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이 쓴 소설로 엮은 책이다. 중학생들이 소설을 쓰면 얼마나 쓸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만 하고, 친구들하고 장난만 칠 줄 아는 놈들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름대로 자신의 주변을 살펴볼 줄 알고, 그것을 표현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몇몇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아이들의 작품이 실린 것으로 보아 이상대 선생님이 지도를 정말 열심히, 잘 해주신 것 같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다 보니 아이들의 심리가 정말 잘 표현되어 있다.
아,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안도영이 하늘이랑 같은 반이 될 수 있냐고.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우환이 겹치는 거야. 아아, 정말 입이 가볍기로는 나비 날개만큼이나 가벼운 그놈의 입을 어떻게 막냐고!「안도영 서울 오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 우리가 아이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그 다음에 비유적 표현이 어른들 뺨치게 세련된 부분도 있다.
침대에 누웠다.
사막 한가운데에 누운 것 같다. 풀풀 날리는 먼지는 모래 같았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차간운 바람은 모래 바람 같았다. 나는 지금 낙타도 없고, 물도 없는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나는 외로움을 베개 삼아 절망을 덮고 깜빡 잠이 들었다.「어떤 하루」
아버지한테 혼나고 방안에 누웠을 때 드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단순히 '기분 더럽다'라거나 '절망적이다'라는 수준이 아니라 사막에 내동댕이쳐져서 외로움과 절망에 휩싸여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를 이해하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엄마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진다. 지치고 피곤한 표정.
사는 게 그렇게 힘든 걸까. 그렇게 일이 힘들면 차라리 쉬거나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을 하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쓰린 가슴이 더욱 쓰렸다.「로그인하시겠습니까?」
학생들이 쓰다 보니까 모든 작품이 학교를 배경으로 썼다. 학교 폭력, 여학생들의 친구 사이의 미묘한 감정, 부모님이나 형제(동기, 사촌)간의 문제 등이 많이 나왔다. 학교는 이런 곳이라는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환경에 반응하며, 서로에게 어떤 자극을 주고 받는지가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요새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소 충격적인 것은 학교 생활을 현실감있게 그리다 보니 학생들이 쓰는 거친 말들이 거의 100% 그대로 옮겨 놓아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욕을 위한 욕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 나름의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생생함이다. 그 생생함은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와 현실을 정말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설 창작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이 이런 시각과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소설 창작 교육, 언제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