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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1] 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너무 간결하게 쓰다 보니
    행간의 접속/건축 2025. 5. 3. 22:40

    책이름: 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지은이: 리차드 웨스턴
    옮긴이: 김광현, 서울대 건축의장연구실
    펴낸곳: 시드포스트
    펴낸때: 2012.12.

    건축의 여러 아이디어들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들을 뽑은 책이다. 좀 전문적이기는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웬만큼은 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 기억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뽑아보았다.

    1. 중앙난방

     

    중앙난방은 우리 나라의 온돌 방식이라서 우리는 너무 친숙하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할까 생각하지만 이 방식을 도입한 이후 건축계는 큰 영향을 받았다.

    중앙난방 덕분에 건축가들이 굴뚝으로 인한 설계의 제약으로붙 자유로워지게 되면서 자유로운 평면과 같은 설계 혁신도 이루어졌으나, 이후 얼마간은 일부 주택 거실에서 벽난로가 가정의 중심으로 그 인기를 유지했다. 이윽고 벽난로가 더 이상 쓰이지 않거나 사라지게 되자 산업 도시에서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안개와 스모그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중앙난방이 끼친 영향은 혁신적이었다. 당시 중하층 및 노동자 계급 가족 구성원들은 벽난로가 놓인 한두 개의 거실 주위에 모여 집단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앙난방의 등장과 함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따로 침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가정생활이 분산되었고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 가전제품을 손십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가속화되었다.

     

    중앙난방이 이런 영향까지 끼쳤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 전기조명

     

    전기조명도 영향이 끼친 바가 크다. 전기조명이 들어오면서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거주가 가능하게 되었고, 주변과 크게 관계를 가지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의 건물이 늘어났고, 창문이 아예 없는 입면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태양의 방향과 방에 빛이 얼마나 들어오게 하느냐 하는 것을 중요한 건축적 요소로 생각했었지만, 전기조명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런 것들이 무시되고,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건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입면에서 향이 무시되고 주어진 작업을 수행하기에 '이상적'이라고 추정되느 조명 수준을 가정하면서 공간은 균일한 조도를 갖게 되었고, 이는 거주자의 방향감각과 공간 인식능력의 감소로 이어졌다. 밤에는 이러한 건물들로부터 빛이 흘러나와 지극히 황홀한 근대적 장관이 만들어졌지만, 낮에는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고, 건물과 도시가 마치 버려진 듯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정말 큰 영향을 키친 것 같다. 


    3. 에어컨

     

    에어컨도 건축에 끼친 영향이 크다.

    대형 덕트를 설비하려는 도전이 한계에 부딪혔는데, 이를 지켜본 루이스 칸은 '지원하는 공간과 지원받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한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계 시스템에 점차 의지하다 보니 건축가들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면서 건축적인 특성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향을 고려하거나 창문을 설계하는 사안을 경시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무실을 위한 빛과 온도, 그리고 습도라는 '완벽한' 체계에 대한 신념은 또한 점차 균일화되는 환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에어컨은 그냥 시원하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건축을 획일화하는 문제점까지 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공간(space)

     

    공간이라는 말, 개념이 건축에서 처음부터 있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란다. 재료로서의 공간은 처음부터 인식하고 있었지만 건축의 본질로서 공간 개념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1893년 슈마르조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미술사학과 과장으로 취임할 때 한 강연에서 공간을 기존과 다르게 이야기한다.

    슈마르조는 구조 요소들을 축조적으로 조합하는 데 건축의 본질이라는 기존 생각을 비판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더 큰 개념에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자기 이론을 '유전적'이라 말하며 그 이론이 인간 심리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과 상상력이 공간을 창조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공간에 대한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은 예술에서 완성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을 우리는 건축이라 부른다. 간단히 말해서 건축은 공간의 창조자다.'

     

    그전의 철학자들은, 건축가들은 공간에서 이런 생각을 못했다는 사실이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건축이 철학에서 변방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5. 장식은 죄악이다.

     

    이 말은 아돌프 로스가 한 말인데, 모든 장식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로스의 관점에서 진정한 죄악은 기능적인 사물을 장식함으로써 덧없는 유행의 세계에 휩쓸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즉 장식이, 수명이 얼마 되지 않는 장식적인 직물이나 카펫에는 적절한 것이지만, 내구성 있는 재료로 훌륭하게 설계된 건축물이나 사물에는 모욕인 것이다. 또한 로스가 스스로 '매끈하고 품격 있는 표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던 것처럼, 그의 주장은 미학적인 것이었지만 동시에 진화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즉 그는 장식의 배제를 생물학적 사실로 바라보았으며, 잘 만들어진 사물을 유행에 뒤쳐지게 만드는 장식으로 인한 자원의 낭비를 싫어했다.

     

    이 아이디어는 인상적인 것으로 뽑지 않았는데, 뒤에 아이디어들을 읽다보니 아돌프 로스의 이 말이 많이 나와서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고 생각해서 뒤늦게 뽑게 되었다.


    6. 현상학

     

    현상학이 건축과 연관이 있다고?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관련이 있다.

    현상학이란 세계 안에 체화된 존재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유럽대륙 철학의 한 갈래이다. 근대 이후의 건축은 그것의 복잡성과 높게 솟은 규모를 강조하며 개념적으로 공간의 구성을 확립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소와 기하학적 형태언어에 기반한 공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왔다. 그러나 현상학적 관점이 건축에 적용되면서,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건축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이라는 책이 출간되자 건축계에 현상학이 확산되게 되었다.

    건축물을 계몽주의 노선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바슐라르의 분석은 건축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였다. 그는 시를 통해서 다락방, 지하철, 서랍과 같은 기본적인 공간의 유형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건축가들이 추상적 개념들에 근거하여 공간을 설계하기보다는 경험에 근거할 수 있도록 북돋았다.
    현상학의 주된 관점은 '생활세계'에 근거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적 삶의 문맥을 일컫는다.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불리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인간은 반성적이며, 공감적인 태도로 일상과 마주한다.

     

    결국 현상학은 건축을 통해 경험을 인식하고, 일상을 인식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나서 아쉬운 점이 좀 있었다. 제목에 '건축을 뒤바꾸'었다고 하니 무엇인가 뒤바뀌기 전과 뒤바뀐 후의 달라진 것을 이야기하고, 어떤 아이디어 때문에 뒤바뀌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줄 알았는데, 이게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약간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이거 설명하려면 양도 더 늘어나야 할 것 같다. 거기다 설명도 간결해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 수준이었다.

     

    그 다음 또 아쉬운 점은 실제로 읽어보면 번역투의 문장이라서 내용이 쉽게 들어오지는 않았다는 점과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이 너무 작거나 희미해서 읽기가 불편했다. 여러 가지로 좀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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