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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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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지은이 |
진중권 (한겨레출판사,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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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에 한겨레21의 4번째 인터뷰 특강이 열렸다. 주제는 자존심이다.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뜻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자존심을 얼마나 잃어버리고 지냈는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지기 위해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우리가 내세우고 있는 자존심이 과연 내세울 만한 것이었는지... 등등 우리 사회의 자존심에 대해서 여러 지식인들의 강연을 묶어본 책이다.
진중권은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 존중감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자기가 확실한 사람들이지요. 자기에 대한 욕망, 자기를 긍정하는 사람들은 남한테 인정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나를 인정하거든요. 뭐가 더 필요합니까? 내가 나를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 그게 사람들한테 중요한 문제죠.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굳이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그 사람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권력을 행사하려 들고 거들먹거리고 남한테 굽실거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약한 사람들입니다. 내면이 없기 때문에 그럴수록 훨씬 더 밖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주변 사람들을 못 살게 하는 것이겠죠."
정말 사람들한테 인정 받으려고 설치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도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은 나서지 않지만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진중함에서 나오고, 그런 진중함은 자기 존중감에서 나온다는 얘기이다.
정재승은 과학의 자존심, 과학하는 인간의 자존심을 얘기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그렇게 양적으로 우수하고 질적으로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턱없는 근거로 자존심을 자꾸 세우려고 하면 과학자들이 지난 수백 년간의 연구를 통해 그러지 말라고 다독거려왔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은 그런 데서 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은 자기 자존심이 깎이는데도 진실을 위해 냉정하게 우리 모습을 밝혀낼 때 거기에서 자존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존심은 진실을 위해 우리를 밝혀낼 때 찾을 수 있단다. 진정으로 과학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얘기다.
정태인은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었는데, 한미 FTA를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한미 FTA와 우리의 자존심에 대해서 얘기한다. 이 사람 얘기 들으면 한미 FTA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미 FTA의 본질에 대해서 얘기한다. 한미 FTA는 관세 문제가 아니라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이고, 그 결과 우리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민간 건강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에서 민간보험을 추진한다. 여기서는 건강보험을 사용할 수 없다. 비싼 민간보험을 산 사람만 그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미국의 병원을 유치한다고 한다. 주된 대상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거란다. 그런데, 송도에 외국인이 얼마나 많겠나? 장사가 안 될테니결국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환자 안 받게 해준다. 이 사람들은 돈이 안 되니까. 결국 부자들만 그 병원에 갈 수 있다. 그 병원에 가는 부자들은 그 병원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 것은 좋은데, 한편으로는 다른 불만이 생긴다. 건강보험료는 비싸게 내는데, 여기서는 이용할 수 없으니까. 결국 건강보험료를 안 내겠다고 한다. 부자들이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는데, 이들이 안 내게 되면 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건강보험 안내고 민간보험으로 간다.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국가제소권에 대한 얘기도 한다. 미국에서 우리 나라에 투자를 했는데,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손해를 보았다면 우리 정부를 재판에 넘긴다는 얘기다. 그럼 재판소는 어디있는데? 없다. 그럼 누가 결정한다는 것인가? 투자자가 통상변호사 고용하고, 우리 정부가 통상변호사 고용하고, 두 통상변호사가 합의해서 다른 통상변호사를 선임해서 셋이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큰 사안을 담당할 수 있는 통상변호사가 세계에 얼마 없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다. 제소되면 100% 독박쓴다.
사람들은 세계의 흐름이 그렇게 간다고 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흐름에 편승하려고 하고 여기서 뒤쳐지면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유행이다. 나라들끼리 교류하는 방식이 반드시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방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식 자유무역협정은 모든 걸 제도로 얽어매놨는데, 그게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그것을 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다른 나라와 교류할 수 있다. 더 못사는 나라들을 생각하는 공동협력,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한 얘기는 작년에 많이 했는데, 요즘은 쏙 들어갔다. 오바마가 당선되어 한미 FTA 재협상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에게 더 불리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진정한 협력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문제연구소장인 하종강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전 위원장인 아노아르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이주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다문화 사회로 가는 과정의 운동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필요로 하므로 어떻게든 그들이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강연은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으로 우리를 각성시킨다.
"여성주의자, 동성애자,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평등이라기보다는, 어떤 면에서 차이를 누가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구성된 차이냐는 것이죠. 예를 들면, 남녀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인가요? 여성과 사회적 지위가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남성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평등의 기준을 문제 삼고 싶습니다. 평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을 위해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를 개선해야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아지기 위해 장애를 초월하고 극복해야 하나요? 평등은 공정한 것, 사회적 정의를 원하는 것이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등에 대해서 분명하게 깨달았다.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공정해지는 것이라고. 이어서 자존심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역시 새로운 개념을 갖고 왔다.
"누구와의 관계에서 자존심을 논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존심을 주장하는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통일된 존재가 아니에요. '고정된 나'는 없죠. 우리 존재 자체가 확실하지가 않죠. 늘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규정하기가 어려워요. 이처럼 내 안에서도 이미 너무나 많은 정체성이 경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체성에 맞는 자존심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자존심의 상대방이 누구냐를 묻지 않는 상태에서는 의미가 없게 된다."
나 자신이 변하는데, 자존심을 규정할 수는 없다. 결국 무엇에 대한 자존심이냐를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노자와 고미숙은 박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존심 이야기를 꺼낸다. 청중이 질문했다. 자본권력에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고미숙이 대답한다.
"제일 먼저 내 욕망이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나서, 거기에서 하나씩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건 혼자서 힘들기 때문에 친구와 연대를 해야 하는 것이 제 전략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어떤 관계와 활동 속으로 저를 밀어 넣어버립니다. 그러면 저의 내면과 활동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 노출이 되거든요. 그러면 그걸 바탕으로 한 발짝씩 좀 더 유능하고 힘있는 사람에게 묻어서 갈 수 있는 거에요. 혼자 힘으로 실존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잘못하면 좀 위험해요.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약점은 약점대로 강점은 강점대로 혼자서 승부하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은 그 친구가 열심히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으면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열등하고 우월한게 없어요. 이런 기막힌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자본과 타협해버립니다. 사실 그렇게 해서 남을 지배하고, 남을 지배하는 쾌감으로 살고 있는거죠. 10년동안 친구들과 연대하면, 10년 후엔 다른 종류의 삶이 펼쳐져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벗어납니다. 10년, 20년 후에는 자본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되고, 결국 무릎을 펼 수 없는, 아니 무릎을 꿇었다는 것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겠죠."
혼자 실존적 결단을 하려 하지 말고, 친구와 연대해서 자본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존심을 세운다는 얘기다. 말은 쉬운데, 나같은 성격에 가능할까 싶다. 이전에 읽었던 고미숙의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자신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성격이라고 했는데, 그런 성격이라면 이런 연대를 추구할 수 있겠는데, 생각이 많은 나같은 사람은 쉽지 않다. 아무튼 굉장히 명쾌한 말이었다.
자존심에 대해서 뭐 그리 할 말이 많을까 싶었는데, 거짓말 만큼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2008년은 배신에 대해서 했다는데, 그것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