 순간마다 정말 최선을 다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이다. 거기다가 그 인물이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겪었다는 사연이 더해진다면 그 감동은 배가된다. 여기까지는 스포츠다.
이걸 영화로 만들게 되면 스포츠의 감동과는 별개로 영화적 감동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미숙(문소리)의 가정 환경이 필요했고, 감독과 갈등, 선후배간 갈등이 필요했다. 그 밖에 소소한 것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서 필요했다. 이런 부분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있게 보여줘야마지막 결정적 순간의 감동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역경과 고난을 겪는 내용은 설득력 있었지만,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영화화하면서 뭔가 부족한 측면을 느꼈다. 인물들의 감정 처리가 어쩐지 연기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마치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사처럼 너무 직접적이고, 발산적으로 느껴졌다. 글로 읽을 때는 명대사였지만 막상 스크린 상으로 뱉어지니 운동선수들은 정말로 저런 대사들을 일상 속에서 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2. 영화적 아름다움
스포츠 영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마지막 10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승부 던지기에서 한미숙이 실패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덴마크의 벤치, 중앙선의 우리 선수들, 그리고 한미숙의 얼굴 표정 등으로 보여줌으로써 패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때 문소리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앞 부분에서 그렇게 어색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 용서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에서는 당시 실제 대표 선수들과 대표팀 감독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대표팀 감독은 처음에는 최선을 다 한 것에 대한 만족과 기쁨을 얘기하지만, 돌아가서 겪게 될 현실과그런 현실 속에서 이만큼 해낸 또다른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서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말할 수 없는 감독의 심정은 이 영화를 만든 임순례 감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말로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영화 상에서는 다 하지 못하는 것들....
이어서아테네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스틸 사진이 나오면서 자막이 올라간다. 선수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했고, 온몸을 던지는 모습들이었다. 영화가 다 보여주지 못하는 스포츠적 감동을 여기서 보충해주었다. 철없는 사람들이 보면 핸드볼 선수들의 굴욕이라고 웃을 수 있는 사진들이었지만 아름다움과 감동은 거기에서 우리를 직시하고 있었다.
3. 스포츠 영화를 위하여
스포츠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스포츠의 감동을 영화에서 느낀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스포츠의 감동을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스포츠 영화가 나와서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자꾸 감동, 감동하니까 스포츠 영화는 무조건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감동이 없는 스포츠 영화라도 좋으니까 완성도 있는 스포츠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