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립 고등학교인 트리니티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 제리 르노는 운동을 좋아하고 급우들과도 잘 지내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러나 그에게 두 가지 폭력이 가해진다. 하나는 학교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초콜릿 판매이다. 학생들이 초콜릿 영업사원이 되어서 초콜릿을 판매하면 그 수익금으로 학교 재정에 도움을 준다. 학생들은 50통씩 할당받아서 판매하게 되는데, 학생들은 판매를 싫어하지만 학교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적당히 팔고 있다.
또 하나의 폭력은 야경대라는 불량서클의 폭력이다. 야경대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아치는 학생들을 하나 지목하여 과제를 주고, 지목받은 학생은 반드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과제는 교실의 모든 나사를 빼서 교실이 난장판이 되게 하거나, 수업 시간에 특정 단어가 나오면 갑자기 일어나서 수업을 방해하는 것 등,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야경대의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더 큰 조직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제를 하게 되어 야경대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제리는 이 두 가지 폭력에 대해서 우발적으로 그러나 당당히 저항한다. 처음에는 야경대가 제리를 곤경에 처하게 하기 위해 초콜릿 판매를 거부하는 과제를 내주어서 교감에게 반항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제가 오히려 초콜릿 판매 실적으로 떨어뜨리게 되자 야경대는 반대로 초콜릿 판매를 명령하지만, 제리는 끝까지 거부한다. 결국 야경대는 그를 전체 학생이 모인 가운데 권투 경기를 시켜서 처벌한다.
소설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는 두려움이다. 제리와 일반 학생들은 두 가지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두려움을 안고 생활하고, 그 폭력을 조심조심 피해가는 것이 하나의 행운처럼 여겨지고, 어떨 때에는 행복처럼 여겨진다. 누군가 이 폭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결국 제리가 나서지만 그를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못한다. 두려움은 계속 된다.
미국의 학교를 다룬 소설이지만, 한국의 학교에 시사하는 점도 있다. 소설처럼 한국의 학교가 대놓고 부조리하지는 않지만, 부조리한 측면이 있을 수 있고, 학생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유무형적인 기제를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의 생활을 통제하는 각종 규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학교를 두려워하지만 학생들의 마음 속에는 반항의 씨를 가슴에 품고 있고, 학교의 작은 균열을 이용하려 한다. 또한 야경대와 같은 불량서클이 존재하여 학생들 사이의 지배자로 군림하여 그들의 세계를 구축한다. 조직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소설 속의 상황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은유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국가는 경쟁력 강화, 선진국과 같은 경제적 지향과국가와 민족, 애국심과 같은 정치적 지향을 제시하여 개인을 경쟁의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학교가 초콜릿 판매를 강요하듯이. 그리고, 국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조직폭력배나 재벌, 언론 등이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여 개인들을 두려움 속에 몰아넣는다.
개인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고, 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개인의 단합된 힘으로 부조리한 세력에 맞서야 한다고 작가는 후기에서 말하고 있다. 제리와 같은 학생이 한 명이라서 억압적인 상황이 유지되지만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된다면 상황은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이 맞는 말이긴 한데, 작품 속에서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후기에서 말한 것은 좀 씁쓸하다. 작품 속에서 제리와 같은 애들이 두 명, 세 명 나오는 것으로 하면 현실성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일까?
아무튼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