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 '수유+너머'이 있다. 말 그대로 연구모임인데, 인문학을 연구한다. 연구를 한다고 해서 이 모임의 구성이 직업적인 학자들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그저 학문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직업 없이 연구실에서 상주하면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모임이 어떻게 가능할까? 자본주의사회에서.. 이 책은 이 연구모임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말해주는 책이다. 부제가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연구실 소개란에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지식의 생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 마디로 앎의 기쁨을 만끽하자는 것이다. 여기 구성원들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미숙 선생이 이 모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서 이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면서 묻는다. 생계에 대한 불안감은 없느냐고.... 대답은 이렇다.
"돈이 없다. 직업이 없다. 가족이 없다. 이런 말은 사실 현실을 걱정하는 말이라기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말 아냐? 지식인이라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사업가라면 당연히 돈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해야겠지만, 지식인이 자기를 표현하는 경로는 다양하니까. 그리고 난 본래 물질을 욕심내는 회로가 없다. 내가 축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쓰지 않는 것이다. 집이나 차를 바꾸면서 소비의 규모를 늘리지 않았다. 돈은 자유의 수단이고, 내가 잠시 관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몇천만원짜리 전세에 살거나 빚으로 넓은 아파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너무 빈곤한 배팅이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자식들 교육과 자신의 노후인데, 연구실에 모여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 교육 문제는 수월해진다. 노후도 마찬가지다. 연구실에서 활기차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노후대책을 위해 돈을 쌓아둘 필요는 없다."
증여와 순환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물물교환이나 재활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건들은 지천에 넘치는데 사람들은 활용할 줄은 모른다. 그래서 다시 물건을 폐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증여와 순환을 시켜서 물건들을 해방시켜라. 증여와 순환은 생각지도 못하고, 주고받음이 오직 혈연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차디찬 '계산기계'들. 그런 몸으로는 타인은커녕 자신의 삶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탈주란 그렇게 거창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가벼워지는 것, 부와 재물이란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양도되기 위해 잠시 내게 머무르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바야흐로 견고한 자본의 성벽을 가로지르는 경쾌한 발걸음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말은 증여와 순환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차가움을 없애고 자본의 성격을 가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건강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건강할 때는 저절로 남을 배려할 수 있다. 배려는 근본적으로 의무나 희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 에너지가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몸의 균형이 깨지면 타인을 배려할 수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없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반면 활력이 넘치면 아주 어려운 일들도 놀랍도록 잘 풀린다."
한마디로 건강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동체를 이룰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자의식이라고 한다. 돈과 지위, 명성 따위를 버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정말 버리기 어려운 건 무의식에 새겨진 자의식이다. 남을 괴롭히는 자들은 진정으로 약자다. 자기가 궁지에 몰려 외롭고 두렵기 때문에 남은 힘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다면 무엇 때문에 타인을 괴롭히겠는가? 그래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이 때부터 명상이 연구실의 주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한다. 음을 비우고 자신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명상을 계속하다 보니 이런 개념도 나오나보다. 변이, 생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망각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짓는다. 비운다는 건 소극적으로 내면에 침잠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외부의 역동적 흐름 속에 자신을 아낌없이 던진다는 뜻이다.
이 연구모임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려고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런데, 책 뒷면에 있는 적당한 글이 있다.
지식과 일상이 하나로 중첩되고,
일상이 다시 축제가 되는 기묘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
도시의 중산층으로 편입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모색되는 곳.
혁명과 구도가 일치하는 비전이 탐색되는 곳.
자신들조차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거야말로 이 공간의 진정한 실체이다.
나도 함께 할 수 있을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