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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카테고리 |
인문 |
지은이 |
도정일 (휴머니스트,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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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나 인터뷰는 일반 글보다 읽기 쉽다.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직접 대화를 하는 것처럼 씌어져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면 대담이나 인터뷰를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다.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만나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이 내용을 글로 쓴다면 정말 복잡했을텐데, 말로 한다니까 그래도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쉬운 것은 접근하는데까지였고, 막상 책을 읽다보니 대담이지만 쉬운 대담이 아니었다. 대담에서 말하는 것들이 너무 자유로워서 내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고, 내용 자체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또 말하다 보면 옆길로 빠지는 것까지적었기 때문에 어디서 돌아와야 하는지 혼동하기도 했다. 게다가 600쪽이 가까운 책의 두께는 위압적이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이해할 수 있으면서, 공감하는 내용들이 있어서 추려보았다.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엥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자본주의 문화는 자아의 문화, 나르시시즘 문화죠. 문을 꼭 걸어잠그고 이해만 따지고, 절대로 문을 열지 않고, 접촉은 이해관계가 통할 때만 하고, 그런 문화 속에서 자아라고 불리는 단단한 문의 폐쇄화가 끊임없이 일어나죠. 이럴 때일수록 껍질을 깨주는 상상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는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인문학적 삶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내가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이 '가슴을 여는 사회'입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울타리를 걷어치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거나 자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삶의 제 1조예요."
도정일이 말하는 인문학적 소양이다. 남을 이해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막고 있고, 인문학은 이를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껍질을 깨주는 상상력으로...
"사실 사람들이 생명과학에 걸고 있는 기대는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여기에도 큰 맹목성이 있죠. 사람들이 은근히 가장 원하는 것은 불멸이에요. 생명과학이 발달해서 어느 순간에 우리를 죽지 않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대 말이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우리가 죽지 않는 방법을 발견하면, 그게 모두가 죽는 순간입니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이 엄청난 번식력 속에서 지구라는 요만한 땅덩어리가 살아남는 게 신기한 일이에요. 누군가가 죽어주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거죠. 죽음이 삶을 허락하는 겁니다."
최재천의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역설적인 말이다. 죽지 않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심은 오히려 죽음을 더 빨리, 그리고 더 거대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과학의 시대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우리 사회만큼 과학 훈련이 안 된 곳도 드물 겁니다.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몇 년 전 정부에서 자립형 사립고 20개를 지정해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5년 후, 10년 후에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 분석할 겁니까? 어떻게 분석하겠다는 과학적인 틀이 하나도 없어요. 20개 학교는 다른 학교들보다 돈이 많았으니 이러저러한 면에서 좋아졌더라. 그건 자립형 사립고 정책의 우수함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 돈의 힘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과학을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인 '실험군이 있으면 대조군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죠. 자립형 사립고를 다른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큰 재정 규모로 운영하게 된다면, 다른 20개 학교에도 동일한 규모의 재정 지원을 해야 하죠. 그러고 나서 나중에 두 군에서 나온 결과를 비교해야 자립형 사립고 정책의 효과를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돈을 많이 쓴 학교가 잘 된다는 결론 밖에는 도출되지 않습니다. 돈의 위력을 시험하는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최재천은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예로 교육의 문제를 들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이미 정해놓고 짜맞춰서가는 것이니까...
"생물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기원은 우연이다. 순수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맹목적인 그 우연만이 진화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뿌리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여러 가능한 가설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대 생물학의 중심 개념이다. 오늘날 우연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며, 그동안의 관찰과 실험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들과 일치하는 유일한 개념이다."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책 『우연과 필연』의 일부분이란다. 생물의 진화나 변화가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원리가 아닌 맹목적이고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파격적이다. 그렇다면 인간 발전이나 변화의 원리도 우연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인간도 생물이니까... 계속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지는 것 같고, 운명론하고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우연을 진화의 뿌리라는 말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역사에는 우연성이 무수히 끼어들지만 역사가 우연의 연속만은 아니죠. 그래서 나는 생물학 혹은 진화론의 우연성 주장을 사회에 곧장 적용해서 일종의 '사회철학'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이나 인문학에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긴 하지만, 인문사회과학과 생물학 사이에는 진화론으로는 극복되기 어려운 고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내 걱정, 혹은 의문에 대해서 도정일은 진화론의 우연성을 인문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문화 자체가 적응의 산물이지만 한번 문화가 성숙하고 나면 개체들은 그 문화의 관습과 규범을 따릅니다. 그런데 그 문화가 적응성을 잃어버려 개체는 물론이고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될 때는 어떡하는가? 적응성을 잃어버린 문화 때문에 망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아주 많습니다. 문명이 망할 때는 망할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생태환경의 파괴라는 게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입니다. 지금의 경제 세계화 문명도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입니다. 그렇다면 그 문명에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건 길게 보면 제 무덤 파기죠. .이게 현대 문명의 곤경입니다. 문명 자체가 방향을 그르치고 있는데 그 문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려야 하는 곤경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이 변화에 빠르다는 건 꼭 자랑거리만은 아닙니다. 변화하되 앞도 좀 내다보고 생각도 해가면서 바뀌는 것이 지혜죠. 지금의 우리 모습은 꼭 눈감고 누가 빨리 뛰는가 내기 경주를 하는 꼴 같아요. 앞에 낭떠러지가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가 세계 경제 체제로 속해서 세계 경제의 큰 역할을 하면 그게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길게 보지 못하는 짧은 생각이다.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그리고 그 길은 올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가야 한다.
"사회문화적 다양성이나 생태계에서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선, 생명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해야겠죠. 생명은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둘째, 다분히 인간적인 기준일지 모르지만, 자연계라는 거대한 생태 창고 안에는 인간이 아직 모르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인간이 모르는 문제, 그 미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소리 없이 저장해놓고 있는 것이 생태계입니다. 그런데 그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해버리면 인간은 제 손으로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잃어버리게 되죠.
지금 인간은 자기가 아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는 명민하지만, 모르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합니다. 그러다가 몰랐던 문제가 터지면 그때부터 당황하는거죠. 그제야 해답을 구하자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파괴해서 없애버렸기 때문이죠."
논술반 아이들과 글을 쓰면서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그저 인간에게 필요하니까, 혹은 자연이 있어야 인간도 있고, 생명이니까라는 정도만 나왔었다.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깊이 있는 생각같다.
이 책이 읽기 힘든 점이 있지만, 좋은 점이 있다면 책 뒤에 두 학자가 나눈 대담에서 쟁점이 되는 화두를 찾아보기식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관련되는 쟁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쉽게 찾아도 내용은 어려울 수 있지만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