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의 쿠바 여행기인 『원더랜드』를 읽었다. 작가가 쿠바를 여행하기로 한 이유는 카스트로가 연설 중에 쓰러졌기 때문이란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카스트로가 쓰러지면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가 급격한 변화를 맞아 쿠바다운 면모들이 사라지고, 미국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 전에 쿠바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 일리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길 만큼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작가에게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 작가 원래 럭비공 같은 사람 아니었던가....
작가의 이전 여행기인 『
나쁜 여행』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비교해 보니 다른 점이 꽤 있다.
1. 분위기가 다르다.
20살 때 떠난 유럽 여행에서는 참 밝은 폭탄 같았다. 겁이 없었고, 무엇이든 도전하려는 에너지가 넘쳐 있었다.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고, 당당했다. 그러나 25살 쿠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생각이 깊었고, 신중했으나, 또 그만큼 덜 도전적이었다. 낯선 환경에 겁을 먹어서 그런지 익숙해지는 데 한참이 걸렸고, 충분히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2. 동행자가 있었다.
KBS 월드넷에서 그의 여행을 취재하기 위해 김PD가 동행했다. 그래서 여행의 중반부는 작가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위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한 내적, 외적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본의 장면들을 연출하다 보면 자유로운 여행은 손상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오늘 찍어야 할 장면은 다 찍었으니 남은 거리는 자동차로 가자는 PD의 말은 자전거의 순수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대꾸하지 않고 끝까지 자전거로 갔다.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서먹할 수밖에 없다. 여행은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에게 동행자는 어울리지 않았다.
3. 체 게바라를 따르다가 나의 길로...
쿠바 하면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그의 혁명 루트를 따라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테마였다. 왜 이런 테마를 정했냐면 다른 테마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무슨 테마라도 있으면 그나마 여행하는데 길잡이라도 될테니까 그런 것이란다. 체 게바라에 심취해서 그런 것은 아니란다. 테마의 설정은 잘 했으나 소화는 힘들었다. 작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작가 자신도 고백한다. 체 게바라의 혁명 루트를 따라 온다고 왔지만 체 게바라와 혁명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결국 체 게바라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난 것이 이번 여행의 의미였다고 한다.
이런 차이점 외에는 똑같다. 현란한 비유를 사용한 문체나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농담 속의 의미 등은 여전했다. 그럼 나는 쿠바에 갈 것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여행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쿠바에 대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을 접한 후에 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