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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3] 여행의 이유: 소설가는 이렇게 여행한다행간의 접속/여행 2021. 5. 12. 22:24
책이름: 여행의 이유
지은이: 김영하
펴낸곳: 문학동네
펴낸때: 2019.04.
제목에 '이유'라고 달려 있지만 이유를 얘기하기보다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읽으면서 이 사람 참 많이 다니고, 많이 생각하면서, 삶을 참 풍성하게 사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중간에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제작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그 중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먼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하는데, 비자가 없어서 바로 돌아오게 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고,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그런 것들이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재미가 있을 수 있다면서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여행기가 있다면 재미없어서 읽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도 여행에서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거의 그대로 하려고 하고, 사실 거의 계획대로 한다. 계획대로 맞춰지는 상황을 즐기면서 여행을 하는데, 나중에 이것을글로 써놓으려고 보면 보고서 같은 느낌이 든다. 뭐뭐 한 것만 나오고, 우당탕탕하는 사건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소설가답게 플롯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플롯인 '추구의 플롯'에 대해서 얘기한다.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층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추구의 플롯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얻게 되는,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는 삶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예측하지 않은, 의도하지 않은, 불확실한 일들이 삶을 더 긴장되게 만들고,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과 같은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숙소에 머무는 느낌은 새롭다. 약간의 설렘도 있고, 새로운 편안함도 있다. 그 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기존의 집에 대한 생각이다. 지은이는 기존에 거주하는 집에는 상처가 있다고 얘기한다. 집의 여기저기에 얼룩처럼 상처와 고통, 갈등과 마찰 등이 그 집과 함께 있는데, 여행은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여행의 설렘은 상처와 고통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다시 재시작할 수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여행에는 신뢰와 환대가 있다. 여행자는 원주민을 신뢰하고, 원주민은 여행자를 환대한다. 서로 그렇게 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게 한다. 지은이는 이에 대한 관점을 더 크게 확장시켜서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도 신뢰와 환대라고 본다. 먼저 여행을 한 사람(부모)이 나중에 여행하는 사람(자식)에게 환대를 배풀고, 나중에 여행하는 사람은 신뢰하는 것. 이런 시각이 참 인상깊고, 따뜻하다. 나도 이집트에서 시내버스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함께 동행하면서 요금까지 내주는 환대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도 외국인을 만나면 친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외국인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별로 없더라.
여행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 사실 긴장하게 되고, 조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편한 것을 찾으려는 마음에 고향에서와 같이 행동하는 경우들이 약간씩 생겨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나저나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여행의 이유를 읽는 것이 오히려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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