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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4]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건축가가 문학적 감수성에, 글쓰기 능력과 그림 능력까지 있으면 생기는 책행간의 접속/건축 2025. 5. 14. 21:02
책이름: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곁이름: 삶은 짓는 건축가 김억중
지은이/그린이: 김억중
펴낸곳: 동녘
펴낸때: 2008. 2.
건축과 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전에 읽은 책 중에서 <건축, 근대소설을 거닐다>가 있었는데, 그 책에는 근대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들을 하나로 묶어서 새로운 소설을 만든 책이었다. 상상을 재미있게 한 책이었는데, 이 책은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 속에서 공간이 주는 감성적인 부분들을 찾아서 그런 감성을 줄 수밖에 없는 공간적인 분위기와 그런 감성을 이끌어내는 공간의 의미 등을 심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나 느낌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굉장히 섬세하게 얘기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지은이는 문학 속의 집들을 보면서 좋은 집은 어떠해야 하는지 물었다고 한다.나는 삶의 진실이 몸에 밴 그들에게서 집이 무엇인지를 배우려 했으며 좋은 집은 어떠해야 하는지 대놓고 물어보려 했다. 그들은 집에 대한 꿈과 그리움, 절망 또는 억압과 상처를 어떻게 느끼고 견디어 내는지를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집과 더불어 야기되는 일상의 풍경들이 그들의 삶 속에 커다란 감동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가슴속 갚이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문학 속의 집은 겉모습이 아름다운 집보다 내실이 건강한 집이 얼마나 더 소중한지를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만난 문학 속의 집들은 저마다 세상과 삶에 대한 사연 하나씩은 지닌 채, 단편적이나마 무언가 진실을 말하려 하고 있었다. 때로는 집관 관련된 사람에 대하여, 때로는 대지와 환경에 대하여, 때로는 미학에 대하여 가차없이 주장을 하기도 했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기도 하였다.
문학이 집은 이러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집과 그 공간 속의 등장인물들이 반응하는 현상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대답하고 있다.
문학 작품 속에서는 특정한 공간에 들어간 인물이 느끼는 특별한 느낌에 대해서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실제로 경험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프랑스의 남부지방 토로네에 위치한 11세기 건축물 시토회 수도원어 갔을 때의 일이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깊은 수렁에 빠져든 것처럼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했다. 공간은 분명 나를 압도하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나를 억압하거나 불편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고 고요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공간은 차가운 돌로 지어졌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돌은 본래의 '무겁고, 딱딱하고. 차가운' 물성을 잊은 채 한없이 부드럽고 경쾌하며 따뜻한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창이 많지 않았고, 크기가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당 안은 답답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서 벽면, 천장으로 이어지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서서히 온몸으로 전염되고 있었다. 나는 지상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안온한 공간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건축 공간에서 느끼는 심리적 효과를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한 글은 최근에 본 적이 별로 없는데, 탁월한 것 같다. 내가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강석경의 "거미의 집"이라는 작품에서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수영이라는 초등학생이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성품을 묘사한 부분을 언급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어둠 속에선 물감 접시의 형체와 고귀한 색을 알아 볼 수 없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있어 물감마다 본색을 드러내며 살아 숨쉬는 모습으로 느낀다. 아이는 할아버지 방을 물들이는 유난스런 햇살을 제 것처럼 즐긴다. 그 물감의 정경이 오죽이나 아름다있으면 할아버지 몰래 몇 개를 빼내어 갖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을까? 하지만 수영은 이내 물감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렇잖아도 할아버지는 늘 그림도구를 가리키며 수영에게 '이건 네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자신이 화가가 되라는 얘긴 줄 알아듣고 이제껏 그 생각을 가슴속에 품어 왔으니. 좀더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라고 마음을 추슬렀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강렬했던 햇살의 유혹을 용케 이겨냈다. 햇빛 속에서 자신의 불우한 삶마저 환하게 밝아지리라는 희망을 읽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께 마음을 온전히 기대었듯이, 방 안에 충만한 햇빛에 기대어 삶을 달랠 줄 아는 아이의 심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햇살을 내면화할 줄 아는 심성만으로도 아이는 할아버지를 훌쩍 뛰어넘는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건축가가 아니라 문학평론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한 섬세한 분석이다.
