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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3] 나는 건축가다: 건축가의 내면을 끄집어내지 못한 인터뷰행간의 접속/건축 2025. 5. 10. 15:43
책이름: 나는 건축가다
곁이름: 20인의 건축 거장, 삶과 건축을 말하다
지은이: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옮긴이: 김현우
펴낸곳: 현암사
펴낸때: 2010.06.
독일의 주간지 <디 차이트>의 기자가 건축가들과 인터뷰한 기사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그러다 보니 질문과 답변이 길고 깊이 있게 드러나지 않고, 짧고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호흡이 짧다. 거기다가 인터뷰어가 조사하듯이 공격적인 태도와 말투로 질문을 던지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인터뷰이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자하 하디드와 인터뷰를 할 때에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훌륭한 건축가들을 앞에 두고, 그들로부터 독자들이 듣고 싶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기자를 보니 참 답답했다. 그럴려면 기자도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고, 그게 쉽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건축 기사를 쓰고, 평론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분이 좀 부족한 건가?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상적인 내용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몇 가지 뽑아 보았다.
귄터 베니쉬는 사물의 개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나는 풍경 속의 사물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냇물과 언덕, 언덕과 들판이 대화하는 거죠. 우리의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물들이 서로 말을 해요. 내 건축물 속의 여러 사물이 차렷 자세로 서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사물을 사람처럼 생각해요. 사물에 개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사물을 개체로 보고 싶어 하죠. 자유는 다양한 물질과 형태 속에, 무질서해 보이는 것 속에 있다고 봐요. 모든 것은 자유로울 때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못쓰게 되거나 함부로 사용해 구멍이 뚫린 널빤지나 어떤 부품 같은 것을 보면 제대로 다루어 주는 게 좋아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건축은 완벽해야 하죠? 저는 다만 미완성인 물건을 좋아하는 거예요. 문학도 마찬가지죠. 작가가 모든 것을 다 말한다면 재미는 달아나 버려요. 틈이 있을 때 독자의 상상력이 발동하죠.자유는 무질서 속에 있다는 말, 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피터 아이젠만은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지은 사람이다. 여기를 다녀가는 사람들은 무기력을 경험한단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자.자극이 아니라 마음을 흔들고 싶었어요. 카스파르 다비트의 그림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카스파르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그의 작품에는 뭔가 기이한 것이 있어요. 카스파르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그의 작품에는 뭔가 기이한 것이 있어요. 당신은 그림 속에서 길을 잃고 혼자가 되느 것처럼 느끼게 되죠. 추모관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요. 기둥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방향감각과 목적을 상실하고 심지어 자신감까지 잃어버리 수 있어요. 사실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사진과 영화에서 본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 것이에요. 추모관은 매스컴이 심어 준 이런 이미지의 힘을 깨뜨리려고 해요. 직접적으로 신체적 경험과 감성에 호소해 시각적 측면의 지배를 극복하려고 하죠.
홀로코스의 공포를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상징, 즉 우리가 이해하고 정신에 새길 수 있는 어던 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거예요. 추모관에서는 어떤 진실도 내세우지 않고 어떤 의미도 알려 주지 않아요.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납득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기력해지는 것이죠. 우리는 추모관에서 이런 무기력함을 경험해요.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렘 콜하스는 중국의 베이징에 CCTV 사옥을 지었다. 중국은 민주적이지 않은 정권이 통치를 하는 나라인데, 그런 정권을 위해서 건축을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 중국은 변화하고 있고, 윤리적인 오만함으로는 대립만 불러올 뿐이라고 말하면서 상대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면 수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협력이란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귳기, 사고방식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예요. 나는 그런 방법으로만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하루아침에 우리처럼 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돼요.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데도 수백 년이 걸렸어요. 그럼에도 나는 우리 건물에서 특히 진보적인 힘이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금 CCTV에서는 영국의 BBS처럼 국영방송을 전통적인 부문과 현대적인 부문으로 나누는 일이 논의되고 있어요. 그리고 문명화되고 현대화된 방송 종사자들이 우리 건물 안으로 들어올 거예요. 자랑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 건물은 변화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여요.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의 경우도 이야기하는데, 북한의 경우에는 중국처럼 협력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개방적이지 않고 접촉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기자들이 인터뷰를 정말 잘 한다고 생각했다.'행간의 접속 >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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