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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평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지은이 |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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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평전을 읽었다. 읽게 된 동기도 역시 조정래의 『아리랑』이었다. 『아리랑』4부에 이현상이 등장하여 학도병으로 징집 받은 학생들을 지리산에 도주시켜 항일 유격전을 펼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 평전에는 어떻게 그렸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현상이 그 당시에 덕유산 쪽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한 것은 나오는데, 학생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훈련시켰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소설에는 경성콤그룹과 경성트로이카라는 사회주의 비밀조직이 노동쟁의와 독서회 활동을 통해 운동을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평전을 보니까 이현상이 이 조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소설에서 대충 넘어간 부분을 평전으로 채우니까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삶을 김원봉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좀 있었다. 김원봉은 중국에 망명해서 무장독립투쟁을 했고, 이현상은 해외독립운동의 파벌주의에 환멸을 느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김원봉은 사상적으로 중도 좌파로서 좌익과 우익의 통합을 위해 힘썼고, 이현상은 투철한 사회주의자로서 색깔을 분명히 했다. 해방후 김원봉은 정치지도자로서 활동했지만, 이현상은 유격대 총사령관으로서 총을 들고 산을 누볐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삶을 산 것 같다.
이 책에 있는 역사적인 사실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모스크바 삼상회담에서 결정된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5년간 신탁통치를 한다는 것이 전부였고, 우익은 반탁, 좌익은 찬탁을 한다는 것이었고, 반탁은 나라의 진정한 독립으로, 찬탁은 나라를 또다시 식민지로 만든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담에서 미,소 양국은 우선 조선인들에 의한 임시정부를 구성한 다음 이와 협의하여 최고 오 년을 기한으로 한 신탁통치안을 미,영,소,중의 사 개국에 제출하자는 데 합의했다. 곧바로 신탁통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을 통일한 임시정부를 구서하게 한 후, 신탁통치는 이 임시정부와 협의하여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선 삼팔선이 해소되어 단일한 임시정부가 구성됨으로써 일단 민족통일은 이룰 수 있었다. 격렬한 좌우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오 년 정도의 신탁통치가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신탁통치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 그리고 찬탁의 논리를 나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통일을 위해서는 오히려 찬탁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니 역사를 되돌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빨치산 활동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남부군도 생각이 났다. 15년 전 영화를 볼 때는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용 중에 빨치산의 사상교육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대원은 싸우기도 바쁜데 무슨 공부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합니다. 상황이 쉽다면 누구나 우리 운동에 가담하여 그만두고 나가라 해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흩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철저한 확신뿐입니다.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본질과 피 어린 혁명의 역사를 배워야만 합니다. 사상교육은 어려울수록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한 사상교육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작가가 좌우를 균형있게 했다기보다는 좌익의 주장에 기울어져서 집필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인 사회라서 좌익의 주장으로 기울어야 균형이 맞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기울었다는 느낌도 들었고, 이 책을 과연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내용을 담은 글을 보고 움츠러들 정도로 우리 사회가 나에게 사상적으로 주입한 좌익과 우익에 대한 편향된 생각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라면 이런 내용에 대해 보다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할텐데, 나도 우리 사회도 그정도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