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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99]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 중세를 넘어선 작은 거인행간의 접속/역사 2013. 11. 5. 21:13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서를 계속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베네치아의 이야기이다. 통상을 주로 하는 도시국가로서 중세부터 근대 이전까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권은 베네치아의 탄생과 해양통상무역의 모습, 4차 십자군전쟁을 통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모습, 군주제가 아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정치제도인 공화제, 같은 해양통상도시국가인 제노바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중에서 흥미롭거나 인상적이거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풀어본다.
해양통상도시국가로서 베네치아는 모든 정책의 중심을 경제발전에 두었다.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되지 않느냐로 정치, 외교, 그밖의 다른 것들을 결정지어 나갔다는 것이다. 4차 십자군으로 인해 얻게 된 영토들도 직접 다스리지 않았다. 직접 다스릴 경우의 비용보다는 자치권을 주고 베네치아의 통상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경제적인 관점을 지켜나갔다. 영토국가 터키가 모든 영토를 직접 다스리려고 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었다.
베네치아는 제국령의 8분의 3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영토의 영유는 봉건제후인 프랑스인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상업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기점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것은 인구가 적은 베네치아로서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가능한 일밖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지 이외는 내륙을 영유하는 일에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마저도 금각만 연안에 있고 궁성에 가까우며 선착장으로서 적합한 일대와, 성 소피아 대성당 주위만을 베네치아인의 거주구로서 소유했다. 자연히 베네치아령은 면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흩어진 점으로 되었다. 더구나 그 점조차도 유지하기에 힘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면 깨끗이 그 영유권을 포기했다. 베네치아에게 우호적인 도시로 남을 것이라는 보증만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합리적이지 않은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필요한 것만 취하면서 국가를 경영하는 것. 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중세 시대에 이런 생각으로 경영하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그 다음으로 합리적인 것은 '콜레간차'라는 융자제도이다. 첫번째는 자본가가 전 자본의 3분의 2를 대고, 경영자(선장이나 선원들)이 3분의 1을 대서, 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본가는 전액을 출자하고, 경영자는 출자하지는 않지만 이익이 나오면 4분의 1을 갖고, 자본가는 4분의 3을 갖는 것이다. 경영자는 한 배에서는 4분의 1이지만, 한 자본가와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므로 4분의 1이 4분의 10이 될 수도 있다. 이 제도는 자본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편했고, 자본을 내는 쪽에서도 위험을 분산한다는 측며네서 환영받았다. 또한 소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투작의 기회를 주어서 이익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제도들 덕분에 빈부의 차가 적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경제를 만들 수가 있었다.
또한 각 상선에서도 선원들에게 상품을 들여올 수 있는 권리를 주어서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선원들도 항해의 모든 면에서 선장과 자본가와 이해관계가 이치할 수 밖에 없었고, 항해 중의 중요한 결정에도 선원대표를 포함시켜 공동으로 결정함으로써 공동체의 이익을 끌어올리도록 하였다. 베네치아공화국의 정치, 경제, 외교를 통해서 전개되는 이러한 정신은 상선의 항해과정에서 배양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대상인들의 독점에 대해서도 공화국은 개입하여 금지한다. 신기한 것은 공화국의 높은 자리들을 대상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다면 독점을 허용했겠지만,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소상인들을 지원하고 대상인들의 독점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면을 넘어서는 대승적인 관점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공화국 원수를 뽑는 과정은 까다롭다.
우선 공화국 국회 의원 중에서 제비로 30명을 뽑는다. 그 30명을 제비뽑기로 9명으로 줄인다. 9명은 40명을 선거한다. 선출된 40명 중에서 제비로 12명을 남긴다. 그 12명이 25명을 선거한다. 25명은 제비뽑기로 9명으로 줄인다. 9명은 다시 45명을 선거하고 선출된 45명은 제비로 11명으로 줄인다. 남은 11명이 41명을 선거하고 겨우 원수를 뽑는 유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원수는 이 41명 중 25표를 획득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당선되는 것이다. 신중을 기한 나머지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패자부활전의 논리도 간직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이렇게 뽑힌 원수가 정책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보좌관 6명, 원로원, 국회의원, 10인 위원회 등 여러 조직과 협의를 해야 한다.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어서 사상의 자유를 꽤 많이 보장할 수 있었다.
십자군의 열광으로부터도, 종교개혁이나 반동종교개혁의 독단으로부터도, 마녀사냥이나 이단재판의 미치광이 같은 짓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또 중세의 언론자유는 로마 교회의 권위가 미치지 않는 곳에만 존재할 수 있었는데, 베네치아는 이러한 면에서는 천국이었다. 루터도 에라스무스도 마키아벨리의 책도 베네치아에서라면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부강하면서 빈부격차가 없으면서,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고, 정치제도에 있어서도 민주적인 제도를 마련하려고 했었고, 거기다가 언론, 출판, 상대적인 종교 자유까지 있으니 현대의 어느 나라에 비추어도 뒤지지 않는 삶의 질을 확보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대단하다.
하권에서는 이러한 베네치아가 겪는 위기들과 쇠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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