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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서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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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언어학 > 국어학 > 우리말의기원 |
지은이 |
김수업 (나라말, 20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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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글전용에 대한 실천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한문을 좋아했으면서도 그 때는 약간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실천을 했던 것은 아니고 소극적으로, 마음으로만 그랬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막연한 생각이었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속에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말에 대해 정말 무심했다는 것을 뉘우치게 된다. 또한 한자말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함과 참됨, 이런 말들이 정말 우리 말의 맛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때는 말은 도구이고, 도구로서 잘 활용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우리말은 도구이기 이전에 우리의 삶과 얼을 오롯이 담고 있는 집이라는 생각을 했고, 따라서 이런 우리말을 잘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본문의 글을 가만히 보면 꼭 필요한 한자어 외에는 거의 모든 말들이 토박이말이다. 이렇게 토박이말로만 쓴 선생님의 글을 보면 그 내용을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글쓴이의 진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보통 토박이말로만 쓴 글을 보면 익숙하지 않아서 부자연스러운 면들이 많이 있는데, 선생님의 글에서는 그런 것들을 볼 수가 없다.
그럼 책의 속살(내용) 중에서 마음에 쏙 들어오는 속살을 뽑아보겠다.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을 싸잡아 쓰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나와 대상을 싸잡아 쓰는 것이다. 나와 대상을 싸잡으면 둘이니까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드러내는 뜻은 '둘'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라는 것이다.
'내 아버지' 또는 '내 마누라'하면 그것은 곧장 아버지 또는 마누라를 내가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며 내 손 안에 쥐고 살아가는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옛날이나 이제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남편을 나에게 딸린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나와 떨어질 수 없이 사랑으로 깊이 묶인 두 사람으로 여기는 사는 겨레다.
'내 아내', '내 엄마'가 아닌 '우리 아내', '우리 엄마'인 이유를 '우리'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우리 겨레의 생각을 담아서 잘 풀어주었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있다. 몸은 사람의 껍데기이고, 마음은 사람의 속살이다. 다시 마음은 세 겹으로 되어있는데, '느낌', '생각', '뜻'이 그것이다.
'느낌'은 몸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곧 자연과 사회에 살갗, 눈, 귀, 코, 혀와 같은 몸의 한 곳이 부딪치면서 일어난다. 따라서 세상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지고, 몸도 달라진다. 추운 곳에 가면 '춥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몸의 살갗에 소름이 끼치면서 떨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느낌은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마당이며, 마음에서는 가장 들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첫 겹이다.
'생각'은 알고 모르고, 같고 다르고, 맞고 틀리고, 참되고 그르고, 옳고 외고, 이런 것을 가려내는 힘이다. 생각은 몸이 세상을 받아들여 느낌을 일으켰다가 천천히 가라앉힌 다음 마음 안쪽으로 끌어와 간추리고 갈무리하면서 빚어지는 마음의 둘째 겹이다.
'뜻'은 바깥세상을 받아들여 느낌과 생각을 지나며 간추리고 가라앉힌 마음의 세째 겹 속살이다. 그만큼 뜻은 마음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껍데기인 몸과는 더욱 멀어진 알맹이며, 몸의 알맹이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마음의 알맹이기도 하다.
마음의 들머리에 '느낌', 그 안에 '생각', 그 안에 '뜻'이 있다는 얘기이다. 마음이 이렇게 세 겹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런 마음이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까지 들어봐야겠다.
마음의 뼈대와 알맹이, 곧 마음의 노른자위는 한가운데 자리잡은 '뜻'이다. 뜻은 생각을 이끌고, 느낌을 다스리고, 몸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따라서 뜻이 사람의 값어치를 매김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먼저 '생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느낌'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잇다."는 말처럼 뜻은 생각, 느낌, 몸을 이끌고 가고, 뜻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느낌과 가늠하고 간추리는 생각의 바탕 위에 뜻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면서 마음의 세겹인 '느낌'과 '생각'과 '뜻'이 골고루 제 몫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뜻을 가진 낱말들에 대해서도 풀어놓고 있다. 먼저 '겨루다'와 '다투다'와 '싸우다'의 풀이이다.
'겨루다'는 치우치지 않는 가늠과 잣대를 미리 세워 놓고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노릇이다.
'다투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가늠과 잣대 없이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데, 목숨을 걸지도 않고 몸을 다치려고도 하지 않아서 거의 삿대질이나 말로써만 맞서는 것이다.
'싸우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가늠과 잣대 없이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데, 몸을 다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뿐더러 끝내는 목숨마저 떼어 놓을 마음으로 맞서는 것이다.
학교에서 애들이 서로 맞서는 것은 대부분 다투는 경우이고, 싸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정말로 싸우겠다는 뜻을 비치는 경우도 있다.
'기쁘다'와 '즐겁다'도 같은 뜻의 말이 아니라 약간 다른 뜻이 있는 말이다.
기쁨은 마음에서 오는 좋은 느낌이고, 즐거움은 몸에서 오는 좋은 느낌이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 즐겁다. 아버지가 병을 이기고 일어나면 기쁘다. 기쁘다의 반대말은 '슬프다'이고, 즐겁다의 반대말은 '괴롭다'이다. 슬픔은 마음에서 일어나고, 괴로움은 몸에서 일어난다.
'누구'와 '아무'도 그 쓰임이 헷갈릴 정도 비슷한 말이지만 역시 다른 뜻이 있다.
'누구'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한 사람을 뽑아 놓고 쓰는 말이고, '아무'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여러 사람을 뭉뚱그려 놓은 채로 쓰는 말이다.
"누구에게 물어볼까?"에서는 대답해줄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 물어볼까?"는 어색하다. 또한 "안에 아무도 없나요?"는 여러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어서 괜찮지만 "안에 누구도 없나요?"는 어색하다.
'무섭다'와 '두렵다'도 차이가 있다.
'무섭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힘의 말미가 무엇이며 어떠한지를 알고 있을 적에 빚어지는 느낌이다. '두렵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힘의 말미가 무엇이며 어떠한지를 모르고 있을 적에 빚어지는 느낌이다.
대상을 알면 무서운 것이고, 대상을 모르면 두려운 것이다. 사고를 쳐서 아버지를 화나게 할 것은 무서운 것이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반면에 밤에 잠자는 데 마루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나서려고 할 때는 두려운 것이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밖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말들에 대해서 정확하고 친절하게 풀이를 해주셨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말이 새롭게 보이고, 친근하게 느껴지고,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