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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글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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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자전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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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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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참언론시사인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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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의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독자와의 대화로 풀어나갔다. 자신의 얘기를 스스로 한다기보다는 독자들이 질문하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는 식이다. 즉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드리겠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이 되니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와 독자가 듣고 싶은 얘기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질문들을 대충 분류해보면, 작가의 삶에 대한 얘기, 태백산맥에 대한 얘기, 한강과 아리랑에 대한 얘기,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얘기들로 나눌 수 있다. 독자들이라면 다 궁금해 할 내용들이라서 질문을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자기 자랑 같아서 얘기하기 쑥스러운 것들도 있고, 누구나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라는 대답은 싱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 걸 어쩌랴.
작가의 대답들 중에서 생각해 볼만한 것을 뽑아보았다.
소설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에 대해서 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을 유지하려는 민주주의 사회나 국가에서도 계층 간, 계급 간 권력 간, 집단 간에 갈등과 모순과 대립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것이 비인간성이며 불의이며 편법입니다.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하여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입니다. 그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작품으로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 곧 진실입니다.
그러면서 종교와 철학과 과학을 문학에 비교한다.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진정한 작가로서, 혹은 작가 지망생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으로 자기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고, 기죽어서 자신은 그런 작품을 쓰지 못할 것 같다든지, 그 작가에 압도당해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자신도 그런 소설 쓸 수 있고, 잘 썼지만 좀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작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영감에 대해서도 애기한다.
흔히들 영ㅇ감이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것은 영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만을 보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은 분출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작가의 영감을 한 순간의 반짝이는 빛으로 보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빛을 내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영감에 대해서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했어도 정말 쉽게 여긴 것 같다.
조정래의 소설은 태백산맥만 읽었고, 한강과 아리랑은 읽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니까 이 두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