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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3] 남한산성: 간결한 문체가 주는 무게감행간의 접속/문학 2013. 7. 5. 10:52
김훈의 소설을 왜 잡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도서관의 책장을 돌면서 웬지 끌렸다고나 할까.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와 대신들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줄거리는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지 않다. 청나라가 쳐들어왔고, 왕은 강화도로 가려다가 길이 막혀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어렵게 버텼고, 화친을 할지, 싸울지를 논쟁하다 결국 화친이라는 이름의 항복을 했다는 얘기이다. 그 과정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인물들
인조는 힘없는 나라의 왕으로써 유약해 보이는 느낌이 들지만 대신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위엄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힘들게 성을 지키는 군병들에 대해서, 자신과 나라를 위해 잡혀가겠다고 자처하는 신하들을 위해서는 술을 내리며 울음을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도 있다. 특히 겨울비에 젖은 군병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면서 신하들과 얘기 나누는 장면은 왕이 정말 섬세하게 신경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과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라이벌로서 대립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최명길이 왕과 독대할 때 김상헌에게 너무 허물을 두지 말라고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두사람이 왕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장면은 팽팽하고 긴장감있게 묘사되어 극적인 재미를 보여준다.
군병들은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가르침대로 충성을 다하는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나라보다는 자신의 살 길을 챙기는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고, 당시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후자의 경우에는 권력층이 자신들은 편안하게 있으면서 밑에 사람들에게는 온갖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하고, 이죽거리기도 한다.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고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들이다.
2. 생각들
간결한 문체로 서술자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으나 무게감이 있어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왕이 군병들을 생각하는 장면과 청의 칸 앞에서 절을 하는 치욕적인 장면은 눈물이 찔끔했다.
집이 남한산성과 가까워 매년 몇 번씩 가보았기 때문에 소설 속 장소들을 상상하기가 쉬웠다. 행궁과 서문과 남문, 서장대 등은 늘 가보던 곳이고, 동문과 북문, 동장대, 남장대 등은 잘 가보지 않아서 다음에 갈 때는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행궁이 지금 복원공사중인데, 빨리 복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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