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의 다음 이야기이다. 전편은 주로 중미를 다녔고, 2편은 남미를 다녔다. 3편도 있다는데, 3편도 남미가 계속 될 것 같다.
생각이 자유분방한 사람은 행동도 과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그렇지 않다. 생각만 자유분방하고 행동은 소심하다. 그래서 두려운 것들이 많다. 그런데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과감해서 그런지 친구들 믿고 움직이다 보니 이 사람도 점점 대범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여행은 재미있어진다. 여행을 함께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여러 생각 중 중요한 부분은 친절하게 빨간색으로 되어 있다. 그 중 공감이 가는 한 부분을 옮겨본다.
함부로 평가받고, 함부로 발전하는 사회. 그래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이 떠나고 있다. 사회에 부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응할 만한 가치를 선택하는 삶. 세상이 만만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도시에서 살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고,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사실은 다른 사람일 뿐이지만-은 당당히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기에 앞서 적응할 만한 사회인지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적응하기도 싫고, 적응할 수도 없는 삶에 적응하기 위해 인생을 소비하는 가운데에서 언제 우리가 이 사회가 적응할 만한지 판단한 적이 있었는가? 그런 생각 해 볼 수 있다.
좋은 앵글과 좋은 색감, 인공적 조미료를 친 화면에 우리는 길들어져 버렸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도 멕시코의 팔렝케도 텔레비전으로 볼 때는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직접 보았을 때는 어딘가 허전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싶을 만큼 위축되어 보였다. 관광을 즐기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불쌍한 현대인,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혜의 장관이 있기나 한 걸까? 방송과 매스 미디어는 비밀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편집증 환자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이 있어서 집에서 편하게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봤을 때의 감흥을 떨어뜨리는 역할도 한다. 비밀은 비밀스러워야 맛인데, 비밀을 들추려는 텔레비전의 속성은 짓궂음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여행 갔다 와서 각종 매체에 여행지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함으로써 비밀은 폭로된다. 앞으로 여행하면서 감출 것은 감추는 비밀의 미덕을 보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