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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튼 |
감독 |
김병우 (2007 / 한국) |
출연 |
이진석, 김보영, 이상혁, 박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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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의 『리튼』을 봤다. 정식 개봉한 영화는 아니고,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상영한 영화이다.
시퀀스 1: 등장인물
등장인물이 있다. 그는 강제로 수술을 받아 신장을 잃었고, 어딘지 모르는 화장실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나, 단서는 없다. 그러다 자신의 상황이 써있는 시나리오를 발견하고, 작가를 만난다.
시퀀스 2: 작가
작가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죽게 되어 있지만 수정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혹은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자신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는다.그리고, 결말을 맺지 않은 채 자신은 죽는다. 그러는 사이 등장인물은 서서히 영화 속 배우에게 잠식당한다. 이 부분은 작가가 창작하는 과정 중에서 등장인물과 소통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퀀스 3: 배우와 감독
배우는 등장인물을 연기한다.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배우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은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배우에게 저항한다. 감독은 등장인물을 단순한 대상으로만 보고, 그의 주체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배우는 자신이 없으면 등장인물은 형상화될 수 없다고 하고, 등장인물은 자신이 없으면 배우도 없다고 하고, 둘의 충돌은 배우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읽기 위해몰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현실에서는 배우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살아남은 등장인물은 자신의 신장이 있는 수술자국에서 찢겨진 결말 부분을 찾고, 자신이 마무리를 하며 주체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작가나 배우로부터 독립적인 주체성과 자율성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내가 창작의 경험은 없지만 작가나 배우라고 해서 인물을 무조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만큼이 등장인물이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부분이고, 감독은 그 영역을 확대시키면서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 세상의 등장인물로 봤을 때, 얼마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지 묻는다. 등장인물만큼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콘티 없이 촬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촬영한 것은 아니고, 중요한 부분들에서는 스탭들이 긴밀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며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달 동안 감독 혼자서 편집을 했다는데, 힘들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촬영을 할 때 정해놓고 촬영한 것이 아니라 편집할 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편집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독은 정말 머리가 좋은데, 감각까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도 감각이 있었다. 그래픽을 많이 쓴 엔딩 크레딧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고, 추상적인 세계 속에 빠져있던 관객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오랜만에 젊은 감독의 감각있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
(20080107) 이 영화 결국 개봉했다. 흥행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