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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6] 로마인 이야기 7, 악명 높은 황제들: 쉽지 않은 황제 자리
    행간의 접속/역사 2014. 4. 14. 16:35



    로마인 이야기. 7: 악명높은 황제들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한길사 | 1998-11-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시오노 나나미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서기 20...
    가격비교


    7권은 아우구스투스 이후에 황제 자리에 오른 4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4명은 차례대로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디우스, 네로이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아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군주제가 아니고, 원로원과 시민의 승인 후에 통치를 하는 제정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원래부터 부자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권력의 정통성을 핏줄로 보는 인식을 하였기 때문에 양자를 들이는 방식으로 부자관계를 맺는 측면이 많았다.


    1.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가 생각한 후계자는 자신의 손자들인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루키우스 카이사르였지만 이들이 모두 젊은 나이에 죽게 됨에 따라 할 수 없이 인정한 후계자가 티베리우스이다.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아의 라인강 전선을 지키는 역할을 훌륭히 완수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세웠다가 아우구스투스와 의견이 맞지 않아 군대나 정치에 대한 뜻을 버리고, 은퇴하여 지중해의 섬으로 유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그를 불러와 집정관에 앉히고 권력을 부여하여 정계에 복귀하였고, 아우구스투스의 사망으로 황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티베리우스의 역할은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에 비해서 화려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시작을 하였고, 제국의 영토를 넓히기 시작했으며,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다. 아우구스투스는 제정을 완성시키고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다. 이에 비해서 티베리우스는 새롭게 하는 것이 없고, 이전의 황제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 보수하는 일만을 했다. 대신 꾸준하고, 성실하게.... 그게 티베리우스의 위대함이다. 속주제도와 세금, 군단 배치, 대외 정책 등 특별히 새로울 것들이 없다. 단지 흠이라면 통치 중에 카프리에 은둔하면서 밀실 정치를 했다는 것인데, 그 정치의 결과가 부정이나 폐해가 있던 것이 아니라 나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가 되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대중들에게 불만인 것은 변화없는 것에 대한 지루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2. 칼리굴라


    칼리굴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뻘인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이다. 게르마니쿠스가 티베리우스의 후계자로 지명되어서 양자가 되었으나 역시 일찍 죽어서 그의 아들인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황제에게 로마의 상황은 최상이었다. 영토도 넓었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속주나 동맹국들도 문제가 없었고,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그대로 물려받았고, 유지하면서 누리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젊은 황제가 누리기만 하고, 유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너무 누리려고 바꾼 것들이 나중에 가서 구멍이 생긴 것이다. 특히 국가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금을 깎아주고, 축제를 만드는 등 온 나라를 흥겨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운 황제가 바닥난 국가 재정을 돌아보았을 때, 그에게는 이를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결국 반정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3. 클라우디우스


    클라우디우스는 게르마니쿠스와 형제이다. 칼리굴라의 삼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군대와 정치에는 관여한 적이 없고, 오직 역사 연구에만 몰두한 학자 출신이다. 반정세력이 그를 황제로 추대하자 그는 역사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황제가 된다. 그리고 칼리굴라가 망쳐놓은 국가 경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의 측근에는 자신의 노예 출신 비서관들이 있어서 행정실무를 담당할 수 있었고, 로마를 다시 일으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대신 원로원과 같은 보수적인 그룹은 이에 대해서 좋게 보지는 않았다. 군대나 집정관 같은 리더로서 활동하지는 않았찌만 역사가로서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정치를 했기 때문에 통치 행위의 역사적 의미를 잘 이해하였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4. 네로


    네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폭군 네로이다. 그는 클라우디우스의 아내인 아그리피나가 데려온 아들이었고, 아그리피나의 적극적인 압력과 노력으로 후계자가 되어 젊은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 아그리피나가 아니었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클라우디우스는 네로에게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세네카를 스승으로 붙여주었고, 세네카는 그 역할을 잘 하였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스승으로서, 황제가 된 후에는 보좌관으로서 현실 정치에 개입하였다. 그래서 네로의 초기 통치를 보면 폭군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네로는 로마를 불태워서 시를 짓고, 노래하고, 대경기장에 사자를 풀어기독교도를 박해하는 얘기만 듣고 폭군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 의하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로마를 불태운 것은 아니고, 로마에 대화재가 났을 때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이를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시를 짓고, 노래하는 것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데,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도 박해는 맞는 얘기다.


    시와 노래를 좋아해서 자기가 만들고 혼자 부르다가 점점 공연 무대에 서기도 하는 등 황제로서의 권위를 버리고, 너무 대중적인 부분에 몰두하다 보니 정치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해야 할 것도 그 정도가 너무 과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이 네로의 단점이었다. 속주 총독을 임명하는 것과 관련된 인사 부분에 있어서는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속주 총독들이 들고 일어나서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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