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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4] 로마인 이야기 4, 5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하: 카이사르 멋지다
    행간의 접속/역사 2014. 3. 18. 13:29



    로마인 이야기. 4: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2-05-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시오노 나나미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서기 20...
    가격비교



    로마인 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2-05-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시오노 나나미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서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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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 4권과 5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전기문이다. 물론 3권에서도 마리우스와 술라가 등장할 때 카이사르도 잠깐씩 등장했지만 중심이 아니라 주변인물이었다. 반면에 4권과 5권에서는 온전히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만이 서술되고 있다. 이 중 4권은 카이사르가 태어나서 갈리아 전쟁을 치르는 이야기이고, 5권은 갈리아 전쟁이 끝나고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는 내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 권은 카이사르의 저서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1. 갈리아 전쟁 이전


    갈리아 전쟁 이전에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나 스피키오처럼 젊은 나이에 출세를 하거나 명성을 쌓는 식으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근차근히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켜서 권력의 정점에 이를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정치적으로 민중파에 속했고, 따라서 반대파인 원로원파와는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술라가 미트로다테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정권을 잡고 민중파를 소탕하자 카이사르는 소아시아로 도피하여 생활한다. 거기서 미누키우스 총독의 군대에서 참모가 된다. 술라가 죽자 귀국하여 변호사가 되지만 실패했고, 로도스 섬에 유학을 갔다와서 제사장이 되고, 회계감사관이 되고, 먼 에스파냐에 총독으로 부임했다가 귀국하여 원로원 의원이 된다. 이후 안찰관에 취임하여 대중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아피아 가도를 보수하고 화려한 검투시합을 개최한다. 호민관인 라비에누스와 협력하여 최고제사장에 취임하고 서서히 원로원 체제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법무관이 되고, 먼 에스파냐 총독을 다시 역임하고 돌아와 집정관에 출마하여, 당선된 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손잡고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국가개조를 시작한다. 1년간의 집정관을 마치고, 북이탈리아, 일리리아, 남프랑스 속주 총독이 되었고, 로마 국내를 맡아줄 자신의 사람들을 집정관과 호민관에 포진시킨다.


    2. 8년간의 갈리아 전쟁


    갈리아 전쟁은 갈리아족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갈리아족은 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부, 스위스 지역에 사는 민족으로 게르만인의 이동으로 로마의 속주에 침입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평정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북이탈리아 속주 총독으로서 군단을 편성하여 갈리아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을 통해서 로마의 방어선이 라인강 서쪽, 브리타니아, 남프랑스 등으로 확정되어 로마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이 전쟁을 위해 이동로를 닦았고, 거점 도시들이 개발되었는데, 이 길과 도시들이 현재의 서유럽의 도시와 도로망을 이루게 된다. 아울러 브리타니아 원정을 통해 영국이 로마의 문명을 접하게 되고, 서유럽의 일원으로서 합류하게 되는 기원이 된다.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아르베르니 족장이 반기를 들고 다른 갈리아족이 호응을 하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부르주를 공략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알레시아에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여 모든 갈리아족을 복종시키고 로마화하게 된다.


    3. 갈리아 전쟁 이후, 내전의 시작


    갈리아 전쟁 동안 로마의 원로원파는 집정관과 호민관 등을 차지하여 카이사르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대항하고, 군대를 해산하지 않는 카이사르와 맞서기 위해 폼페이우스를 설득하여 군대를 맡긴다. 결국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루비콘 강을 넘어 로마로 들어오고, 폼페이우스의 군대와 싸우게 되어 내전이 시작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루비콘 강을 건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와 같은 유명한 말들이 나온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풍부한 야전 경험과 강력한 지도력으로 폼페이우스 군대를 압도하여 폼페이우스와 원로원파는 그리스로 쫓겨간다. 


    4. 로마 밖의 내전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의 세력은 그리스, 에스파냐,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시리아 등 지중해 주변의 속주와 동맹국들이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이들을 물리쳐야 진정한 로마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에스파냐 속주를 공격하여 세력에 넣었고, 이어서 그리스에 상륙하여 폼페이우스와 맞섰다. 양적으로는 폼페이우스가 월등했지만, 질적으로는 카이사르가 강력했다. 결국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여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갔고, 그곳에서 살해된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 내분을 일으킨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중재한다. 여기 나오는 클레오파트라가 바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이다. 카이사르의 중재에 클레오파트라는 동의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거부하여 카이사르에게 대항하였고, 나일 삼각주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죽고, 카이사르는 승리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리아, 유대, 소아시아 등지를 돌며 속주와 동맹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이제 폼페이우스의 마지막 세력이 남아 있는 북아프리카에 원정하여 승리하고 로마로 귀환한다.


    5. 카이사르의 개혁


    카이사르가 내전을 치르면서 이루고자 한 것은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그 넓은 땅과 인력과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제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합의하고, 전달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너무 소모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 결과 원로원과 민회, 호민관 등을 없애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상태에서 개혁을 해나갔다.


    여러 가지 개혁 중에서 기억할 만한 것은 율리우스력을 시행한 것, 로마시민권의 확대, 속주 재편성, 속주의 세금을 민간업자가 거두지 않고, 공영 징세기관이 거두는 것, 실업자와 제대군인들을 속주와 식민지에 분산 등 다양하다. 


    6. 암살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대파의 사주를 받은 참모진의 암살로 카이사르는 생을 마감한다. 웃기는 것은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원로원파가 다시 일어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눈치를 보며 정권을 잡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쫓겨나고 이 혼란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두 사람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정리된다. 안토니우스는 당시 집정관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7.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두 사람은 서부는 옥타비아누스, 동부는 안토니우스가 담당하면서 서로의 지배에 개입하지 않고, 불가침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사실상의 분단이라고 봐도 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지역에서 자신의 장악력을 확보하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의 도움으로 잘 진행하지만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 원정에서 크게 패하고, 동부의 속주를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에게 속하게 한다는 식의 몰상식한 결정으로 로마인들을 분노케 하여, 결국 옥타비아누스와 그리스에서 대결을 하게 된다. 두 세력이 맞붙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승리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패배하여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쳤고, 둘은 자살한다.


    이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안토니우스를 이용했고, 안토니우스는 여자 치마 폭에 휩싸여 이것 저것 다 내주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여왕인데, 이 이집트의 왕실과 지배층은 사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들이 이주한 민족이다. 따라서 이집트 민족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8. 인상적인 부분들


    카이사르가 내전을 치르면서 반대파를 포위해서 섬멸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게 했다. 동족 간에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그리고 반대파들을 그대로 석방했다.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인권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9. 다 읽고나서


    방학 동안 독서를 많이 하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거의 하지 못했다. 합쳐서 1000쪽이 넘는 이 두 권을 거의 두 달에 걸쳐 보았는데,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다. 근데, 카이사르는 왜 이렇게 멋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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