이번에는 유익서의 소설 <민꽃소리>을 인용하면서 정적, 소리가 없는 고요함을 문학이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소원을 풀어 대금을 연주하게 되는데. "여명에 어두운 밤하늘이 열리듯 그의 대금에 의해 용상이며 병풍이며 기둥이며 살미며 첨차며 전등이며..... 일제히 오랜 침묵의 껍질을 벗겨내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 정명재는 건축 공간을 '정적이 꽉 들어찬 실체 로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정적이란 단순히 조용한 분위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밀도와 무게, 두께와 깊이를 지닌 존엄한 존재가 내려앉아 있는 것과 같다. 그 깊고 웅장한 정적 속에 대급소리를 밀어 넣어 소리와 공간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했던 그의 욕망을 깊이 이해할 만하다. 그에게 정적은 바로 가장 완벽한 오케스트라였던 것이리라.
건축이 만들어낸 정적이 꼭 찬 공간에서 자신의 대금소리를 밀어넣고 공간과 하나가 되려는 대금 연주자의 예술혼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적이 꽉 들어찬 실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정적은 고요한 것인데, 이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데, 비어 있는 것인데, 꽉 들어찼다고 하니 그 정적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창은 문학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건축 요소이다. 이 책에서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창은 한없이 투명하고 넓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존재로 그저 그곳에 있을 뿐 시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창의 크기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다다르는 시선의 부재가 문제다. 그러므로 나태한 눈들을 연민으로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창은 하느님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까치방의 성자를 비추는 하느님! 작은 창일망정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한 생각이 까치방에 미치지 못하다면 내가 사는 집이 감옥이요. 나스스로 자연의 은혜도 모르고 지내는 수인이 아닐는지...
감옥의 창은 눈 높이에 있지 않고 저 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안의 사람들은 하늘만 보게 된다. 그 창으로 계절을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자신의 인내를 확인하고.... 창은 작지만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라는 작품에서는 아파트를 견디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온다. 그러면서 사람은 드러내기보다는 숨겨야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아파트는 그러질 못해서 편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같이 자신을 숨길 데가 없는 아파트가 그녀의 몸을 억압했을 수도 있다. 김현이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숨겨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파트와 달리, 땅에 뿌리를 내린 집은 많은 것을 숨길 수 있는 구석이 있어 깊이를 지니고 있다. 다락방이 있고 지하실이 있어 입체적이다. 같은 층에 모든 공간이 노출되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숨을 곳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아파트는 어떠했을까? 추측건대 방 높이는 같고 크기만 조금 다를 뿐. 그녀의 아파트는 입체적인 느낌도 공간의 깊이도 없음이 틀림없다. 방문만 열면 모든 것이 한 눈에 드러날 만큼 공간들끼리 서로 열려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열림은 깊이 있는 열림이 아니다. 열려 있어 시원한 맛은 있을지 모르나, 깊이가 없어 자신의 소중한 삶을 간직할 만한 구석이 없다.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 없이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깊이 없는 공간 구조'는 그녀에게 분명 끔찍한 형벌이었을 터이다. 기능적으로는 편할지 모르나,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을 아파트가 그녀를 서서히 억압했을 수도 있다.아파트의 평면도를 보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배치를 했지만 단순하고 재미는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래서 예측 가능하다. 우연적이거나 예상 밖의 공간은 없다. 그런 완전한 합리성이 인간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아파트에 살아왔었기 때문에 아파트의 이런 요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이게 불편함으로 이어진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획일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문학 작품 속의 이런 장면을 보고, 건축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지은이의 혜안이 경이롭다.
읽으면서 문학과 건축이 이렇게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은이가 건축가이면서도 문학적 감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탁월한 글쓰기 능력까지....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까지 그렸다. 이거 뭐 못하는 게 없네..... 여러 가지로 부럽다.'행간의 접속 >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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