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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01]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똑똑히 알고 속지 말자
    행간의 접속/인문 2008. 11. 27. 20:44
    거짓말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정혜신 (한겨레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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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에 개최한 한겨레21의 인터뷰 특강 세번째이다. 주제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속아왔는지 되짚어 보고, 속지 말고 똑똑하게 살아보자는 얘기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남성 심리 전문이다. 책에서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는데, 강의 내용이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속시원하고 명쾌하게 얘기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말한다. 왜 사람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마지막 결론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건 오류가 전혀 없다든지 이건 100% 확신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이 말만은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니까 쫄지 말자. 열어놓고 보자. 완벽하게 100% 확신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저는 이 명제라고 생각해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을 좀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드리고 싶네요."

    완벽한 불완전이라는 말 속에 여유가 있어서 좋다. 그게 인간다운 것 같다. 완벽한 완전! 얼마나 숨 막히고 기계 같은가.... 그리고 인간은 이렇다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것 그것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과학저술가인 김동광은 과학사회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과학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것 같다. 과학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하고는 다르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학이론이나 과학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하는 분야의 핵심적인 이론이 사회구성론이다. 쉽게 말하면 과학이론이나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엄밀하게 과학지식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도 실제로는 여러 가지 경합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사회적 구성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한 것이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다.

    이 강의가 실시될 즈음에 황우석 사태가 일어나서 그 얘기도 한다. 줄기세포 연구의 실용화 가능성도 얘기하는데,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하고, 경제적 기여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지나친 기대를 과학주의라 하는데, 우리가 심하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얘기도 한다. 생명이라고 하면 오로지 개체 중심으로만 인식하는데, 이것은 근대주의, 즉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그런데, 최근의 생태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생명은 개체로 존재하기보다 생태계라는 커다란 시스템 속에 그 일부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순간 호흡하는 것, 에너지 대사나 물질 대사를 통해 주변 환경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의존하는 생물들의 수가 수만 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만큼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거대한 생태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태계에서 우리를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기억해야 할 말이다.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속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것.

    한홍구 교수와 박노자 교수는 한국사의 거짓말에 대해서 대담을 했다. 역사에서의 객관과 중립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워드 진의 책 이름이기도 한데,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이라는 건 없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중립에 서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이 몸뚱이를 타고 태어나는 이상 중립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거고, 누구나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있고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는 생각들이 있기 때문에 그걸 다 제쳐두고 완벽한 객관에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잉여가치를 빼앗기고 어렵게 사는 쪽에 맞춰서 뭔가를 쓴다면 그게 좀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중립은 불가능하고, 완벽한 객관에 접근할 수도 없다면 약자의 편에서 역사를 봐라봐야 옳지 않느냐는 말이다.

    김두식 교수는 변호사이자 법대교수이다. 종교에서의 거짓말과 교수 사회, 법조계의 거짓말에 대해서 한바탕 풀어놓았다. 한국사회는 서류를 많이 요구하는 사회라고 한다. 뭐 하나 하려고 하면 내야 하는 서류가 산더미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증명서를 가져온 것만 믿어주겠다는 게 바탕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사람은 믿지 못하지만 종이는 믿을 수 있다.

    술자리 거짓말도 얘기한다. 술자리에서 많이 하는 거짓말 중에 "저 이런 분위기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하면서 온갖 쇼를 다하는데, 얼굴은 정말 고역에 가득차있다. 왜 그럴까? 김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확실 속에 있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그런 것들을 떨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 불안한 사회 시스템이 거짓말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 권하는 사회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다. 역사의 어두운 부분, 불행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자기 성찰과 고백이다. 이거 안 하면 자기를 속이는 자기 기만이 되고, 결국에는 자기가 누군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김형덕은 새터민이다.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4번이나 붙잡혔지만 기적적으로 4번이나 탈옥에 성공해서 한국에 왔다. 남한과 북한의 생활을 모두 겪으면서 남한과 북한이 사람들에게 한 거짓말에 대해서, 통일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의 얘기보다는 그에게 질문을 한 청중의 얘기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사람들의 자유왕래, 군사적 대치의 불안함, 과도한 국방비 등을 얘기하는 이러한 것들은 남북한이 갈라져 있어서라기보다는 서로 적대하는 관계이기 때문인데, 만약 남북한이 서로 다른 나라이면서도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가장 친한 두 나라로 지낼 수 있고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통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통일하려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통일보다는 두 나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이전에는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생각이다.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인데,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이 통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한다. 통일은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라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남쪽의 기준으로 보면 북한은 인권 후진국이다. 원인은 경제적 빈곤함 때문에 그런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교류를 늘려가면서 북한 사람들이 서서히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협력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당장 너희 인권 문제가 잘못되었으니 바꾸라고 하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인권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느냐고 권요할 수 있는 사항은 되지만,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은 교류를 해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통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사람의 얘기를 들으니 조금은 생각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통일의 이유와 방식, 교류의 중요성 등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정희진은 여성학자이다. 여성의 눈으로 남성들의 거짓말, 가부장제의 거짓말에 대해서 얘기한다. 맨 먼저 모든 의미는 경계와 차이를 만나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 문화 속에서 성폭력은 기억나지 않는다. 경계와 차이를 만나지 않으므로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으므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설득할 때는, 기억할 수 없게 하는 사회 구조와 권력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야지, 참과 거짓의 대립구도를 들이대면서 여자들의 경험은 참이고 남자들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참과 거짓은 권력관계에 의해서 정해지는 유동적이고 경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런 문화, 그런 사회 구조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학생부에서 애들 지도하다 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들이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인데도 아니라고 오리발 내미는데, 가만히 보니 그 학생들은 그런 행동이나 문화 속에 속해 있기 때문에 경계와 차이를 알지 못하고, 결국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늘 그렇게 나쁜 짓을 해왔고,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인 줄을 모른다. 잘못인 줄 모르므로 죄책감이나 반성은 없다. 이 아이들에게 차이와 경계를 어떻게 인식시켜야 할까?

    여성문제와 교육문제가 연동되어 있다는 얘기도 한다. 고학력 중산층 여성들은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결혼 시장으로 흡수되어 아이들 교육과 남편 출세에서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 구조에 갇힌다. 따라서 국가에서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을 내놓아도 중산층 여성이나 가난한 여성들이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한, 교육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 여성들은 모성이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 문제와 여성 문제가 이런 식으로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정말 이 연동 관계는 공고할 수밖에 없는데, 정말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언론인 프라풀 비드와이는 인도에 대한 거짓말을 얘기한다. 인도를 현자들이 사는 나라이고, 명상에 잠겨 있고, 인생과 철학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얘기하고, 또 떠오르는 신흥 경제대국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도 실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 강연자들을 봤을 때에는 별 다른 내용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특히 김동광의 생명을 생태계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얘기와 정희진의 의미는 차이와 경계에 있다는 것과 여성문제와 교육문제의 연동에 대한 얘기는 기억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인터뷰 특강 이후에 2007년에는 '자존심', 2008년에는 '배신'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고, 책도 나왔다고 한다.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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