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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62] 지지 않는다는 말: 특이하다고 하기에는 벗어나지 않은....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2. 11. 3. 00:30

     


    지지 않는다는 말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마음의숲 | 2012-07-1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
    가격비교

     

    김연수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2012년 1월 충남대에서 있었던 전국국어교사모임 겨울연수의 특강 자리에서였다. 약간 시니컬하면서도 어눌한 듯한 인상이었는데, 여성들한테는 웬지 끌릴 것 같은 틈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그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아서 그런지 강연 자체는 그저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다고 하더라. 책을 읽지 않아도 이해하고 좋아야지 괜찮은 것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묻혀있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산문집이 있길래 집어 들었다. 처음 집어들고 읽을 때 글들이 뻑뻑했다. 말을 되게 빙 돌려서 얘기하는 것 같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쉽게 읽히지 않았다. 산문집이라면서....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그래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잠시 다른 책을 읽고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는 좀 읽힌다.

     

    산문집... 말 그대로 그의 주변 삶과 생각을 담은 글들이다. 소설가이지만 마라톤을 많이 해서 달리기와 관련된 여러 상념들이 많고, 달리기를 통해서 깨달은 삶의 이치들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고 있다. 달리기는 수단일 뿐이고, 전달하고 싶은 것은 깨달음이다. 그의 깨달음을 통해서 나도 좀 삶의 이치를 배우고자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참 많이 들은 얘기인데, 이걸 실제의 경험에 비추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한여름에 타이완을 여행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지만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안 올 사람처럼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단다. 내가 여기를 언제 다시 와보겠나? 왔을 때 하고 싶은 것 다 해야지. 한여름의 타이완이 덥다고 숙소에만 박혀 있으면 뭐하러 여행 왔는가?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내가 보내는 이 순간을 언제 다시 접하겠는가? 지금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인 얘기를 교과서적으로 하지 않으니 마음에 와닿는다.

     

    비슷한 화두로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자기는 좋아하는 음악이 매번 바뀐단다. 한 노래를 들어서 좋으면 계속 듣고 그 노래가 가장 좋다고 하고, 그러다 다른 좋은 노래를 찾으면 그 노래가 가장 좋다고 그러고... 그러면서 가장 좋은 노래는 하나이어야 하고, 영원해야 한다는 것을 버린다. 그리고 그 때 그 때마다 가장 종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항상 좋은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삶이란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고, 그건 새로운 좋은 삶이 생기면 바뀌는 것이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경험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고비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고독을 느꼈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캠프 사무소 앞 벤치에 누워서 밤새 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고독은 우주의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자신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것이지 단순한 외로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이런 고독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별을 볼 수 없고, 우주를 느낄 수 없고, 영원을 접할 수 없고, 단지 스치고, 사라지는 것들만이 존재하는 가운데에서 저렴한 연민만을 느낄 뿐이라고 한다. 고독은 그런 것이다.

     

    재미있는 경험을 쓴, 재미있는 글도 있다. 중국 여행 중에 현지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얘기인데, 이런 초대를 칭커라고 한다. 이 칭커의 절차를 얘기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칭커에는 엄연히 절차가 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면 자리마다 냅킨이 꽂혀 있는데, 그중에 유난히 솟구친 냅킨이 놓인 자리가 있다. 멋모르고 그 자리에 앉았다가는 3층 높이의 접시 안에 든 요리 값을 다 내야만 한다. 그 자리는 칭커라는 말을 제일 먼저 꺼낸 사람이 앉아야만 한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칭커'란 친하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그들이 "이러다간 배가 터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할 즈음에 "이제 그럼 주문을 해 볼까"라는 표정으로 요리와 술을 더 시킨 뒤, "많이 드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계산하는 행위를 뜻한다.

     

    칭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도 그의 설명을 들으면 재미와 함께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글을 그만의 상상과 그만의 표현으로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혹은 무심히 지나가는 상황에 집중하여 사람들에게 느낌을 주고 있다. 이거 그만의 매력이다.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도 특이하다.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일어난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넘겨 짚고, 현지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사람이다. 우린 애당초 그렇게 생겨먹었다. 내게 여행이란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이 태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하면서 항상 주문을 건다고 한다. '이제부터 내게 어떤 일이 생길 텐데, 그 일들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놀라지 말자. 마음대로 넘겨짚지 말자. 인간성을 믿자.'라고 말이다. 여행에 임하는 아주 바람직한 자세같다. 안 그러면 어쩔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진대...

     

    몸과 상상력에 대한 얘기도 있다. 몸과 상상력이 무슨 관련이 있담?

     

    인류는 상상력을 통해서 세계를 바꿔 왔다고 하지만, 세계 자체가 변한 것은 없다. 원래 지구가 태양을 돌았으며 석유는 땅속에 묻혀 있었으며 신대륙은 대서양 저편에 있었다. 변한 것은 세계를 감지하는 우리 몸의 체계다. 그러므로 다들 먼저 온몸으로 경험하기를. 온몸으로 수없이 부딪히고 실패하고 좌절하기를.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가 보기를.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때 다시 한 번 상상력에 대해 말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마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왜 상상력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의 전기가 실패담으로 가득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인이 사물에 대해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머리 속으로 상상해서 시어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관찰하고 느끼고, 듣고, 경험하면서 시는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벽을 만나 몸이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때 상상력이 필요하다. 몸이 생각을 그치는 그 곳에서....

    알 듯 모를 듯 멋있는 말이면서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을 느낀 적이 없으니 몸으로 느끼는 것부터 하고 상상해야지.

     

    다 읽고나서 보니까 그의 생각이 특이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표현이 특이해서 그런 것이고, 결국 그 내용은 상식에서 혹은 세상의 이치에서 그렇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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